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정보통신 혁명에서 뒤진 탓에 국가경쟁력이 현저히 추락했지만 산업경쟁력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것은 사실 적지 않다. 택배, 이삿짐 등의 화물운송 서비스도 그 한가지다. 도쿄의 큰 길과 골목길은 고객에게 전해 줄 짐을 싣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택배차량으로 온종일 붐빈다. 시내를 걷다 보면 트럭 4~5대 중 하나는 택배, 이삿짐 회사의 차량이다 싶을 정도로 운송서비스는 일본인들의 생활 전반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운송서비스는 엄청난 황금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시장규모가 크다 보니 대기업들의 셰어 싸움도 24시간 불꽃을 튀긴다. 가격에서 서비스품질 경쟁에 이르기까지 혼신의 힘을 다한 싸움이다. 따라서 돈과 조직, 브랜드 인지도에서 뒤지는 기업은 고객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이삿짐을 나르고 있는 사카이이사센터 직원들. 가구 하나를 나르더라고 고품질서비스를 지향한다는 것이 이들의 자부심이다.오사카 인근의 소도시 사카이(堺)에 본거지를 둔 ‘사카이 이사센터’(사장 다지마 나오코, 田島治子)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포화상태의 시장에서 독자 생존을 모색하는 기업들에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거인 기업들이 시장을 틀어쥐고 있는 상태에서 지방의 꼬마 회사가 어떻게 활로를 찾고 줄기차게 성장해 나갈 수 있었는지를 일러 주는 참고서이기 때문이다.이 회사의 활력은 2000년3월 결산기 영업실적에 잘 나타나 있다. 이삿짐 취급건수는 20만8천건으로 99년3월 결산기 때보다 거의 20%가 늘어났다. 매출은 18.3% 증가한 2백35억5천만엔을 기록했다. 연간 전체 외형이 4천5백억엔대에 머물면서 제자리 걸음을 반복하고 있는 최근 수년간의 업계 사정에 비추어 보면 단연 빼어난 성적이다. 주주자본이익률(ROE)은 10.8%로 운송서비스 업계의 수위업체인 니혼통운의 6.6%와 야마토운수의 5.1%를 훨씬 앞지른다.인력·장비활용 등에서 경쟁우위96년 이후 매년 10% 이상의 외형성장을 지속해온 이 회사의 성공 비결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핵심을 끄집어 낸다면 고객에게 최대한의 믿음과 안심을 주려한 정성 그리고 스피디한 의사결정과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 등으로 압축할 수 있다.이사 서비스는 이미지를 먹고 사는 성격이 강한 업종이다. 전문 회사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내용과 가격(이사비용)이 거의 비슷해 차별화가 쉽지 않다. 게다가 고객들은 사전에 마음 속으로 예정가격을 어림한 후 이사회사 직원들에게 견적을 뽑게 한다. 그러니 일은 싼 가격을 제시한 회사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무엇보다 크다. 고객들 사이에서는 ‘어느 회사가 가장 싸고 좋더라’는 인상이 가격 중심으로 형성될 확률이 높다.사카이 이사센터는 영업사원들이 이사전 고객 집을 방문해 일을 따내는 계약 체결률이 평균 93%로 현저히 높다. 계약 체결은 영업 사원들의 말솜씨와 태도에도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전적으로 이 회사가 영업전략을 잘 짠 덕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하지만 이 회사는 영업사원이 고객을 만났을 때 제시하는 자료부터가 다르다.“우리는 가격으로 승부하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우리 회사의 이름을 모릅니다. 그래서 주가추이와 영업성적 등의 결산자료를 제시합니다. 성장하는 기업, 매출이 쭉쭉 늘어나는 회사라는 것을 알면 고객들은 틀림없이 안심합니다. 그때 가서야 우리는 품질의 차가 성장의 비결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이 회사 다지마 나오코 사장이 들려주는 힌트에는 고객의 마음을 읽고 잡아두려는 정성이 세심하게 담겨 있다. 고객이 사카이 이사센터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분위기가 되면 가격을 제시한다. 이삿짐 서비스는 가격흥정이 있게 마련이다. 고객들은 견적이 예상보다 더 나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십중팔구다. 이 회사 영업전략의 진가는 이때 또한번 빛난다. 직원들은 가격교섭에 관한 한 절대적 권한을 가진다. 본사로 상사에게 전화 한 차례만 하면 서로 상의가 되고 그 자리에서 가부가 결정된다. 본사로 결정을 미루거나 영업직원이 한 집을 2회 이상 방문하는 일은 없다.