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폭락으로 수익률 하락.주가조작.자산불법편출입 '치명타'...기관.투자자 감정 '골' 깊어

올해는 한국의 간접투자시장에서 고통스러웠던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지난해 말 1,000포인트를 넘었던 종합주가지수가 일년 새 반토막 나면서 주식분야의 펀드매니저들도 함께 치욕의 길을 걸어야 했다.“주식형 수익증권에 5천만원을 넣었더니 수수료 빼고 3천만원밖에 안남았다. 전문가들이 이럴 수가 있는가”라는 고객의 항의가 투신사 창구마다 빗발친다. 불과 1, 2년 전 엄청난 수익률을 올리며 스타로 떠올랐던 펀드매니저들이 수익률 부진에 대한 회사의 문책 혹은 권고사직으로 그만두거나 자리를 옮겼다.잃은 것은 수익률만이 아니다. 수익률은 그래도 1년만에 다시 회복할 수도 있다. 문제는 회복하기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릴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투신업계에 만연하던 자산 부당편출입문제는 법정소송으로 비화됐다.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는 현대투신운용을 상대로 부실채권을 신탁재산에 편입 상각하는 방법으로 투자자에게 손실을 이전시켰다며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어디 이 회사뿐이랴. 부실자산을 신탁계정으로 빼돌리거나 펀드별 수익률 관리를 위해 특정 주식을 펀드간 편출입시키는 사례가 암묵적으로 행해졌다는 의심이 시장참여자들 사이에 팽배했다.여기에 한국투신과 대한투신 등 대형투신사의 엘리트 펀드매니저들이 코스닥등록기업 ‘세종하이테크’의 주가조작사건에 연루된 사실은 시장참여자들의 분노로 이어졌다.주식형수익증권 역시 수탁고감소로 매수여력이 줄어든 투신사는 주식시장에서 기관투자가로서의 역할을 포기했다. 환매압력속에 수익률 관리를 위해 단기매매에 나서거나 선물과 현물의 가격차이를 이용한 차익거래에 매달려 투신에 대한 불신을 확대 재생산시켰다.대우채 환매제한으로 공사채펀드에서 손해보고 투신사와 펀드매니저의 도덕적 해이를 지켜본 투자자들은 투신사에서 돈을 빼내갔다. 채권형 수익증권의 수탁고는 지난해 7월1일 기준으로 1백86조원에 달하던 것이 올해초 1백6조원, 7월초 45조원으로까지 줄어들었다. 금액으로 1년 새 1백41조원이 줄어든 것이다.하반기 들어 등장한 비과세채권펀드 덕분에 채권형수익증권의 수탁고는 12월초 현재 54조원으로 7월보다는 다소 늘었다. 그러나 여전히 투신사가 채권을 살 수 있는 여력은 대우채 문제가 발생하기 전인 1년 반 전의 30%도 안된다.이러다 보니 채권시장에서는 안전한 국고채와 최우량등급 회사채로만 수요가 몰려 국고채금리는 사상최저치를 경신했다. 채권금리가 하락하면 채권값은 상승하기 때문에 채권시장에서는 유례없는 수익률 레이스가 벌어졌다. 주식형펀드 시장에서는 모든 시장참여자가 우울한데 비해 채권시장은 국채시장의 강세에 힘입어 채권매니저들의 몸값이 한껏 높아졌다.국고채·회사채 자금 양극화 심화시가평가형 채권펀드의 경우 6개월수익률이 5∼6%대를 웃도는 것이 많다. 국공채형 비과세펀드는 3개월 수익률이 3%를 넘는 것도 보통이다. 채권수익률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수익률이다. 그러나 고수익 펀드 가운데에는 금리하락을 예상하고 국고채 편입비중을 너무 높여 국고채금리가 상승반전할 경우 상당한 금리위험에 노출될 펀드가 적지 않다.국고채시장의 활황이면에서 회사채시장은 거의 마비상태이다. 웬만한 회사채도 거래가 안되는 형편인데 투기채가 편입된 CBO, 하이일드펀드의 경우 만기만 다가오면 이 투기채의 수명연장이 모두의 고민이다. 정부는 비과세고수익펀드 세컨더리CBO펀드 등 각종 투기채이월용펀드를 임시방편으로 만들어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터질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증시폭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주식형수익증권과 뮤추얼펀드의 수익률은 한마디로 처참하다. 올 한 해 평균 50% 이상 주식을 편입한 주식성장형펀드들은 연초대비 평균 마이너스 36.21%(12월13일 기준)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일부 성장형펀드는 무려 50% 가까이 자산가치가 줄어들었다.그러나 마이너스 36%의 수익률이라 해도 같은 기간중 종합주가지수(KOSPI)의 하락률이 48% 가까운 것을 감안하면 벤치마크대비 12%의 초과수익이다. 주식편입비율을 낮출 수 없는 약관에 따라 정직하게 운용한 결과라면 비난할 것만은 아니지만 한국현실은 다르다.물론 주식을 적게 편입한 주식형펀드들은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좋았다. 주식을 30% 이하로 편입한 안정형펀드의 수익률은 평균 마이너스 5.80%이다.하락기간중 주식을 하나도 편입하지 않거나 채권 혹은 유동성자산으로만 운용한 ‘무늬만’ 주식형펀드도 있다. 지수선물헤징, 선물과 현물의 가격차이를 이용한 차익거래에만 매달린 펀드도 많다. 이들은 증시회복에 찬물을 끼얹는다며 시장참여자의 원성을 샀다. 그러나 “시장수익률을 비트(beat)해도(시장수익률보다 초과수익을 내도) 일단 마이너스가 되면 고객의 비난, 회사의 책임추궁에 시달려야 한다”는 이들의 항변도 무시할 수는 없다.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장기 투자 대상이어야 할 주식형펀드가 단기상품으로 운용되는 구조이다. 국내에서는 투자자들이 6개월내지 1년이면 투자자금을 찾아버린다. 이 때문에 운용사와 펀드매니저는 단기간의 수익률관리에 대한 압박을 받는다. 저평가 종목을 발굴, 바이앤드홀드(buy and hold)해서 수익을 내는 선진국식 펀드운용이 어려운 이유이다.우재룡 한국펀드평가사장은 “단기적 수익률에 집착하는 상황에서는 펀드매니저의 실적이 안정적으로 나오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펀드시장은 구조적으로 어떤 펀드매니저라도 투자자에게 신뢰를 받기 어려운 구조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