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산업 등 발빠른 자구노력으로 재도약 체력 회복 ... "내실경영 중요성 뼈저리게 실감"

워크아웃 조기졸업 업체중에는 "워크아웃 때문에 살아났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기업개선작업 덕을 톡톡히 본 업체도 적지 않다. 워크아웃 성공사례로 꼽히는 한국컴퓨터.워크아웃이 과연 필요한 제도였는지 의견이 분분한데다 워크아웃이 아직도 진행중임을 감안할 때 워크아웃 제도의 성패를 논하기는 이른 감이 없지 않다.그러나 워크아웃을 예정된 일정보다 앞서 졸업한 업체 입장에서는 워크아웃이 적어도 실패한 제도는 아니라는 입장이 우세하다. 심지어 “워크아웃 때문에 살아났다”는 일부 기업 관계자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워크아웃의 덕을 톡톡히 본 업체도 적지 않다. 이들에게 있어 워크아웃은 ‘절반의 성공’은 되는 셈이다.우선 워크아웃을 조기졸업한 업체들을 보자. 워크아웃을 제일 먼저 졸업한 업체는 한국컴퓨터로, 채권유예일이 2001년 말이었으나 예상을 뒤엎고 올해 3월 ‘졸업장’을 받았다. 이후 6월 들면서 동방금속공업(6월9일), 대구백화점, 대백쇼핑(6월23일) 등이 잇달아 예상보다 2~3년 빨리 워크아웃에서 벗어났다. 이들 외에 지금까지 워크아웃에서 조기졸업한 업체는 화성산업, 아남반도체, 아남환경, 동양물산기업, 무학, 한국시그네틱, 아이즈비전(전부일이동통신), 대우전자부품, 미주금속, 한창화학 등 통틀어 15개 업체에 달한다.한창제지, 제철화학, 신송식품, 성창기업, 서울트레드클럽 등 워크아웃 자율추진으로 결정된 18개 업체들도 회생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워크아웃 효과를 보는 업체들에 속한다.워크아웃 조기졸업 업체들의 공통점은 영업실적 성장가능성 등 기업내용은 양호했지만, IMF 경제위기를 맞아 은행의 채무상환 요구와 환율폭등으로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들이라는 점. 물론 본업외에 사업확장 및 계열사의 빚보증(보증채무)에 묶여 해당업체 자체의 사업성은 좋은데도 동반부실에 처해진 기업들도 상당수 있었다.조흥은행 송윤식 심사역은 워크아웃 조기졸업 업체의 공통점으로 “제조업체로, 한때 호시절을 누리던 동업계 강자들”이라고 분석했다. 기본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업체들이 IMF라는 복병을 맞아 과다한 금융비용으로 일시적 패닉상태에 빠졌다는 설명이다.이들 기업들이 워크아웃을 조기졸업한 비결은 채권단이 일단 빚동결(채무유예, 출자전환)과 금리인하, 부실 계열사 보증채무 해소 등으로 숨통을 틔워준데 이어 해당 업체 임직원들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인력축소, 급여삭감은 물론 계열사 축소, 한계사업정리, 부동산 매각 등이 대표적인 내용이다. 물론 영업정상화를 위한 노력도 만만치 않았다.이들 조기졸업 업체들 중에서도 워크아웃 본래의 취지나 추진과정에 비추어 가장 성공적인 업체로 꼽히는 곳들이 1호 졸업업체인 한국컴퓨터를 포함, 대구백화점(대백쇼핑), 화성산업, 동방금속공업 등이다.대구백화점의 경우 대구시내의 대백프라자와 포항의 대백쇼핑을 거느린 30년 전통의 백화점 전문업체로, 서울을 포함한 국내 백화점업계 ‘빅 5’에 속한다. 롯데, 현대, 신세계 등 수도권 중심의 ‘빅 3’에 이어 대구백화점을 꼽을 정도였으며, 서울 롯데 본점에 맞먹는 규모(대백프라자) 등으로 지방백화점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업체로 통해왔다.대구백화점은 할인점 부지 등 비업무용 부동산을 매각해 1천웍원 이상의 차입금을 상환했다.대구백화점, 2년 이상 앞당겨 조기졸업이런 대구백화점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것은 199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할인점 진출바람과 이에 따른 과다한 사업확장이 주원인이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대구백화점 역시 할인점 진출을 목표로 부지확보는 물론 할인점 건설에 필요한 건설업체(대백종합건설) 등으로 계열사를 늘려 나갔다.