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온라인 무협물로 변신, 중흥 모색… 무협만화 '명불허전', 경쟁력·성장 가능성 커

무협을 소재로 활용한 상품으로 가장 먼저 강호에 선을 보인 게 바로 무협소설이다. 지난 61년 당시 경향신문에 근무하던 고 김광주씨가 <점해고홍 designtimesp=20737>이라는 소설을 <정협지 designtimesp=20738>로 번안해 연재하면서다. 당시는 마땅한 즐길거리가 없던 때였던 만큼 무협소설은 기름에 불 번지듯 빠르게 퍼져나가 <군협지 designtimesp=20739> <천애기 designtimesp=20740> 등이 잇따라 번역됐다. 게다가 양우생을 필두로 대만의 ‘신파무협’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무협소설의 인기를 부채질했다.70년대 들어 을제상인 등 국내 창작무협작가가 등장, 외국 무협소설의 번안에서 벗어난 다양한 작품이 나오면서 무협소설은 첫 중흥기를 맞았다. 중국작가의 이름을 모방하거나 중국무협소설의 스타일을 흉내낸 책들이 마구잡이로 등장하고 공장시스템으로 무협소설이 양산되는 등의 문제점도 나타났지만 독자들의 수요는 엄청났다. 무협소설이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그러다 80년대 들어서면서 컬러TV와 자동차 보급의 증가, 일부 유명작가의 필명 대용, 지나친 선정성 등으로 무협소설은 독자와 여론의 외면을 받으면서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무협소설이 신군부에 의해 된서리를 맞는 일도 생겼다.<영웅문 designtimesp=20747>, 무협소설 ‘중흥의 불’ 댕겨이런 와중에 다시 무협소설의 불을 댕긴 것은 86년 고려원에서 ‘신필‘로 불리는 홍콩작가 김용의 <영웅문 designtimesp=20750>을 신국판 정장본으로 발행하면서부터. 대대적인 광고와 고급 무협소설을 기다려온 독자들이 대거 몰리면서 <영웅문 designtimesp=20751>은 1백만부 이상이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국내 출판시장이 무협소설로 다시 U턴하는 안내등의 역할을 한 것이다.그러나 <영웅문 designtimesp=20754>으로 촉발된 무협소설 붐은 오래가지 못했다.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야외레저에 대한 수요 급증, VCR와 홍콩무협영화 등을 중심으로 한 영상물에 대한 수요 확산,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designtimesp=20755>으로 대표되는 만화붐 등으로 무협소설은 90년대 초까지 다시 침체기를 맞는다. 야설록을 비롯한 적지 않은 무협소설가들이 만화스토리작가로 전업했던 것도 이때였다.무협만화가 전체 만화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70% 정도다.하지만 무협의 맥은 강고했다. 90년대 중반께 좌백 용대운 풍중호 석송 등 일군의 신세대 무협작가들이 등장하면서 무협소설은 다시 횃대를 차고 오른다. “이전의 박스무협소설이 신국판으로 모두 바뀌고 작품도 변하면서 무협소설이 부흥기를 맞았다”는 것이 시공사 단행본사업부 정상우씨의 말이다. 이른바 ‘신무협’의 등장이다. 평범한 주인공, 현실적인 스토리, 생생한 심리묘사, 역사적 배경과 문화에 대한 연구·고증을 바탕으로 한 묘사, 세련된 문체 등 이전의 무협소설과는 확연히 다르게 변신한 신무협은 빠르게 독자들을 파고들며 무협소설의 두 번째 중흥기를 불러왔다. 진산 등 여류 무협작가들이 등장한 것도 이런 신무협의 등장과 맥을 같이 한다. 하이텔 천리안 등 PC통신마다 무협동호회들이 잇따라 결성됐으며 무협소설 공모전도 열려 신세대들의 무협열기를 자극했다. 무협소설인구가 3백만명이니 5백만명이니 하는 말이 나오고 유명출판사나 전문서적만을 내던 출판사들이 무협물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이처럼 부흥과 침체를 거듭하면서 마니아층을 형성한 무협소설은 최근 다시 전환점에 서있다. 수요자들의 입맛이 변했기 때문이다. ‘환협지’(판타지소설과 무협지의 준말로 두 종류를 혼합한 스타일의 소설)의 득세, 온라인 무협소설의 수요 급증, 무협소설 이외의 즐길거리가 많아진 점들이 변화를 자극하는 방아쇠들이다.무협소설업계에서는 무협소설이 퇴조하는게 아니냐고 우려할 정도다. 