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게 하얗게’ 기능성 위주 수입품이 시장 주도 … 국내업체, 신제품 내놓고 시장 수성 안간힘

가네보의 '라크림'은 올 하반기 들어 고가 기증강화 화장품 시장에 불을 당긴 제품이다. 롯데백화점 가네보 매장‘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다’. 시인 키츠의 이런 시구때문이 아니더라도 아름다움을 위한 여성들의 노력은 가히 눈물겨울 정도다.고전적 아름다움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클레오파트라는 나일강 유역의 진흙에 우유와 꿀을 섞어 얼굴에 발랐고 옛날 유럽 여성들은 돼지기름을 마사지에 이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세의 어떤 왕비는 심지어 우유 한방울이 없어 굶어 죽는 어린아이들이 속출하는데도 매일 수십병의 우유로 목욕을 했으며, 말갈족은 오줌을 이용해 피부를 희게 하기도 했다지 않던가.굳이 외국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개화기 우리나라 여성들은 얼굴을 희게 보이게 하기 위해 납가루가 든 분을 사용했다가 결국 납중독으로 얼굴이 시커멓게 망가지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다시 말해 동서고금을 통틀어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역겨움이나 더러움은 물론 자신 및 타인의 목숨까지 담보로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그럼 현대 여성들은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피부를 가꿀까. 바로 화장품이다. 수십개의 화장품 회사에서 수백종, 아니 수천종의 화장품을 내놓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여성들의 미적 욕구를 가장 강하게 자극하는 것이 고가의 기능강화 화장품이다.피부를 탄력있게 또는 젊어 보이게 하면서(노화방지 및 지연: Anti-Aging), 하얗게 하는(미백효과: Whitening)데 초점을 맞춘 기능강화 화장품의 유행은 현재 세계적 추세지만, 국내시장의 경우 기능성 화장품시장의 비중이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생명공학 화장품까지 나오고 있다.특히 수입 화장품업체들은 수십만원대의 기능중심 화장품으로 한국 여성들을 공략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일부 고가 수입화장품은 “없어서 못판다”고 할 정도다. 아름다움의 묘약을 위해서라면 수십만원도 아깝지 않게 투자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아니 오히려 “비싸야 잘 팔린다”는 ‘거꾸로’ 소비경제 이론도 들려온다.우선 올 하반기 들어 고가 기능강화 화장품 시장에 불을 당긴 것은 일본 스킨케어 전문 화장품 업체인 가네보의 프레스티지 프리미엄 센사이 EX라인의 ‘라크림’이라는 기능강화 크림이다. 올 9월 출시된 이 크림은 개당 65만원으로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단일 수입완제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로션과 에멀전을 포함한 기초용품 한세트는 1백35만원을 호가한다. 도대체 누가 이 비싼 제품을 살까라는 것이 언론계를 포함한 일반인들의 첫 반응이었고, 과연 얼마나 팔릴까가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이 제품은 발매 한달만에 재주문에 들어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가네보를 수입, 판매하는 금비화장품 이상희사장은 “정확한 개수는 밝힐 수 없다”며 “한달에 5백개 정도 판매를 예상했다면, 2배이상 팔린 셈”이라고 말했다. 덕분에 주로 유명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가네보 매장의 매출액도 30%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비단 가네보뿐만이 아니다. 역시 일본계 화장품인 시세이도는 가네보보다 한발 앞서 ‘끌레드 뽀 보떼’라는 스킨케어 전문 브랜드를 통해 다기능 영양크림 ‘라크렘’을 60만원에 출시, 최고가를 기록했었다. 보습, 화이트닝, 각질제거, 탄력강화, 잔주름제거 등의 기능에 중점을 둔 제품으로 ‘수술을 통해 주름을 제거하는 것보다 낫다’라는 마케팅 전략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시세이도는 올 연말쯤 90만원대의 또다른 고가화장품을 출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와 함께 프랑스의 시슬리, P&G계열의 SK-II, 라프레리, 달팡, 아베다 등도 고급 스킨케어 제품 전문업체로 유명하다. 시슬리의 경우 지난해 가을 ‘시슬리아’라는 35만원짜리 영양크림을 출시해 한달만에 3천개, 올 8월까지 1만7천여개를 판매하는 실적을 올렸다. 시슬리 김혜라 마케팅 팀장은 “별다른 광고를 하지 않는데도 매출실적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주로 30~40대 여성들이 피부탄력 강화 차원에서 사용해 보고 주변에 입소문을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덕분에 시슬리는 백화점 수입화장품 매장 중에서도 매출 최상위를 기록하고 있다는게 회사측의 설명이다.백화점을 중심으로 영업하는 다른 수입화장품 업체들의 매출실적도 값비싼 기능강화 상품의 집중 출시와 소비 양극화 등에 힘입어 급증하는 추세. 롯데백화점 화장품코너의 경우 올들어 지난 9개월 동안 4백80억원의 매출을 올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5%의 매출증가율을 보였는데, 이중 부르조아 바비브라운 아베다 등의 화장품은 1백~6백%의 매출신장률을 보인 것으로 집계됐다.이들 스킨케어 전문 업체들 외에도 랑콤, 샤넬 등 색조로 유명한 업체들도 최근 들어 기능에 중점을 둔 스킨케어 제품군을 강화하고 있다. 게다가 국내 생명공학 벤처기업의 기술을 활용한 1백만원대 초고가 화장품도 곧 출시될 예정이다. 지난 10월 중순 프랑스 박람회에서 첫선을 보인 ‘타스’(TASS)란 제품은 3가지 크림을 기본으로 갖춘 1세트 가격이 1백20만원대. 