그러나 건설업 경기가 후퇴하면서 대백종합건설이 수익을 내지 못한데다, 95년 대구 달서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사고에 연루되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급기야 건설이 부도위기에 처하면서 1천억원의 보증채무 관계에 있었던 대구백화점 및 대백쇼핑(포항)까지 워크아웃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대구백화점 워크아웃을 주관했던 대구은행 관계자는 “유통업 자체는 당시 매출액이 약간 떨어지긴 했지만, 현금장사라는 특성상 큰 문제가 없었고, 보증채무가 가장 큰 문제였다”며 “가장 먼저 보증채무를 해소하고, 건설업은 법정관리로 넘기면서 원금상환 유예, 이자감면 등의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임직원들의 노력도 만만치 않았다. 1천5백여명에 달하던 직원들 중 6백50여명을 줄이고, 7백%의 상여금을 2백%로 깎았다. 월급의 30%를 차지하던 제 수당도 모두 반납했다. 임원진도 3분의 2로 축소했다. 할인점 부지 등 비업무용 부동산을 매각해 1천억원 이상의 차입금을 상환했다.다행히 1999년 들어 백화점 경기가 되살아나면서 백화점 매출액도 30%이상 늘어났다. 97년 3월말 매출액이 3천7백여억원, 영업이익 2백90억원이었는데, 2000년 3월말 매출액은 4천3백여억원, 영업이익은 6백47억원에 달했고, 내년 3월말엔 매출액 6천1백여 억원을 예상하고 있다.덕분에 대구백화점은 당초 2003년까지 워크아웃을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2년이상 앞당겨 아무런 조건없이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했다. 대구백화점 이응창 차장은 “워크아웃 조기졸업을 하더라도, 채권단이 약간의 조건을 붙이는 것이 통례인데, 아무런 조건없이 조기졸업을 한 업체로는 유일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58년 설립된 화성산업도 대구백화점과 비슷한 케이스에 속한다. 화성산업은 대구 동아백화점과 서울 쁘렝땅 백화점을 소유했던 유통업체이자 건설업체. 대구에선 대구백화점의 최대 경쟁자였다. 그러나 백화점업 서울 진출을 목표로 개점했던 쁘렝땅이 적자를 벗어나지 못한데다, 건설업 경기가 위축되면서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 결국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그러나 쁘렝땅을 비롯한 부동산 매각, 유통부문의 매출향상, 미분양 아파트 해소 등으로 자구계획을 착실히 이행, 워크아웃 졸업업체로 선정됐다.동방금속공업은 포철에 납품하는 스테인리스 가공전문 기업으로 안정적 수주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회사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섬유·건설관련 계열사인 동방 T&C가 섬유 및 건설업 경기악화로 이익을 못내면서, 보증채무 관계에 있던 동방금속까지 동반부실에 들어갔다. 이에 주채권업체인 조흥은행측은 1백억원의 보증채무를 ‘없었던 것’으로 해주면서 목표이익의 2~3배를 내는 등 기업가치를 회복하게 됐다.이밖에 거평계열의 한국시그네틱도 계열사간 보증채무를 없애주는 방식으로 기업가치를 회복, 해외매각을 통해 조기졸업의 길을 걸었고, 한창화학도 보증채무해소 및 해외매각으로 살길을 찾은 케이스로 꼽힌다.조기졸업 업체중 아남반도체와 강원산업은 특수사례에 속한다. 아남반도체의 경우 외형상 대규모 외자유치에 성공, 차입금을 상환함으로써 워크아웃을 졸업한 케이스로 돼있으나, 사실상 기업주의 아들이 운영하는 미국법인이 매입하는 형식이었다. 강원산업은 기업주가 현대가와 사돈이라는 후광덕분에 당시 현대그룹 계열사였던 인천제철에 합병되는 식으로 워크아웃 조기졸업에 성공했다. 은행측은 그러나 ‘이들 업체들도 채권단의 보증채무 해소 등 기본적인 노력 끝에 기업의 가치를 어느 정도 키워 매각 및 합병에 성공시킨 사례에 속하고, 무엇보다 채권회수가 가능했다는 점에서 적어도 실패사례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현금경영 중요성 알았다”워크아웃을 통해 기업들이 얻은 효과라면 빚의 무서움을 실감하고 현금흐름에 민감해 졌다는 것. 따라서 외형적인 성장이나 문어발식 사업확장보다는 내실있는 본업에 충실하는 계기가 됐다는 자평이다. 