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극장가를 빨갛게 물들였던 호러(Horror) 영화의 색깔이 가을까지 이어질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피가 아니라 불이다. CF 감독 출신의 신인 이주엽 감독의 <싸이렌 designtimesp=20325>과 잇따라 개봉할 양윤호 감독의 <리베라 메 designtimesp=20326>는 모두 화재현장 소방관들의 활약상을 담은 영화. 가을 극장가를 말 그대로 ‘뜨겁게 달굴’ 채비를 차린 두 영화의 한판 승부가 2주 먼저 개봉하는 <싸이렌 designtimesp=20327>의 선전포고로 시작됐다.불같이 뜨거운 감정을 가진 준우(신현준)와 이성적인 판단으로 행동을 제어하는 현(정준호)은 첫 출근 날부터 날카로운 신경전을 펼친다. 사고 현장에 투입될 때마다, 현장에 대한 판단보다는 희생자를 구해야 한다는 의무가 앞서는 준우와 이성을 앞세우는 현의 갈등은 점점 심해진다. 급기야 현이 구조대 일을 그만두기에 이른다. 그러던 중, 준우의 애인인 예린(정진영)이 예기치 못한 대형 화재 현장에 있음이 밝혀지면서 둘은 함께 죽음의 현장으로 출동한다.대형 재난 블록버스터를 표방하는 <싸이렌 designtimesp=20332>의 주인공은 두말할 것 없이 불이다. 한국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정부차원의 지원을 톡톡히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서울시 소방본부와 행정자치부 소방국의 감수를 받았고 소방차, 소방장비, 의류 등을 지원받았다. 또 비번인 소방대원들이 엑스트라로 무료 출연하는 등 <싸이렌 designtimesp=20333>에 협찬된 인원과 물량은 돈으로 따져10억여원에 이른다는 것이 제작사측의 설명이다. 이같은 지원은 사실적인 화면을 만들어내는데 큰 힘이 됐다. 할리우드의 전문가 폴 스테이플(Paul Staples)의 정교한 손도 한몫 했다. 그는 화재 영화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분노의 역류 designtimesp=20334> 특수효과를 맡았던 베테랑으로, 그가 만들어낸 불길은 극적인 현장감과 함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게 할 정도로 완벽해 보인다.그러나 특수효과와 스펙타클을 강조하는 많은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싸이렌 designtimesp=20337> 역시 그럴듯한 포장에 내용물은 여기저기 깨져있다. 준우와 현의 갈등은 전혀 극적인 긴장감을 이끌지 못하고, 이야기는 방향을 잃어버린채 화재 현장이라는 비싼 볼거리 안을 이리저리 헤매다닌다. 준우 역의 신현준은 사랑과 소방관의 의무 사이에서 너무도 인간적인 갈등을 보여주지만, 그의 갈등에 공감하기에는 상당한 인내심과 관용이 요구된다. 결국 올 여름과 가을 극장가를 붉은 색으로 물들인 호러 영화와 불구경 영화는 똑같은 아쉬움을 남겨줄 뿐이다. 장르는 늘어나고 규모는 커지지만 영화는 여전히 생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