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원개발·벤처 인큐베이팅 등 주력 … 삼성, 4개 업종 e마켓·컨트리마케팅 응수

지난날 ‘수출한국’의 기수 자리를 놓고 ‘용호상박’의 승부를 벌여왔던 최대의 라이벌 현대종합상사와 삼성물산이 ‘누가 더 많은 신사업을 확보하느냐’를 놓고 다시 일전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다.지난 1월말 현대종합상사는 올 수출목표액을 발표하면서 몹시 곤혹스러워 했다. 최대 라이벌 삼성물산에 1위자리를 고스란히 내줘야 하기 때문이었다.현대종합상사는 지난해 2백79억달러어치를 수출해 2백58억달러를 기록한 삼성물산을 제치고 2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그런데 현대종합상사는 올해 수출목표를 1백60억달러로 지난해보다 1백19억달러 줄여잡았고 삼성물산은 지난해보다 22억달러가 증가한 2백80억달러로 잡아 올 종합상사 순위가 판을 벌여보기도 전에 뒤바뀌게 생긴 것이다.현대종합상사가 올 수출계획을 크게 줄인 것은 그룹에서 분리한 현대자동차가 수출업무를 몽땅 되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종합상사 관계자는 “전체 수출의 36%를 차지하는 자동차 물량이 2월중 다 떨어져나갈 것”이라며 부동의 1위자리를 삼성물산에 넘겨주게 한 현대자동차에 서운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현대종합상사는 이미 지난해 이같은 현상을 직감하고 새로운 사업을 찾아 나서 다시 1위자리를 되찾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현대(왼쪽)는 스포츠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고 삼성은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컨트리마케팅에 역점을 두고 있다.이에 뒤질세라 최대 라이벌 삼성물산은 내친김에 확고한 1위자리를 굳히기 위해 지난해부터 e비즈니스 등 사업확장에 들어갔다.삼성물산 상사부문 관계자는 “덩치만 키우려고 그동안 계열사의 수출대행에 치중해온 상황에서 외형상 크기를 비교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지금은 ‘종합상사’란 개념보단 ‘전문상사’란 마인드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기”라고 말했다. 삼성물산 상사부문 수출물량의 15% 이상을 의존해온 삼성전자가 자체 판매망을 이미 구축해놓은 상태에서 굳이 수수료를 물며 ‘한 집안’이란 이유만으로 상사에 대행을 맡겨야 한다는게 설득력이 없다는 얘기다. 지난해 수출탑 신청을 삼성전자에서 가져간 것도 이같은 ‘대행불가론’을 뒷받침한다.이들은 신대륙(사업)에 먼저 자기의 깃발을 꽂기 위해 체중조절을 마쳤거나 한창 진행중이다.현대종합상사는 지난 한해 뼈를 깎는 ‘다이어트’를 마쳤다. 43명의 임원을 20명으로, 10개본부 5개실 체제를 5개본부 2개실로, 53개 지사를 40개로 조직 전체를 축소했다. 현대종합상사 관계자는 “이젠 더 없앨 조직도 내보낼 사람도 없을 만큼 가뿐해졌다”며 “돈 되는 사업은 뭐든지 찾아내 멋지게 한판 붙어볼 생각”이라고 배수진을 쳤다.이에 맞선 삼성물산은 우선 수익을 못내는 자산은 모두 매각한다는 방침을 올해도 밀어붙일 태세다. 여기서 나온 대금으로 지난해 1천2백60억원 상당의 회사채를 만기전에 상환한데 이어 올해에도 2천억원어치를 조기상환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최근 매각에 성공한 LA쇼핑몰(3백72억원)과 러시아오피스빌딩(1백56억원) 등만 봐도 삼성측의 군살빼기 작전은 일단 효과가 있다.