또한 은행측도 워크아웃을 통해, 그동안 제도권에 안주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될성부른 기업을 가려내고, 회계의 투명성 및 이익창출에 보다 민감해지는 등 살아남기 위해 터닝포인트가 됐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사례분석 / 한국컴퓨터“저승문턱서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다”한국컴퓨터는 어떤 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가고,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야말로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워크아웃 덕분에 살아난 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74년 소설가 홍상화씨가 창업한 한국컴퓨터는 금융권 전산전문업체로, 금융기관에 필요한 전산시스템과 중대형 컴퓨터, 공중용 현금인출기(CD) 개발 및 판매가 주력분야다. 창업이후 줄곧 탄탄한 성장을 해오던 한국컴퓨터는 IMF에 접어들어 금융기관의 전산관련 신규투자가 축소 또는 연기되면서 타격을 입게 됐다. 금융기관이 이미 계약한 전산 프로젝트마저 취소했기 때문이다.여기에다 당시 한국컴퓨터는 컴팩의 중대형 컴퓨터 판매를 통해 매출액의 37%를 올리고 있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급등하는 환율 때문에 막대한 환차손을 입었다. 설상가상으로 해외전환사채 보유 금융기관이 만기를 1년 앞둔 98년4월에 풋옵션을 행사, 1백50억원이 넘는 환차손이 생겼다. 대규모 사업확장 및 무리한 투자도 문제였다. 워크아웃에 들어갈 무렵 한국컴퓨터가 지고 있던 부채는 1천82억원. 자금조달 당시 금리는 14~15%였지만, IMF 한파이후 30%를 넘어서는 금리에 회사측은 거의 손을 놓고 있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은행측은 BIS 비율을 맞추기 위해 매일 채무상환을 독촉하던 시점이었다.회사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했을 때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으로부터 워크아웃 제의가 들어왔다. 왕문경 자금담당 부장은 그러나 “당시 워크아웃이 곧 기업퇴출조치로 알았기 때문에, 처음 워크아웃 제의를 받았을 때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경영진은 그러나 곧바로 “워크아웃을 통해 회생할 수도 있겠다”는 쪽으로 판단을 선회, 신한은행측에 적극적으로 워크아웃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고, 8월29일 워크아웃 기업에 포함됐다. 왕부장은 “은행측의 채무상환 만기일이 8월31일로 예정돼 있던 터라, 워크아웃 결정이 조금만 늦게 났어도 부도가 날 상황이었다”고 말한다.워크아웃 결정으로 채권단의 채무상환 독촉에서 벗어난 한국컴퓨터는 곧바로 연구실장 출신이었던 이정훈(47)씨를 사장으로 전격 발탁, 뼈를 깎는 구조조정 작업을 벌였다. 9개이던 계열사를 대폭 정리, 한네트 한컴전자 한컴기술지원 등 3개사만 남겼다. 직원도 9백55명에서 6백80명으로 줄이고, 급여도 평균 25%씩 삭감했다. 마포사옥 등 본업과 관계없는 부동산도 대거 처분해 3백25억원을 확보했고, 99년 들어 주식시장이 되살아나면서 서울방송을 비롯한 주식매각으로 82억원을 건졌다. 회사 관계자는 “본업을 제외하고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팔아 빚을 갚았다”고 말한다. 덕분에 워크아웃 졸업당시 한국컴퓨터의 부채규모는 3백억원대로 떨어졌다. 2년만에 7백억원을 갚았던 것이다.99년 금융업계의 전산화 열기회복으로 매출도 증가, 99년 말 1천3백34억원의 매출액에 이어 올 연말엔 1천5백35억원의 매출액에 당기 순이익이 2백63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한국컴퓨터는 앞으로 경쟁력 있는 핵심사업 위주의 무차입 경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워크아웃을 통해 얻은 교훈을 지켜나가겠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