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 주은래, 김정일….한국인이면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공산주의 국가의 지도자 이름이다. 한국인의 뇌리에 박힌 이들 지도자의 인상에서 공통점을 찾자면 무엇이 있을까.닮은 점을 꼽자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국민복’ 복장을 첫 손가락에 들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국민복’이라는 단어에서 받는 어감은 좋다고 하기 어렵다. 멋은 둘째치고 획일적이고도 강제적인 느낌이 이 단어에서 한국인들이 받는 인상이다. 자유분방한 개성과 소신을 고집하는 현대 소비자들의 눈으로 본다면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옷이다.사정이 이러한데도 21세기를 눈 앞에 둔 일본에서는 현재 국민복 열풍이 한창이다. 한 차례 지나가고 나면 잠잠해질 줄 알았더니 바람은 갈수록 더 뜨거워지고 있다.하지만 ‘국민복’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는 했어도 공산주의 국가에서 입던 그런 옷은 아니다. 세련되고도 컬러풀한 최신유행의 캐주얼이다. 세계 최고를 꿈꾸며 유니클로(UNICLO)의 브랜드로 일본 의류시장에서 힘차게 신화창조의 페달을 밟아가고 있는 초저가 옷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국민복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옷이 유니클로의 의류들이다.일본 패션, 의류업계와 유통업체가 유니클로(사장 야나이 타다시·51)에 온통 시선을 뺏기고 있는 이유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남들이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가격경쟁력, 맨파워, 품질 그리고 사장의 개인적 캐릭터와 소비자들의 절대적 지지 등….일본 매스컴들의 관심도 11, 12월부터는 유니클로 하나에만 쏠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업체는 신데렐라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유니클로의 독특함은 먼저 판매전략에서부터 돋보인다. 의류업계에서는 다품종 소량 생산을 선호한다. 되도록 여러 가지 색상과 디자인의 옷을 만들어 소비자들의 눈을 한번이라도 더 붙잡기 위해서다. 한가지 옷에 식상한 소비자들이 다른 스타일에라도 관심을 두도록 선택의 폭을 넓혀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한 전략이다.그렇지만 유니클로는 다르다. 마치 국민복처럼 똑같은 옷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입히려는 듯 ‘일점돌파(一点突破)’의 전략이 기본이다. 이 상품 저 상품에 관심을 두기보다 시장전망이 확실하면서도 경쟁력이 뛰어난 상품 한 두가지로 승부를 건다는 것이다.제조는 코스트 저렴한 중국생산 맡겨간판상품인 후리스 재킷은 유니클로의 소수정예 전략을 그대로 보여주는 케이스다.작년 한해 동안 8백50만장이 팔려나간데 이어 올해는 1천2백만장이 팔릴 것으로 추정되는 이 옷은 일본 의류업계 최고의 빅 히트 상품이다. 판매가격은 불과 1천9백엔.그러나 이 옷은 색상만도 50가지에 달한다. 웬만한 일선 매장에서는 이 옷 한가지만도 모든 색상의 것을 다 진열해 놓기가 벅차다. 한 색상에 5가지 사이즈가 있으니 후리스 재킷에서만 줄잡아 2백 50여종이 나오기 때문이다.유니클로는 생산기지를 1백%에 가까울 정도로 중국에 두고 있다. 기획, 판매는 일본에서 하되 제조는 전적으로 코스트가 저렴한 중국에 맡기는 방식이다. 중국 각지에 있는 공장의 생산량은 최소 한 품목당 1백만장을 넘는다. 물건을 잘 만들어내는 공장이라고 하청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다. 생산 방식은 한 공장 한 품목이 기본이다. 한 우물만 파다 보니 중국공장들도 노하우가 생기고 원가압축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의류업체들의 기피대상으로 꼽혀온 소품종, 대량생산 원칙을 역으로 이용하면서 고품질 저가격 전략을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일본 유통업계는 유니클로의 저가공세로 의류시장 전체가 총성없는 가격전쟁에 휘말려 있다. 백화점, 할인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유니클로의 가격경쟁력을 연구하고 대책을 마련하느라 하청업체 생산라인에서 밤낮을 지새우고 있다. 유니클로 인기상품의 가격대가 2천엔을 넘지 않은 점을 주목, 의류및 유통업체들은 유니클로에 뺏긴 고객의 발길을 되돌리기 위해 보다 더 싼 옷을 만들기 위한 원가싸움에 돌입했다. 유통업계 전문가들은 최근 2, 3년간 의류가격이 30% 정도는 떨어진 것 같다며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작년부터 부쩍 거세진 유니클로 돌풍이 이와 무관치 않다고 진단하고 있다.유니클로의 보이지 않는 경쟁력은 맨파워와 독특한 인사정책에서도 나오고 있다.이 회사의 사원들은 그야말로 유니클로가 좋아서, 유니클로의 옷을 사랑해서 자발적으로 모여든 사람들이다. 그것도 다니던 일류기업을 걷어 치우고 유니클로의 미래에 자신의 젊음을 맡긴 30대의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사장이 반드시 의류업계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들어 왔습니다. 괴짜가 분명하지만 배울 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명문 게이오대를 나와 미국에서 MBA를 취득한 다마쓰 가겐 상무는 야나이사장을 능가하는 경영자가 되겠다는 각오를 서슴없이 털어놓고 있다.최우량 유통업체 이토요카도 눌러스스로 모여들었다지만 맨파워의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유니클로의 임원진은 도쿄대 또는 미국 명문대를 거친 젊은 고급두뇌로 몽땅 채워져 있다. 일선 점장들중에는 의류, 패션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슈퍼 스타급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해외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유학파도 적지 않다. 부사장 직속으로 돼 있는 슈퍼 스타급 점장들의 보수는 철저한 성과급제다.야나이사장은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물에 빠뜨리면 된다”고까지 말할 정도로 과감한 도전정신과 승부사적 기질을 직원들에게 주문하고 있다. 이같은 사장의 배짱과 인재 집단의 젊음, 두뇌가 맞아 떨어지면서 유니클로의 또 다른 성장엔진이 되고 있는 것이다.가업으로 물려 받은 야마구치켄의 조그만 양복점을 일본 굴지의 의류업체로 키운 야 나이사장은 유니클로를 미국의 갭(GAP)을 능가하는 세계 최고의 캐주얼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1년에 1백개씩의 점포를 새로 열고 3억점씩의 의류를 팔아 일본인 누구나가 입고 다니는 국민브랜드로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유니클로는 올 한해 동안 작년보다 배가 늘어난 2천2백억엔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익은 3~8월까지의 중간결산에서 벌써 3백50억엔을 기록, 일본 최우량의 유통업체로 꼽히는 이토요카도의 1백75억엔을 더블 스코어로 눌렀다.유니클로는 현재 일본 전역에 4백50여개 점포를 열어 놓고 있다. 하지만 야나이사장은 영국 런던에 곧 해외 1호점포를 낼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캐주얼의 본고장인 영국에 상륙해 성공을 거둔 후 세계 구석 구석으로 뻗어 나가겠다는 것이 그의 청사진이다. 앞으로 3년내에 영국내 점포를 50개까지 늘리고 실패하면 몇번이라도 다시 도전하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계속 공세적으로 나가지 않는 경영은 경영이 아니다. 기업은 줄기차게 성장하지 않으면 후퇴하고 만다.”안정성장은 쇠퇴를 의미한다고 말하는 그는 “60세전까지는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다”며 그전에 유니클로를 반드시 세계 정상에 올려 놓겠다고 다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