해외법인 설립 방향도 ‘교역중심’에서 ‘사업중심’으로 잡았다. 체중뿐 아니라 체질까지 완전히 바꿀 작정이다. 삼성물산 상사부문 관계자는 “단순 트레이딩 비중은 계속 줄이는 대신 해외마케팅에서 오거나이징 영업과 상권투자 등을 계속 확대해 안정적 이익을 얻겠다”고 밝혔다.삼성 ‘디지털 펀치’에 현대 제휴벤처 해외진출 채찍질종합상사 양대산맥의 2라운드(신사업 확장전)의 시작 공이 울리자 삼성물산이 ‘디지털 펀치’를 날리고 있다. 의료, 화학, 수산물, 철강 등 4개 분야의 B2B e마켓플레이스를 지난해말까지 합작법인으로 모두 오픈한 후 분사시켰다. 이와 함께 인터넷을 활용해 나프타, CDR 등 주요품목별로 공급네트워크를 광범위하게 설치할 태세다. “그간 오프라인에서 다져놓은 인프라와 삼성몰 등에서 체득한 인터넷 노하우가 접목되면 e비즈니스 시장 선점은 시간문제”라는게 관계자의 말이다.이에 대한 현대종합상사의 e비즈니스 전략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10월 합작벤처인 ‘엔토크’를 일본에 진출시킨 것에 이어 현재 7개 벤처기업과 제휴, 해외진출에 나섰다. 현대종합상사 관계자는 “중국 등 기존에 터를 닦아놓은 오프라인 영업망과 인적네트워크를 최대한 동원해 제휴벤처들이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선점할 수 있도록 토털 컨설팅을 전개하는 마스터플랜을 세워놓았다”고 자신했다. 특히 지난해 엣데이터, 모빌토크와 손잡은 경험을 살려 최근에 신설한 모바일팀에서 아리랑 TV와의 공동개발로 올해안에 적어도 50개의 ‘알토란’같은 디지털콘텐츠를 쏟아낸다는 전략이다.e비즈니스에서 현대와 삼성의 승부를 확인하기가 아직 이르다면 오프라인에서 양사가 구사하는 전략은 비교적 현실성이 있다. 삼성물산은 개발도상국가를 대상으로 추진해온 ‘컨트리마케팅’을 사업형으로 구체화한다는 전략이다. 내년 완공예정인 가나의 국영정유회사(TOR)의 현대화프로젝트와 송유관 건설사업 등이 모두 1~2년내 완료되면 2억8천만달러의 순매출을 올릴 수 있다. 또 동콤비나트인 카자흐스탄의 카작무스사와 루마니아의 스테인리스 가공공장인 오텔리녹스사 등에 이어 지속적으로 수익을 얻어낼 수 있는 현지사업장을 속속 건설하는 복안도 있다.삼성의 컨트리마케팅에 대적할 수 있는 현대의 히든카드는 뭐니뭐니 해도 자원개발사업이다. 지난해말 리비아 엘리펀드유전 매각대금으로 4백20억원을 현금으로 확보한데 이어 오만의 LNG사업도 내년부턴 배당금이 짭짤할 것이란 기대다.그러나 무엇보다 현대가 기대를 걸고 있는 건 ‘말리 금광’이다. 일각에서 재기되는 채산성 시비에 대해 현대종합상사 관계자는 “3월중 시추 결과가 나오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며 “금광사업은 남해 월드컵 테마파크 조성 같은 스포츠마케팅과 더불어 기대치가 매우 높은 사업”이라고 강조했다.현대종합상사와 삼성물산이 저마다 내세우는 ‘출전의 변’만을 놓고 승부를 가늠하긴 이르다. 그러나 분명한 건 결전의 장이 위치이동을 한 상태에서 예의 단순한 수주경쟁은 소모전일 뿐이란 점이다. 누가 먼저 확실한 수익모델이 있는 신규사업을 찾느냐에 승패가 달려있다는 뜻이다. 또 궁극적으로 디지털 경쟁체제에 얼마나 빨리 적응하느냐도 양사의 힘겨루기를 판가름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막이 오른 용과 호랑이의 제2라운드를 관심있게 지켜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