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Workout)’이 본래 살빼는 다이어트 방식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국의 여배우 제인 폰다는 자신의 다이어트 비디오에서 격렬한 운동을 통해 살을 빼는 방식으로 워크아웃이란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군살을 빼고 근육을 단련해 체질을 개선한다는 의미다. 이 말을 잭 웰치 GE 회장이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의 체질을 개선하는 작업’으로 원용하면서 경제용어로도 쓰이게 됐다. 국내에서 워크아웃이 ‘기업개선작업’으로 번역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국내에서 워크아웃이란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지난 98년 이헌재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이 워크아웃을 통해 부도위기에 몰린 6대 이하 중견그룹의 회생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은행과 기업인 및 기자들의 반응은 “워크아웃이 뭐예요?”였다. 마치 TV광고에서 한 아줌마가 “코스닥이 뭐예요?”라고 묻는 것처럼.워크아웃은 일단 낯설고 새로운 기법으로, 그냥 뒀으면 무너졌을 기업들의 연쇄부도를 막고 협력업체들의 진성어음(물품대금)이 돌게끔 만들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부실기업 회생제도로 부각됐다.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당장 금융기관 대출금은 물론 진성어음까지 모두 동결돼 협력업체의 줄도산을 초래했던 것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일시적 유동성 위기 개선기법 ‘주목’대상기업이 청산가치보다 계속가치가 높아야 한다는 점은 법정관리와 같지만 워크아웃은 대상기업이 스스로 진성어음을 결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더라도 채권단이 서로 약속에 의해 공동으로 지원하고 협조하는 구조도 한결 선진화된 금융관행으로 비쳐졌다.또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채권단 자율로 회생을 추진하고 기업이 감당할 수준으로 빚을 줄여주며 기존 대주주나 경영진이 자리를 유지하는 이점도 있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이 워크아웃기업 여신에 대손충당금을 2~20%만 쌓도록 특례를 허용했다. 법정관리 여신에는 충당금이 20~50%인 것에 비해 은행으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따라서 워크아웃은 정부나 기업이나 은행 모두에 ‘괜찮은 부실처리 시스템’이었던 셈이다. 서근우 금감위 제2심의관은 “정부로선 협력업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까다로운 법원이 아닌 채권단을 통해 부실기업을 관리할 수 있는게 워크아웃의 매력이었다”고 말했다.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몰린 기업으로선 워크아웃의 채무조정협약에 따라 살아날 길을 찾을 수 있었고, 은행 등 채권단 입장에서도 일단 살려서 빚을 받아낼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그러나 어두운 그늘도 없지 않았다. 제도 자체의 약점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운용과정에서 변질되고 이를 악용하려는 일부 부실기업주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엿보였던 것이다. 운동으로 살을 뺄만한 비만이어야지 너무 비만해 운동을 하다 더 큰 부작용을 낳는 경우도 생긴 것이다. 게다가 부실기업 회생을 도와야 할 금융권조차 부도위기에 몰려 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부분도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병든 의사가 부실한 장비로 환자를 치유하려고 덤비는 꼴’이었다는 비판도 나왔다.이와 함께 부실기업주가 교묘한 방법으로 자리를 유지하는가 하면 회사돈을 개인용도로 쓴 사례도 드러났다. 또 채권단의 빚탕감에 힘입어 제품원가를 낮춘 워크아웃 기업이 덤핑으로 정상기업에 피해를 주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유령 같은 기업이 뛰어다닌다고 해서 ’강시기업’이라는 별칭까지 나돌았다.고합의 사례를 보자. 고합은 두차례에 걸쳐 2조5천억원에 달하는 부채를 탕감받고도 아직 회생이 어려워 ‘11·3 기업퇴출조치’때 매각을 통한 퇴출기업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고합의 기업주인 장치혁씨는 이사회 의장으로 여전히 건재하다.당초 회계법인의 실사에서 고합은 1조5천억원의 채무조정(이자감면, 출자전환 등)이 필요했다. 