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관료적인 대기업에서 규모가 작은 기업으로 직장을 옮기자 여러가지 차이점을 보게 된다. 업종 자체도 지식산업이라 먼저의 기업과는 근무하는 사람들의 종류가 다르다. 시시때때로 수많은 농담이 오가게 되는데 워낙 개인을 꿰뚫고 있기 때문에 개인의 특징을 잡아서 하는 농담이 주를 이룬다. 나이가 많은 노처녀, 술을 좋아하는 아저씨, 여자를 밝히는 총각들이 주 대상이다. 서른 먹은 노처녀 둘은 30/30 클럽이라고 놀리는데 놀림을 당하는 노처녀들은 단련이 돼서 그런지 아무 거부감없이 농담을 잘 소화해 넘긴다. 아니 소화한다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대기업에서는 직원들의 숫자도 많을 뿐 아니라 구조적으로 서로를 알기 어렵게 돼 있다. 반면 작은 기업은 서로를 알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로 돼 있다. 매일 같은 사무실에서 얼굴을 마주 대하니 잘 알게 되고 알게 되면서 서로에 대한 애정이 생기는 것이다.진정한 웃음은 앎이 뒷받침된 애정에서 나온다. 서로를 알면 알수록 할 얘기가 많아진다. 예전에는 친하게 지냈던 친구나 친척도 오랜만에 만나면 할 말이 별로 없는 경우를 흔히 경험하듯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알면 알수록 친해지고 할 말도 많아지고 궁금한 것도 더 많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인의 약점을 잡아 공갈 협박을 해도 모두가 너무나 즐거워한다. 보스가 없는 자리에서 보스의 특징을 잡아 얘기하면 다들 뒤집어지면서 웃는다. 웃는데 아무 가식이 없다. 웃으면서 친해짐을 느낀다. 웃기는 사람도 따라 웃는 사람도 놀리는 사람도 놀림을 당하는 사람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그 순간을 흔쾌히 즐기는 것이다. 체면봐서 웃어주거나 웃기 싫은데 억지로 웃는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왜 이들은 그리도 즐겁게 웃을까. 솔직함이 가장 큰 이유다. 포장하지 않은 솔직함이 유머의 바닥에 깔려있을 때 사람들은 웃게 되는 것이다. 다들 그러리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여러 이유로 얘기를 못하고 있었는데 나 아닌 다른 사람이 그것을 날카롭게 집어서 얘기할 때 사람들은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하면서 웃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애정이다. 애정이 없는 웃음은 진정한 웃음이 아니다. 그것은 빈정거림이고 비웃음이다. 웃음 뒤에 오는 머리 맑음, 상쾌함 같은 것들이 없다. 노처녀라고 놀리지만 놀리는 사람도 놀림을 당하는 사람도 서로를 아끼고 위한다는 무언의 느낌이 있는 것이다. 만약 잘 알지 못하고 평소에 감정이 안좋은 사람이 그런 얘길 한다면 화를 벌컥 낼 것이다.지금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자산은 무엇일까. 아마 그 중의 하나가 웃음과 미소일 것이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느낌을 물어보면 대개가 “한국사람들은 화난 사람같아요(long face). 여기서 살다보면 제 얼굴도 저절로 굳어지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한다. ‘일소일소, 일노일노(一笑一少, 一怒一老)’처럼 누구나 웃음의 중요성과 효용성은 알고 있다. 하지만 웃음이란 살림이 펴여야, 다른 사람이 내게 잘 해 줘야, 좋은 일이 있어야 나오는 걸로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웃음은 물질 풍요와는 아무 상관없는 정신적 생산물이다. 오히려 잘 살 때 보다는 어려울 때 필요한 것이 웃음이다. 웃음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나 비유법같은 여러 테크닉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다음 조건이 필요하다. 즉, “서로를 잘 알기, 서로에게 애정갖기, 서로에게 솔직하기, 나 자신 웃음의 소재가 돼도 좋다는 자신감 갖기” 등이다. 지금이야말로 이런 웃음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