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광속경제의 열기가 주춤해지면서 인터넷 벤처와 하이테크 중소기업들을 거래 대상으로 한 한국의 코스닥 시장이 큰 타격을 받았지만 이같은 현상은 일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정보통신전쟁의 패권을 미국에 내준 채 제조업 우위에 안주하다 뒤늦게 IT(정보기술)혁명에 불을 댕긴 일본에서는 도쿄증시의 벤처기업부 ‘마더스’가 인터넷기업인들의 ‘엘도라도’로 각광받아 왔다. 도전과 모험정신을 앞세운 일본의 인터넷 벤처들은 마더스를 통해 주당 수백만엔씩의 공모가를 제시하며 투자자들로부터 거액의 돈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그러나 지난 11일로 개설 1주년을 맞은 마더스는 투자자들의 외면과 상장 기업에 얽힌 크고 작은 스캔들로 내우외환의 이중고를 앓으며 비틀거리고 있다. 마더스의 고전은 주가와 관련된 수치에서 금방 드러난다. 벤처 기업들의 돈줄 역할을 위해 도쿄증권거래소가 지난해 11월11일 문을 연 마더스는 12월 22일부터 첫거래를 시작했다.이때 상장(한국 코스닥에서는 ‘등록’이라는 용어를 사용)된 종목은 오오간다 마사후미(33)전사장의 야쿠자 관련설이 드러나면서 최근 치명적 타격을 입은 ‘리퀴드 오디오 재팬’ 등 단 2개.도쿄 증시 시세판그러나 이들 종목의 거래대금은 인터넷신화에 무작정 돈을 맡기려는 투자자들이 너도 나도 주식을 사겠다고 몰려들면서 1월 한달 동안 무려 6백37억엔(약 7천억원)까지 치솟았다.하지만 벤처열기가 내리막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초여름부터 마더스는 점차 활기를 잃는 모습이 뚜렷해졌다. 6월에는 상장기업이 10개로 늘어났지만 거래대금은 오히려 1백90억엔대로 위축됐다. 총 21개 종목이 상장된 10월 한달동안 마더스의 거래대금은 4백13억엔으로 1월의 3분의 2 수준에 불과했다. 사고 팔 수 있는 종목이 10배로 늘어났음을 감안한다면 마더스의 분위기가 얼마나 위축됐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일본 증시전문가들은 마더스의 열기가 실종된 원인을 상장기업들의 사업내용과 지나치게 높았던 공모가격에서 찾고 있다.상장종목이 인터넷 관련 기업에 치중돼 있는데다 인터넷 벤처의 성공신화가 무너지자 주식값도 자연 직격탄을 맞았다는 것이다. 오자키 마사가츠 노무라종합연구소 자본시장 연구실장은 “공모가가 턱없이 높았던데 따른 반사적 하락의 성격도 짙다”고 분석하고 있다.리퀴드오디오, 야쿠자 관련설 내리막길가격면에서 볼 때 1주년 직전인 9일의 폐장가에서 공모당시보다 값이 오른 주식은 5개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시세폭락으로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입혔으며 특히 하락률이 80%를 넘은 종목도 3개나 됐다. 값이 50~80%까지 떨어진 종목도 6개에 달해 적어도 4할 이상의 주식 가격이 취득 당시의 반토막을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마더스 주식은 공모가가 주당 최고 1천3백20만엔(그레이프 후룻)까지 호가한데다 적어도 1백만엔을 넘은 것이 적지 않아 투자자들이 입은 손실도 상당했을 것이라는게 증권가의 일치된 분석이다.이같은 와중에서 터진 리퀴드 오디오 재팬의 오오간다 마사후미 사장의 야쿠자 관련사건은 마더스를 더욱 벼랑으로 밀고 간 불상사가 됐다. 마더스 상장 1호를 기록하며 일본 젊은이들에게 성공신화의 우상으로 떠올랐던 오오간다 사장은 도쿄대 출신의 전형적 엘리트 벤처기업인이었다. 대학 3학년때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컴퓨터를 교육시키는 퓨처키즈재팬 설립에 참여하는 등 천재적 사업수완을 발휘한 그는 마더스 상장으로 거액의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쥐는데 성공했다.