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한번도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된 바 없는 이 이름은 일본 애니메이션(재패니메이션) 감독 중의 한 명이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수없이 돌아다니는 불법 복제물로 이미 국내에도 많은 ‘오타쿠’(마니아)들을 거느리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디즈니 아성을 무너뜨리고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을 제패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이름이며, 하나의 이미지요 브랜드다. 그래서인지 2000년 마지막 주말, 드디어 이 거장의 작품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은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designtimesp=20514>의 배경은 거대 산업문명이 붕괴한 미래의 사회. 지구는 황폐한 대지와 썩은 바다로 뒤덮이고, 모든 생명체들은 죽거나 오염된다. 유독가스를 뿜는 곰팡이 숲, 부해의 위협을 받지 않는 소왕국 바람계곡에 사는 나우시카는 뛰어난 통찰력과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소녀.어느 날 바람 계곡에는 구시대의 병기 거신병을 실은 비밀의 수송선이 추락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자연을 정복하려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음모가 드러나고, 바람 계곡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미야자키 하야오의 초기작에 해당하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designtimesp=20519>는 일본 내에서도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하야오의 명성을 드높였다. 이후 <이웃의 토토로 designtimesp=20520>, <천공의 성 라퓨타 designtimesp=20521> 등 걸작들을 배출하게 되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탄생을 가져온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제서야 하야오의 초기작을 정식으로 만나는 우리에게 가장 매력적인 것은 환상적인 애니메이션 속에 녹아 있는 하야오의 작가의식이다.하야오 특유의 색채와 선으로 그려진 바람 계곡은 놀랍고 환상적이지만 그가 만들어낸 시공간은 국적도 없고 어느 시대인지도 알 수 없는 기이한 디스토피아다.이런 미지의 시공간에서 나우시카는 자연의 순수함으로 돌아가자고 나지막히 되뇐다. 재앙을 가져오게 될 문명에의 맹신을 경고하고 자연으로의 회귀를 희망하는 것, 그건 <미래 소년 코난 designtimesp=20526>에서부터 하야오가 일관되게 얘기한 주제인 동시에 관객을 매료시키는 ‘하야오 월드’의 본성이다.아무튼 디즈니의 천편일률적인 애니메이션에 식상한 관객이나 하야오의 골수 마니아 모두 애니메이션 보기의 새로운 즐거움을 계속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 문화 3차 개방 덕택에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게 된 이 작품을 필두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작품들이 이어 소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