최근 들어 미 달러화에 대한 세계 각국의 통화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새로운 달러화 독주체제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만약 신달러화 독주체제설이 가시화된다면 위기극복 과정에 있는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 경제에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아시아 외환위기도 95년 4월 달러화 가치를 부양하기 위한 ‘역플라자 합의’이후 자금이탈이 커다란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최근 재현되고 있는 달러화 강세는 경제기초여건보다는 세계증시가 동반하락세를 보임에 따라 국제유동성이 위축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잇단 선진국들의 금리인상과 레버리지 투자축소로 국제유동성이 위축되는 과정에서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으로 자금이동의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기성 자금의 성격이 짙다. 세계증시 동반하락과 국제상품가격의 안정에 따라 새로운 투자대상을 찾는 과정에서 국제금융시장에서 안정된 투자처로 인식되고 있는 미 국채를 비롯한 채권시장에 투자자금이 몰리고 있는 점이 이같은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우선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신달러화 독주체제가 태동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결론부터 얘기한다면 현 시점에서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처럼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을 뒤흔들 만큼 달러화 독주체제가 나타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미국경제가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금년에만 4천억 달러가 넘어설 것으로 보이는 경상수지적자하에서는 더 이상의 달러화 강세는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재정흑자를 이용한 환매로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미 국채시장의 여건을 감안할 때 국제투자자금이 유입될 여지도 적어지고 있다.◆ 달러화 가치 고평가 시정돼야국제적으로도 세계경제나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는 여전히 고평가된 달러화 가치가 시정돼야 한다는 분위기다. 특히 날로 거세지고 있는 반세계화 물결에 따라 미국중시의 질서와 달러화 독주체제에 대해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최근 달러화 강세는 일시적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국제투자자금의 세계경제나 세계 각국 경제에 대한 조정기능이다. 최근처럼 경제성장에 있어 ‘부(富)의 효과(wealth effect)’에 따라 민간소비의 기여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국제투자자금의 유출입 여부에 따라 경제의 운명이 좌우되는 정도가 높아지고 있다.문제는 과거와 달리 달러화 독주체제에 따른 위기재연 가능성이 적다 하더라도 최근 들어 국제유가 상승과 미국기업들의 실적악화로 세계주가가 동반하락세를 보임에 따라 세계금융위기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는 점이다. 최근에 고개를 들고 있는 금융위기 가능성은 역시 미국증시에서 제공할 소지가 높다. 과거와 달리 98년9월 이후 세계경제 회복은 세계주가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세계주가가 동반 하락되면 곧바로 세계경제 침체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물론 앞으로 세계주가의 움직임은 미국주가에 의해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경제는 10년간 호황으로 세계GDP의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동시에 최근처럼 글로벌 투자, 기금투자가 보편화된 시대에 있어서는 미국주가가 하락하면 금융위기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미국주가 하락으로 각종 기금들이 투자원금에 손실을 볼 경우 이를 보전하기 위해 해외에 투자한 자산을 회수하는 소위 ‘마진 콜(margin call)’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아시아 외환위기 과정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세계주가의 동반하락세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그러면 앞으로 미국주가의 향방은 어떻게 될 것인가. 무엇보다 이번 주가하락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던 첨단기술주의 거품우려는 나스닥 주가가 3000선 언저리까지 떨어짐에 따라 완전치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는 해소된 상태다. 정책적으로도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발표되고 있는 미국기업들의 3/4분기 실적이 당초 예상수준을 하회함에 따라 11월15일에 있을 회의에서는 연준리가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미 연준리가 금리를 인상하다가 곧바로 금리를 인하한 사례가 없고 대선 이후 당선된 새 대통령이 정식으로 취임하기 이전까지 금리변경과 같은 정치적인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관례다.그렇지만 최근처럼 예기치 못한 국제유가 급등과 미국기업들의 실적악화로 예상보다 빨리 미국경제가 경착륙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금리를 인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 연준리가 의도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경제의 연착륙 달성에 있기 때문이다.문제는 투자자들의 심리다.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최근처럼 세계증시가 동반하락세를 보일 때에는 기업실적, 경제여건과는 관계없이 투자자들의 심리가 공황상태를 보이는 것이 최대 악재 요인이다. 현시점에서 투자자들의 심리가 공황상태를 보이면 이것을 흡수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느냐 여부다.아직까지 미국경제의 기초여건은 견실하다. 특히 과거와 달리 재정수지가 대규모 흑자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투자심리가 공황으로 치닫는다 하더라도 이것을 자체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완충장치가 많이 확보돼 있는 상태다.최근에 미국주가가 하락세를 보인다 하더라도 그린스펀 의장과 서머스 재무부 장관을 비롯한 정책당국자가 1929년 대공황과 1987년 증시 대폭락 당시와 달리 의외로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런 연유인지 모른다. 그만큼 ‘금융위기’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염두에 두지 않은 것 같다.◆ 미국 주가 하락 어느정도 해소이런 상황하에서 우리 증시나 경제의 안정성과 독립성을 유지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개별국가 차원에서 구조조정을 통하거나 외국인투자가들에게 환차익이라는 투자메리트를 제공해 주는 방안이다. 문제는 최근에 부의 효과에 따른 성장기여도를 감안할 때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바로 경제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국가간의 통합노력이 병행돼야 가능하다. 최근 들어 유럽경제가 유로화 가치하락과 자금이탈에 따른 성장잠식요인에도 불구하고 10년만에 최고의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는 것은 유럽경제통합(EMU)에 따라 역내교역이 증가하면서 자체성장요인이 보완되고 있기 때문이다.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내에서 한때 고조됐던 인접국과의 경제통합 움직임이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런 지역통합 노력이 우리 경제의 독립성과 안정성을 제고시킬 정도로 진전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돼야 한다는 점이다.특히 우리나라는 아시아 각국의 발전단계를 놓고 볼 때 중간자(balancer)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 결국 우리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느냐에 따라 우리뿐만 아니라 아시아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20일부터 열리는 아시아-유럽회의(ASEM)에서 전시적인 측면보다는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