종로 5가에서 전국 3백여 대본소에 책을 공급하는 제일서점의 최정옥씨(55)는 “요즘 무협소설의 제작 건수는 과거와 비슷하지만 정통무협물의 판매량이 떨어지는 대신 판타지 무협물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정통무협물이 변신을 거듭해왔듯 무협물이 판타지와 결합해 독자층을 넓히는 것은 당연하다는 시각도 있다. 여류 무협소설가인 우지연씨(필명 진산)는 “무협소설이 판타지나 팬픽 등 다양한 아이콘으로 변형되고 정치 경제 등을 변형된 무협 코드로 풀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변화에 맞춰 무협소설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PC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무협소설도 기존 출판무협을 위협하는 요소로 거론된다. 대본소 중심으로 유통구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무협소설이 권당 1만부 수준으로 팔리고 대여점의 무협소설 대여가 최소 7번 이상 이뤄져야 작가나 출판사측이 손해보지 않는데 온라인 소설의 등장으로 시장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온라인 무협서점의 한 관계자는 “PC통신에서만 팔리는 무협소설이 한달에 5천여권에 이르며, 인터넷에서 팔리는 무협소설만도 3천여권에 이를 정도로 온라인 판매가 엄청나다”고 말했다.현재 온라인으로 무협소설을 제공하는 곳으로는 PC통신, 라이코스(comics.ly-cos.co.kr) 네띠앙(comic.netian.com) 등 인터넷 포털사이트, 블랙탄(www.blacktan.co.kr) 바로북(www.barobook.com) 북마을(www.bookmaul.co.kr) 등의 전자서점, 코믹스투데이(www.comicstoday.com) 코믹OK(www.comicok.com) 등 만화사이트들이 있다. 여기에 무협소설 동호회나 개인이 무협소설을 제공하는 사이트를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임이모, 금강, 와룡강, 고 서효원 등 무협작가들이 주주로 참여한 전자서점 블랙탄의 임경석(필명 임이모)사장은 “무협소설을 연재한 모신문사 사이트에 국내외 열람자수가 급증한 것처럼 무협인구는 상당하며 블랙탄만 해도 20∼40대를 주축으로 하루 약 4천여명이 방문한다”고 말했다.무협 동호회·사이트 증가무협소설이 변화의 시점에서 주춤거리는 것과 달리 무협출판물의 또다른 주요 채널인 만화시장에서는 무협물의 인기가 여전하다. 무협만화가 일일만화(만화대본소용 만화)를 포함해 전체 만화시장에서 60∼70%의 비중을 차지할 정도다. 종로5가에 자리잡은 우리서점의 김세연씨는 “코믹스에서 다소 부진하지만 대본업소로 나가는 일일만화는 거의 대부분이 무협만화”라고 말했다. 서울 이화여대 근처 이로이로 만화카페의 최윤희씨도 “<절대쌍교 designtimesp=20783> <용비불패 designtimesp=20784> <철랑열전 designtimesp=20785> 등의 무협만화가 남학생층에게 인기가 높으며 무협만화를 찾는 여학생들도 많다”고 말했다.이러한 무협만화 열기를 이어주는 것은 정통 무협만화가 아닌 변형물. “코믹 엽기 등 다양한 문화적 코드와 어울려 변형된 무협이 신세대들에게 인기”라는 게 한국만화가협회 한재호씨의 말이다. 이런 변형 무협만화의 대표사례로 주인공을 아주 가벼운 인물로 처리한 <열혈강호 designtimesp=20788>를 들 수 있다. 국내에서만 2백만부 이상이 팔렸으며 해외 수출, 게임제작 등으로 한국 만화산업에서 뚜렷한 이름을 남겼다.무협만화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독자를 사로잡는 것에 대해 무협전문 만화가 하승남씨는 “무협만화는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액션 사랑 등 드라마틱한 요소들을 독자들이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매력이 크다”고 설명했다. 하씨는 또 “일본만화에 비해 국내 만화가 기획력과 시나리오 등에서 다소 처지지만 무협이라는 소재의 가능성과 일본만화보다 (무협만화가)상대적으로 격차가 적은 점에서 본다면 한국무협만화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노부(나이많은 무림인)’ 무협이 일으키는 바람이 식지 않을 것을 시사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