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지역에 입주하는 모든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해 세제상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정부 내에 자유무역지역위원회를 설치, 외국인 투자기업의 애로를 신속하게 해결해 나갈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10월26일 군산자유무역지역 기공식에서 한 말이다. 건실한 외국기업의 국내 유치는 국가 경제발전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연 매출 1조원 넘는 외국기업도 등장IMF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국내 기업은 맥없이 쓰러졌다. 기초가 부실해서다. 같은 시기에 외국기업은 승승장구했다. 튼튼해서다. 우량 외국기업들은 국내에 들어와 아시아 전진기지를 세우며 고용을 창출하고, 새로운 상품을 출시해 시장을 만들어냈다. 첨단기술과 자본으로 무장하고 신경제의 첨병으로 활동한다. 외국기업 CEO의 방한은 주요 뉴스거리가 되고 그들이 던진 한마디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외국기업은 이제 국내 경제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됐으며,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얘기다.우선 지금까지 국내에 들어온 외국기업의 수가 얼마인지 알아보자. 산업자원부 투자진흥과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6월말 현재 국내 진출한 외국기업의 수는 8천34개다. 투자금액으로는 4백40억1천1백만달러이고, 한 업체당 평균 투자금액 5백47만8천달러다. 지난 99년6월말과 비교해서 업체수는 41.4%, 투자금액은 43.9%, 1개 업체당 평균투자금액은 1.8% 각각 증가한 수치다.특히 경기 회복세를 타고 연 매출이 1조원을 넘는 외국기업들이 등장해 외국기업들이 국내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작년에 이미 1조1백70억원의 매출을 올렸던 한국바스프는 올해 석유화학부문의 성장에 힘입어 지난해보다 20% 정도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또 지난해 6천1백억원의 매출과 7백36억원의 순익을 낸 한국IBM도 LG전자와 합작한 LG-IBM의 매출까지 포함하면 올해 1조원대의 매출이 확실시된다. 모토로라코리아도 올해 1조원 매출 대열에 진입이 예상되는 외국계 기업. 또 지난해에 2천6백억원의 매출을 올렸던 3M코리아도 이대로만 간다면 2005년 쯤에는 1조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매출만 좋아진게 아니라 이익도 짭짤했다. 코파네트(주한외국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기업은 1천원 어치 물건을 팔아 1백17원을 벌어들인 반면, 국내기업들은 11원을 손해 본 것으로 나타났다.외국기업의 매출액대비 경상이익률은 98년 5.2%에서 지난해 11.7%로 크게 높아진 데 비해, 내국인 기업은 98년 마이너스 4.2%에서 지난해 마이너스 1.1%로 다소 개선됐으나 아직 적자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외국기업의 부채비율은 98년 말 1백94.4%에서 지난해 말 1백10.4%로 하락했다.이 같은 영업 호조에는 외국기업만의 독특한 비즈니스 전략이 있어서다. 가장 눈에 띄는 전략은 새 상품이나 서비스를 내놓고 시장을 개척해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 피엔지(P&G)의 섬유탈취제 ‘페브리즈’가 대표적인 사례다.섬유제품에 밴 악취를 없애주는 이 제품이 나오면서 인기를 끌자 한국존슨앤존슨(샤우트) LG생활건강(케어) 동산C&G(프레셔) 등 국내외 업체들이 비슷한 상품을 잇따라 내놓아 경쟁을 벌였다. 피엔지는 페브리즈 국내 런칭을 위해 전담 홍보대행사를 선정하고 대규모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붇기도 했다.또 다른 예는 3M코리아의 옥외간판 광고다. 그동안 페인트 아크릴 광고가 주류를 이뤄온 옥외간판 광고 시장에 반투명 접착 필름 및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새로운 기법을 선보인 것이다. 시장이 열리자 LG화학 한화종합화학 선경인더스트리(SKC)등 국내 업체가 속속 뛰어들어 1천억원대 시장을 형성했다. 지난해는 미국 제약업체인 화이자의 비아그라 국내 시판을 두고 논란이 일어나면서 국내 업체의 성기능 치료제 개발에 불을 댕겼다. 태평양제약이 조루증 치료제인 SS크림을 비롯해 파마시아&업존의 발기부전 치료제 ‘카버젝트’ 등이 시장에 나왔다.◆ 외국기업 진출 분야 다양독특한 비즈니스 전략만큼이나 다양한 분야의 외국기업들이 들어와 활동하고 있다. 정보통신 시장은 외국기업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분야. 특히 올해 말 예정된 IMT-2000 사업자 선정과 함께 차세대 이동통신 시장 선점을 위한 세계적인 통신장비업체들의 경쟁이 볼만하다. 이들 통신업체들은 국내 통신 시장뿐만 아니라 떠오르는 통신시장인 중국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전략도 짜고 있다.한국을 발판으로 해외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곳은 중공업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바슈롬은 바슈롬코리아를 RPG렌즈부문 글로벌 통합생산기지로 선정했다. 바슈롬이 RPG렌즈 전량을 충북 음성의 바슈롬코리아에서 생산, 세계에 공급하는 것이다.피앤지는 아시아지역에 생활용지를 공급하는 생산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현재 조치원 공장 증설작업을 진행중이다. 회사측은 2007년까지 증설이 마무리되면 현재 연간 7만여t인 생산능력이 2배로 증가해 아시아지역 수출을 전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세계적인 실리콘 제조업체인 다우코닝은 98년 충북 진천의 한국다우코닝에 글로벌 정보통신 네트워크를 도입한데 이어 지난해 6월 핵심품목인 고무 및 실란트 제품의 아시아지역 생산본부로 지정했다. 굴삭기, 크레인 등을 생산하는 볼보건설기계는 98년5월 삼성중공업 건설기계 부문을 인수한 뒤 아예 스웨덴의 굴삭기 공장을 폐쇄하고 창원공장을 전세계 생산 거점으로 결정했다.특히 IMF 경제위기 이후 부실한 국내 금융기관을 인수 합병하면서 대거 진출한 이후 외국 금융기관들이 국내 영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들의 투자방식도 경영권 인수, 자본참여, 주식시장을 통한 포트폴리오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올해들어서는 은행이나 증권 등 기존 투자영역을 넘어서서 선물 등 다양한 영역에 속속 파고들고 있다. 씨티, HSBC 등은 소매금융에서 괄목할 성장을 이뤄 자리를 잡았고, 메릴린치는 지점을 현지법인으로 격상해 일반인 대상의 영업을 시작할 계획이다.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산업 가운데 많은 분야가 이미 외국기업에 넘어갔다며 글로벌 경제에서 이같은 경향은 점차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