그러나 그는 지난 10월 같은 회사 부하임원을 감금 폭행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구속됐으며 여죄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폭력조직인 야마구치구미의 계열사에 총무부장으로 근무한 전력이 들통났다. 오오간다 사장은 자신의 혐의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주식배분 등 이권과 관련해 조직폭력배를 동원, 부하 임원을 폭행한 것으로 드러나 투자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그는 더구나 야쿠자의 위협을 받고 상장 후 수천만엔의 사례금만 주었다고 해명했지만 일본 경찰은 공모당시 끌어들인 자금 30억엔의 일부가 야쿠자에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인터넷으로 음악을 배급하며 곡당 3백~5백엔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청소년, 젊은이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던 이 회사는 창업후 불과 1년5개월밖에 되지 않은 기업이었다. 도쿄증권거래소에서 한때 최연소 사장의 기록 보유자가 되기도 했던 오오간다 사장은 이번 사건으로 검은 돈과의 관계를 집중 추궁받고 있다. 또 구속전인 지난 9월 리퀴드 오디오 재팬 사장직을 내놓았지만 그의 이름이 갖는 유명세 때문에 회사는 물론 마더스 전체가 투자자들로부터 야쿠자와의 연루 여부를 의심받고 있다.일본 언론은 오오간다 사장의 대학졸업 후 행적에 대해 계속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아울러 인터넷 벤처기업들의 배후에 또 다른 폭력조직이 선을 대고 있을지 모른다며 경찰의 수사와 마더스의 철저한 내부감시, 견제를 촉구하고 있다.이에 따라 마더스는 상장 희망기업들을 대상으로 심사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이미 상장된 기업들에는 폭력조직과의 연루 사실을 과거까지 캐묻는 등 강도높은 단속활동에 나섰다.재팬나스닥, 벤처기업 대표시장 탈환하지만 마더스가 침체된 시장분위기와 불명예를 벗어나 벤처기업의 자금파이프 기능을 빠른 시일내에 되찾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재일교포 3세 기업인인 소프트 뱅크의 손정의 사장이 오사카에 벤처기업 주식 거래를 위한 나스닥재팬 설립을 추진하자 이에 맞서 마더스를 세우기로 하고 부랴부랴 준비를 서둘러 왔다. 올 6월부터 영업활동에 들어간 나스닥재팬보다 한발 앞서 문을 열기는 했지만 일본 경찰은 설립 과정에서 조직폭력배의 자금이 상장전 벤처기업들에 흘러 들어갈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었다. 따라서 준비과정의 졸속과 내부감시, 여과기능의 소홀등을 감안할 때 현재로서는 제2, 제3의 오오간다 사장 출현을 배제할 수 없다는게 일본 언론의 지배적 분위기다.마더스는 경쟁관계인 나스닥 재팬과 비교할 때 상장기업의 다양성, 거래대금등에서 이미 벤처기업의 대표시장 지위를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다.IT기업이 절대다수를 점유하고 있는 마더스와 달리 나스닥재팬은 유통, 제약, 외식 등 여러 가지 업종의 31개사 주식이 거래되면서 다양성, 투자위험 분산 측면에서 마더스를 앞지르고 있다. 거래대금도 나스닥은 지난 10월 한달간 5백16억엔으로 마더스를 누르고 있다.마더스를 운영하는 도쿄증권 거래소는 투자자들의 의혹과 불신을 걷어내기 위해 내부혁신, 감시강화 등 강도높은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거듭 다짐하고 있다.그러나 마더스를 보는 인터넷 벤처기업인과 주주들의 시선이 예전같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거액의 투자 손실을 입은데다 조직폭력단의 개입 가능성이 제기된 상태에서 마더스는 신규상장과 증자에 상당기간 제약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