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차일드 프로그램' 통해 9개사 매각, 5개사 청산 ... 구조조정 부진기업, 벤치마킹해야

김치냉장고 ‘딤채’를 모르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러면 딤채를 생산하는 만도공조가 외국기업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만도공조는 지난해 11월 스위스 금융회사인 UBS캐피탈이 주축이 된 컨소시엄이 만도기계의 아산공장을 인수해 설립한 회사다. UBS캐피탈은 그해 한라그룹의 구조조정 소식을 듣고 기업인수에 나서 2천3백50억원으로 이 회사 아산공장을 샀다.이처럼 외국인 손에 1백%지분이 넘어간 한라그룹 계열사 및 공장은 수두룩하다.(표참조) 때문에 한때 재계 서열 12위였던 한라그룹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한라그룹은 이같은 파격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총 5조2천억원 부채 가운데 2조3천억원을 상환했다. 이는 채권단이 직접 나서 기아자동차를 현대자동차에 매각, 30.9%의 채권을 회수했던 것보다 높은 수치다. 대우자동차 채권단의 경우 GM이 당초 제시했던 4조원 가량으로 인수해야 채권회수율이 33.5%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한라그룹의 구조조정은 회사와 채권단이 서로 ‘윈-윈게임’을 구사한 최상의 구조조정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지난 97년말 한라그룹은 부도나자 만도기계 한라건설 한라시멘트 한라펄프제지 등 5개사를 화의신청하고 한라중공업과 한라해운은 법정관리 신청한다는 경영정상화안을 다급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만도기계 한라건설 한라시멘트 한라중공업 등 계열사들이 상호지급보증으로 얽혀 있어 1개 회사라도 삐거덕하면 모든 회사가 연쇄 파산할 수밖에 없다. 또 법정관리나 화의신청기업들은 10년간 기존 채무 6조원을 전액 상환해야 하는 조건이어서 부도난 한라 계열사들이 이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몰렸던 한라에 기사회생의 기회가 온 것은 지난 98년3월. 한라는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구조조정전문회사인 로스차일드와 ‘로스차일드 프로그램’(부채탕감 및 일시변제)을 통한 정상화 계약을 체결했다.그런뒤 한라는 만도기계 한라건설 한라시멘트 한라중공업 등 4개사는 로스차일드 프로그램으로 정상화시키고 한라공조 한라펄프제지 캄코 한라일렉트로닉스 한라창업투자 마르코폴로호텔 마이스터 한라콘크리트 한라개발 등 9개사는 매각, 한라자원 한라해운 한라정보시스템 한라산업기술 한라특장차 등 5개사는 청산한다는 구조조정 최종안을 만들어 채권단에 제출했다.채무변제율 평균 44%, 기아차 30.9%보다 높아채권단이 한라의 최종안에 동의하고 법원이 한라 계열사들에 대한 화의 및 법정관리를 인가하자 로스차일드 프로그램에 따른 한라의 구조조정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만도기계는 98년 보유중인 계열사 주식의 대대적인 매각에 들어갔다. 지분을 매입한 기업은 대부분 국내진출을 노리는 외국계 기업이었다. 캄코주식을 독일 보쉬사에 3백50억원에 매각한 것을 비롯, 한라일렉트로닉스 주식은 독일 VOD사(1백23억원)에, 한라공조주식은 미국 포드사(1천억원)에, 경주공장은 프랑스 발레오사(1천9백80억원)에 매각하는 등 모두 1조3천13억원어치의 자산을 팔아 금융기관 및 상거래 채무를 변제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만도기계의 부채비율은 97년말 9백43%에서 지난 6월말 현재 3백4%로 떨어졌다.한라시멘트는 지난해 3월 브리지론 2억4천만달러와 구조조정 기금 1천1백86억원을 재원으로 국내금융채무 4천5백17억원을 모두 갚았고 올해 1월 프랑스 라파즈사에 M&A돼 브리지론마저 전액상환했다. 이에따라 부채비율은 97년 3천6백85%에서 올해 6월말 현재 2백24%로 크게 낮아졌다.한라중공업은 투자자가 선뜻 나서지 않아 경영정상화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다. 한라 관계자는 “해외 투자자들은 한라중공업과 같은 대규모 중공업회사를 운영해본 일이 없어 투자를 기피하고 인수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헐값으로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적극적인 자세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이에 한라측은 한라중공업(현 삼호중공업)의 지분 1백%를 채권단에 넘기고 현대중공업에 위탁경영을 부탁, 지난해 8월 극적으로 법원이 법정관리를 받아들여 기사회생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 한라중공업은 현대의 위탁경영으로 공장 가동률이 1백%로 정상화됐고 최근 들어 종업원을 7백여명 정도 추가증원키로 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한라중공업측은 올해 결산을 한 상태는 아니지만 경영수지가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기업 자율적 구조조정, 정부도 긍정적 평가한라건설은 건설업 특성상 외자유치가 불가능한 회사였다. 하지만 한라가 서울부채조정기금 5백억원을 차입하고 템플턴에 전환사채 3백억원어치 발행 등으로 지난해 7월 금융채무 2천4백55억원을 전액 상환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에따라 한라건설은 지난해 7월 화의가 종결돼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97년 1천3백41%였던 한라건설의 부채비율은 올해 6월말 현재 1백85%로 낮아져 재무건전성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한라 관계자는 “당초 브리지론의 외자유치 계획은 10억달러였으나 실제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13억달러의 외자를 끌어들이는 성과를 올렸다”고 밝혔다.국내외에 매각된 한라의 13개 계열사 및 공장은 모두 영업이익을 올리는 등 정상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외국으로 팔린 계열사들중에는 임금이 종전보다 오른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한라의 협력업체들은 밀린 납품대금을 전액 회수했고 지금도 정상적으로 거래를 하고 있다.지금은 외국기업이 된 한라계열사 한 관계자는 “채권단에 구조조정을 맡겼으면 우리회사는 공중분해됐을 것”이라며 “매각 등 구조조정을 채권단에 일임하는 것보다 기업 자율에 맡기면 적어도 헐값에는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며 최근 채권단 위주의 무리한 매각정책을 꼬집었다.이 관계자는 이어 “한라는 구체적인 재생프로그램을 가지고 업체들을 찾아다니면서 밤샘 설득작업을 벌여 이같은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고 전했다.재경부 관계자도 “한라의 구조조정은 채권단과 회사 양쪽이 유리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라며 “앞으로 가능한한 기업자율의 구조조정이 이뤄지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한라의 구조조정 성공은 죽기를 각오하고 덤벼들면 기사회생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점에서 최근 워크아웃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기업들은 한번쯤 한라를 벤치마킹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재계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한라는 지난 98년3월 미국 로스차일드사와 계약을 맺고 구조조정을 진행, 13개 계열사와 공장이 현재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