고객에게도 폐를 끼칠 뿐 아니라 회사에도 시간, 인력 낭비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다시마 사장의 소신이기 때문이다. 경쟁 타사에 대한 이 회사의 우위는 장비와 인력활용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다지마 사장은 차량구입비, 연료비, 인건비 등은 모두 비슷하다며 설비와 인력을 어떻게 한번이라도 더 가동하느냐에 승패가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 회사는 차량의 적재 효율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추고 싣는 양이 각기 다른 6종류의 차량을 준비해 놓고 있다.2~3대의 차량이 움직일 것을 한번으로 끝내면 초기투자는 많이 들지 몰라도 사람과 차량의 효율이 그만큼 올라가니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이익이 아니냐는 판단에서다. 이 회사는 현장인력의 업무숙련도를 중시해 아르바이트 직원들에 대해서도 급여 체계를 3등급으로 나눠 적용한다. 일을 잘 하는 직원에게 더 많은 보수를 주어 일할 의욕을 북돋워 주자는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사카이 이사센터 TV CF장면. 코믹한 모습과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평을 듣고 있다.다시마 사장은 이 회사의 또 다른 경쟁력으로 고품질 운송 서비스를 강조하고 있다. 98년과 99년에 ISO 9001, 14001을 취득한 실력이 서비스 질을 보여준다는 것이다.이 회사는 짐을 나르는 과정에서 보는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만큼 지독하게 주의와 정성을 쏟는다. 새로 지은 집의 경우 실내에 흠이 생기지 않도록 천장에도 커버를 씌우고 작업을 할 정도다. 작업 공정과 클레임 발생시의 대처 요령 등은 모두 매뉴얼화해 수시로 직원들에게 공부시키고 있다.“독일에는 운송회사에 대해서도 마이스터(장인)의 자격을 인정한다고 하는데 왜 일본에는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직원들에게도 자부심을 심어줄 것이 분명한데 말입니다.”다시마 사장은 자신의 기술을 발전시키고 자식들에게도 대물림하는 전통을 만들기 위해서는 장인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옳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운송서비스업계는 불황을 모르는 이 회사의 기업체질을 연구하면서 그 배경에 경영정보 공개제도가 자리잡고 있음을 주목하고 있다.경영정보 소상히 공개, 애사심 북돋워사카이는 사소한 경영정보까지 직원들에게 모두 알려주고 있다. 일본 전역에 깔린 76개 지사에서는 매월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직원들에게 배포한다. 영업 사원들의 계약체결률은 하루에 3차례씩 집계돼 공표된다. 이 회사는 또 직급을 계장에서 본부장까지 5단계로 대폭 축소하는 등 조직을 최대한 수평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오전 6시부터 8시까지 열리는 영업미팅은 영업사원뿐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알 수 있는 자리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다지마 사장은 정보공개에 대해 확고한 소신을 갖고 있다.“사원들이 자신이 사장이 된 기분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경영정보를 참고하면서 지점, 지사의 일까지도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이지요.”고객에게 믿음을 얻지 않고는 일을 따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장도 직원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면 지시가 제대로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고 그는 믿고 있다. 올해로 창업 30주년을 맞는 이 회사는 그동안 오사카 일대를 주요 시장으로 삼았던 것에서 벗어나 작년부터 간토, 나고야 일대와 규슈지역으로까지 영업망을 대폭 넓히고 있다. 일본 전역을 겨냥한 텔레비전 CF에도 작년에는 11억5천만엔을 투입했다. 이에 따라 5년 전만 해도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했던 간토 지역의 매출비중이 최근에는 50% 정도로 떨어지면서 사카이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하고 있다.“사카이는 이제 더 이상 지방 중소회사가 아닙니다. 간사이에서 시작된 바람을 일본 전역으로 확대시킬 겁니다.” 다시마 사장은 “품질싸움에서 이겨 경쟁에서 살아 남겠다”며 고품질 서비스와 정성을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