생명공학 벤처기업 인터코즘 바이오텍이 ‘스핑고 리피드’라는 핵심기술을 제공해 피부면역기능을 강화한 일종의 바이오 화장품인 셈이다.인터코즘 바이오텍 김현준 대표는 “여성만을 위한 미용 화장품이라기 보다는 문제성있는 피부를 가진 가족 모두가 쓸 수 있는 치료개념의 화장품”이라고 밝혔다. 타스는 청담동 로데오 거리에 60여평 규모의 단일 매장을 두고, 선별된 ‘탑커뮤니티’ 중심의 귀족마케팅으로 11월 말부터 3천개 분량에 한해 제품판매에 나설 방침이다. 백화점용 상품은 따로 선보일 예정. 이를 통해 고가 스킨케어 제품시장에서의 업체간 경쟁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외국의 유명 화장품 업체들이 국내 고가 스킨케어 화장품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만큼 잘 팔리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여성들의 화장품 소비성향이나 시장규모 및 시장구조에 근거한 것이다.화장품 업계에 따르면, 국내 화장품 시장은 매출액 기준 3조원 규모다. 이중 45%를 스킨케어 제품이 차지하고, 스킨케어 제품 시장중 3분의 1 정도가 노화방지 및 미백효과에 중점을 둔 기능중심 화장품이다. 보통 유럽을 비롯한 서구시장의 스킨케어 제품 비중이 20~30% 수준임을 감안할 때 국내 화장품 시장에서 스킨케어 제품의 비중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한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전세계 고가 화장품시장의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장품 업체들 입장에선 한국시장이 그만큼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고급 스킨케어 제품업체 경쟁 격화고가 기능중심 화장품 시장에 최근 불거진 뜨거운 감자는 정부가 마련한 화장품법중 기능성 화장품에 대한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다. 이미 지난 7월19일부터 발효된 이 법은 기능성화장품의 범위를 한정하면서, 정부의 심사를 받은 업체 및 제품에 한해서만 ‘기능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기능성 화장품에 ‘허가’ 개념을 도입했다.이에 따라 이미 오래전부터 노화방지, 미백기능 등에 중점을 둔 기능성 화장품으로 홍보·광고를 해오던 업체들은 잔뜩 몸을 사리고 있는 실정. 심지어 일부 업체들은 취재 자체를 거부하거나, ‘기능성’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조건으로 취재에 응하기도 했다.정부가 정한 기능성의 범위에는 주름개선(노화방지)과 미백, 자외선 차단 등 3가지가 중점적으로 포함돼 있다. 따라서 정부의 심사를 받지 않고, 이같은 용어를 쓸 경우 제조업무정지(1~12개월)에서 최고 제조시설 폐쇄 등의 제재를 받게 된다.업계는 기본적으로 기능성 화장품에 대한 법안 자체에 대해서는 일단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법안으로, 기능성 화장품의 존립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찬성하는 분위기다.문제는 기능성화장품 심사를 위한 기준 마련이다. 기준이 모호하거나 제한적일 경우 오히려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외국 수입업체들은 “심사기준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강화될 경우 고가의 기능중심 수입품에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수입품의 경우 이미 외국에서 임상실험 등을 거쳐 효능 및 안전성이 검증된 제품이 많다는 뜻에서다.국내 화장품업체 관계자도 “외국업체들의 경우 자체매장 중심으로 일대일 카운슬링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굳이 심사를 통해 기능성 표시를 하지 않더라도 제품판매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결국 국내 기능중심 화장품 시장은 이래저래 고가 수입품의 독주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화장품의 경제학소비 10% 줄이면 8백억원 절약올해 화장품 수입 규모는 3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올 상반기에만 지난해 보다 61% 증가한 1억5천만달러를 넘어섰다. 따라서 지금까지 사상 최대를 기록했던 지난 97년의 화장품 수입실적 2억7천만달러를 능가할 전망이다.이들 수입화장품(완제품)이 국내 전체 화장품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 정도. 이미 국내시장의 80% 이상을 잠식당한 대만 등 동남아시아 다른 나라에 비해선 내국 업체들의 수성전략이 비교적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최근의 소비양극화 및 고가선호 경향에 비추어 수입화장품의 시장 점유율은 갈수록 확대될 전망이다. 5년 이내에 시장의 40%를 수입완제품이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이같은 화장품 수입 및 소비는 국내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9월 발표한 ‘소비절약의 수입절감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화장품의 민간 소비시장 규모를 2조8천억원(99년 기준)으로 추산했을 때 수입유발률이 29.8%에 달하고 수입유발 액수는 8천3백70억원(7억4천8백만 달러) 규모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물론 수입완제품뿐만 아니라 원료수입 및 로열티 지급액 등도 포함돼 있다.따라서 국내 소비자들이 전체적으로 화장품 소비를 10% 줄이면 연간 7천5백만달러(약 8백20억원)를 절약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참고로 향수를 제외한 한국 여성의 화장품 구입빈도 및 소비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