이 경우 협약상 기업주가 경영권을 잃게 되는데다, 은행입장에서도 부채를 적게 떠안는 것이 유리하다는 이해관계가 맞물려 5천억원의 채무조정만 했다. 고합은 결국 부실을 털지 못해 올 상반기 2조원의 2차 채무조정을 해야 했다. 처음부터 제대로 했더라면 회생비용을 1조원 이상 줄였을 것이라는게 채권은행들의 분석이다.일부 경영진 악용, 워크아웃 취지 빛바래고합처럼 두번이나 빚을 탕감해준 기업이 18곳에 달하고 워크아웃기업의 채무조정액은 무려 1백조원에 이른다. 채무조정된 여신은 금융기관들이 원금과 이자를 제대로 못받아 부실채권이 된다. 부실채권은 정부의 공적자금으로 메워지므로 결과적으로 국민 부담이 돼왔다. 그러나 물론 기업주나 경영진이 나름대로 노하우와 의지를 가지고 기업을 살려내 조기 졸업한 사례들도 있다.워크아웃에 부적합한 업체들을 워크아웃에 넣은 것은 워크아웃의 본래 취지를 퇴색시키고 효과를 의심케 만든 계기가 됐다. 이성규 전기업구조조정위원회 사무국장(서울은행 상무)은 “건설업체나 금융기관은 애초에 워크아웃에 넣지 말았어야 했다”면서 “나중에 문제가 된 기업들이 대부분 건설업체들이었다”고 지적했다.건설업계 첫 워크아웃 사례였던 동아건설이나 우방 서한 등은 결국 법정관리나 퇴출절차를 밟게 됐다.건설업체는 워크아웃 원칙상 적합치 않은 점이 많다. 건설업 특성상 회수에 몇년씩 걸리는 장기 채권 채무가 많고 그나마 절반은 신용거래여서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순간 공사를 따내기 어려워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실해지는 것이다. 제조업체 위주로 진행하려던 워크아웃에 건설업체들이 10여곳이나 포함된 것은 빚이 많은 30대 그룹중 상당수가 건설업이 모태였던 탓이다. 정부로선 우선 부도부터 막고 보자며 건설업체를 워크아웃에 밀어 넣었다.여기에다 국민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의식한 정부와 금융감독원이 일부 부실기업주의 모럴해저드를 놓고 워크아웃 제도 자체를 도매금으로 매도한 문제점도 지적할 수 있다. 지난 6월 금감원의 특별검사 결과를 보면 워크아웃 전의 문제까지 들춰내 워크아웃이 나쁜 제도인 양 몰고갔다.결국 당초 1백6개 업체를 선정한 워크아웃 제도는 조기졸업 15개사란 성공사례를 비롯해 탈락 8개사, 조기중단 12개사, 합병 15개사, 자율추진 18개사, 계속 진행 38개사라는 결과물을 남긴채 올 연말로 공식 수명을 다한다. 대신 워크아웃의 효율적인 면은 법과 제도에 그대로 승계돼 자율추진 및 계속진행 업체 등에 적용된다. 정부조차도 워크아웃제도는 없어져도 워크아웃 시스템은 채권단 자율협약으로 존속된다고 밝히고 있다.채권단 자율협약은 기업의 영속성, 채권단 자율의 기업회생장치로서 워크아웃 시스템을 고스란히 이어받는 것이다. 따라서 워크아웃은 사라지는 동시에 다시 태어난다고 할 수 있다.★ 용어설명● 워크아웃=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을 살리기 위한 제도로, 채권단이 자율협약에 따라 대출금을 동결하고 기업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감당할 수준으로 채무조정(빚탕감)해 회생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용어자체는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은행권이 주도하는 부실기업 회생 방식은 영국에서 비롯된 것이다. IMF 당시 높은 이자부담과 은행들의 거의 무조건적인 부채상환 요청에 따라 영업실적이 좋은 업체들조차 부도위기에 몰리는 상황에서 워크아웃의 도입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화의=채권단의 합의아래 기업의 채무를 동결시켜주고 회생을 추진하는 것이다. 채권자수가 적고 채무구조가 덜 복잡한 경우에 택하게 된다. 법정관리처럼 경직된 제도가 아니어서 부실이 비교적 크지 않은 기업에 적합하다. 화의법에 따라 법원의 주도로 진행하는 것이 화의이고 채권단끼리 자율적인 약속아래 추진하는 것이 사적화의다. 사적화의는 워크아웃과 유사하다.● 법정관리=법원의 주도로 회생작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채권단이나 채무기업 둘 다 신청할 수 있다. 영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법원이 일체의 채무·채권을 동결하는 우산을 씌워준다. 기존 대주주들은 감자(減資, 자본금 감소) 등을 통해 경영권을 잃는다. 일단 회생가능성(청산가치보다 계속가치가 높은 경우)이 있어야 법원에서 법정관리를 받아주며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에도 경영환경이 악화돼 회생가능성이 없어지면 중도 탈락해 청산되는 경우도 있다.● 청산=매각하거나 정리할 수 있는 자산들을 처분해 대금을 채권자들이 나눠갖는 방식으로 이른바 ‘빚잔치’이다. 기업의 실체가 사라지고 직원 승계도 없다. 전과정을 채권단과 채무기업의 주도로 이뤄진다. 법원의 주도 아래 기업을 청산하는 것이 ‘파산’이다. 채권단은 기업을 정리해 신속하게 채무를 상환받지만 청산결정과 동시에 기업자산가치가 떨어져 상당한 손실을 입는다는게 결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