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졸업 15개사 등 총 33개 기업 회생 성과 ... 건설업체 포함 '악수', 부정적 여론몰이 씁쓸

이성규 전구조조정위원회 사무국장은 워크아웃이 위기에 처한 기업을 살려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워크아웃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이성규 전구조조정위윈회 사무국장(41. 현서울은행 상무, 이하 이사무국장)이다. 워크아웃의 개념정의조차 안된 초창기부터 기업구조조정위원회의 해체가 결정된 최후의 순간까지 기업의 워크아웃 작업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켜보며 지도·감독해온 실무책임자이자, 워크아웃의 산증인인 셈이다.무엇보다 한국 경제사에 한 획을 긋게 될 격랑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때론 감독자의 입장에서, 또 때론 중재자의 입장에서 제도의 허실을 누구보다 속속들이 들여다 본 전문가로서의 그의 위치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사무국장을 통해 워크아웃의 진행과정과 문제점, 보완점 및 애환 등을 들어본다.이사무국장이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실무책임자격인 사무국장으로 파견된 것은 98년7월1일부터였다. 6월25일 2백10개 금융기관 협약을 통해 7월1일자로 정식 발족된 기업구조조정위원회는 기업의 워크아웃을 실질적으로 통괄할 일종의 감독기구. 이사무국장은 한국신용평가 10년 근무 등의 경력을 바탕으로 같은 해 3월 금융감독원 기업신용평가 관련 전문직으로 고용계약을 맺은 뒤 구조조정위원회에 파견된 셈이었다.이사무국장이 발령받았을 당시 구조위는 한국투자신탁빌딩 10층에 갓 자리를 마련하고, 오호근 위원장을 총사령탑으로 해 4명의 회계사와 각 은행에서 파견된 5명의 인력이 심사역으로 실무작업에 동참했다.그를 비롯한 구조위 식구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워크아웃에 대한 개념정립과 취지, 진행방법 등 기본 틀을 마련한 뒤 7월 중순부터 이를 알리기 위한 세미나를 집중적으로 개최하는 것이었다. 이사무국장은 “워크아웃이란 말이 당시 워낙 생소해 무슨 뜻이냐고 묻는 전화에서부터 부채비율이 높은 재벌기업들의 경우 워크아웃이 기업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등 워크아웃의 취지를 놓고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재벌 죽이기 아니냐”신경전 벌이기도당시 구조위가 정한 워크아웃의 기본원칙은 우선 협약에 가입한 금융기관(채권단)의 채권회수율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워크아웃은 정부(이헌재 당시 금감위 위원장)에서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주도는 금융기관이 자율협약에 따라 하는 것으로 돼있는 만큼 법정관리보다 채권회수에 유리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전제였다. 2백여개 금융기관이 협약에 참여한 것도 ‘빌려준 돈을 한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는 기업을 일단 살려내는 것이 우선’이라는 공감대 때문이었다.이와 함께 전체 워크아웃 일정은 3~5년으로 법정관리(10년)에 비해 짧게 하면서 워크아웃 대상기업은 영업이익 등 기업실적은 좋지만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몰린 기업중 워크아웃 기간안에 영업이익 회복능력이 있고, 신규자금 수요가 크지 않은 회사를 대상으로 했다.이런 원칙 아래 고합을 1호로, 동아건설 갑을 신호 등 중견그룹이 잇달아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됐고, 8월 들어 대상기업은 점차 확대됐다. 최종적으로 선정된 기업은 모두 1백6개. 워크아웃 대상기업들은 일단 선정되는 순간부터 채권단의 ‘빚독촉’이 중지된다. 다음은 회계사를 비롯한 채권팀의 정밀실사를 통해 해당회사의 부채규모를 정확히 파악해 채무유예와 금리감면, 출자전환 등 채무조정작업을 거쳐 기업의 구조조정 플랜을 짜는 것. 이 과정에서 워크아웃 대상기업은 경영목표(매출액 영업이익), 부동산매각 등 자구노력 계획을 제출해야 하고 이를 이행하는 것이 필수요건이었다.이사무국장이 제도상의 허점으로 아쉬워하는 부분은 건설업체를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시킨 점과 일부 채권단의 안이한 채무조정이었다. 즉, 건설업체는 실체가 없이 계약-수주로 사업이 진행되는 특성상 워크아웃에 적합하지 않은데도, 중견그룹의 무더기 도산 우려 때문에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시킨 점이 결정적인 실수였다.또한 당시 은행건전성 여부를 측정하는 BIS 비율을 맞추기 위해 혈안이 돼 있던 은행들이 기업의 부실부문을 떠 안을 경우 자신들의 생존조차 위협받는 현실과 부채탕감 규모가 크면 기업주가 경영권을 내놓아야 한다는 이해관계가 맞물려 부채규모 자체를 줄여주는 잘못을 저질렀다. 결국 고합 등 많은 기업들이 2차 채무조정작업을 거쳐야 했고, 워크아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워크아웃이 무너져야 할 기업을 억지로 연명시키는 제도라는-을 확산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이사무국장은 그렇지만 이런 사례 때문에 워크아웃 자체를 매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조기졸업 15개 업체와 자율추진 18개 업체 등 상당수의 기업들이 워크아웃으로 인해 부도위기에서 벗어나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래 워크아웃 플랜이 5년 일정으로 되어 있는 만큼 겨우 절반 정도의 시점에서 제도의 실패를 운운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지적이다.이사무국장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워크아웃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몰이와 이에 대한 정부의 정책의지 부족이다. 특히 워크아웃이 어느 정도 궤도를 달리고 있는 시점에서 정치권 및 언론에서 워크아웃 기업주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 문제가 터졌고, 이에 편승한 정부(금융감독원)까지 워크아웃 이전의 잘못까지 들춰내는 바람에 워크아웃 일정 자체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빈대(일부 부도덕한 기업주)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워크아웃)까지 태울 뻔했다는 의견이다.운영미숙 확대해석, 제도비판 여론 아쉬워이사무국장은 기업을 부실하게 만든 사업주나 운영상의 미숙에 대해 비판받을 수는 있겠지만, ‘워크아웃이 오히려 경제를 망가지게 했다’는 식의 매도는 워크아웃으로 살아난 기업들조차 부정하는 것이라며, 제도의 취지 및 장점을 받아들이고 단점을 개선·보완해 나가는 태도가 아쉽다고 지적했다.당초 2년간 존속예정으로 탄생했던 구조조정위원회는 올 연말로 수명을 다한다. 기업의 워크아웃은 계속되지만, 워크아웃 협약의 중요 부분이었던 중앙통제기구(구조조정위원회) 대신 채권단 자율협약으로 바뀌게 되기 때문에 제도의 1막이 끝난다고도 볼 수도 있다. 대신 은행권은 효율적인 부실채권 처리를 위해 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CRV)를 설립, 기업의 워크아웃 작업을 주도하게 할 예정이다.또한 정부는 회사정리법에 사전동의제를 도입한다. 이는 법정관리에 앞서 채권단이 자율적으로 채무조정방안을 마련하면 법원에서 법정관리가 받아들여진 뒤 이를 그대로 수용해 실천하는 것으로, 10년씩 끄는 법정관리의 단점과 일부 채권금융기관의 이기적인 행동을 강제조정하지 못하는 워크아웃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이사무국장은 “초창기엔 구조조정위원회가 3공화국 시절 국가재건위원회에 견주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것처럼 오인받기도 했다”며 “워크아웃이 우리 경제사에서 위기에 처한 기업을 살려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기록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