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영화계는 유성 영화의 도래 이후 최고의 흉작을 기록했다는 평가가 내려질 정도로 이렇다 할 문제작을 찾아 보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스티븐 소더버그의 이름은 단연 두드러진다. 데뷔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designtimesp=20732>로 26살의 나이에 칸 영화제 대상을 거머쥐기도 했던 그는 지난해 초 <에린 브로코비치 designtimesp=20733>를 통해 할리우드의 새 리더로 떠올랐다. 아카데미 워원회도 그를 인정했다. 올 3월에 열리는 아카데미 영화제 작품상 후보에는 <에린 브로코비치 designtimesp=20734>와 신작 <트래픽 designtimesp=20735>이 동시에 올라 있을 뿐 아니라 소더버그 자신은 두 작품으로 감독상 후보에도 중복돼 오르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게 된 것.<트래픽 designtimesp=20738>은 마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양한 각도에서 그린 영화. 대통령 직속 마약단속국장으로 임명된 로버트(마이클 더글러스)는 의욕을 가지고 마약과의 전쟁에 뛰어들지만 정작 고등학생인 외동딸의 마약 중독도 고치지 못하는 무능한 가장이다. 멕시코의 국경 경찰인 하비에르(베니치오 델 토로)와 마놀로는 우연히 기회에 멕시코 최고의 권력자인 살라자르 장군의 수하에서 일을 하게 되지만 사실은 그가 거대한 마약조직의 우두머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고민에 빠진다. 한편 마약 조직의 거물 카를이 체포되면서 남편의 정체를 모르던 평범한 주부 헬레나(캐서린 제타 존스)는 곤경에 처한다. 그러나 그녀는 가정과 자신을 살리기 위해 카를의 사업을 손수 떠맡을 뿐 아니라 청부살인까지 계획한다.제목인 트래픽(Traffic)은 마약이 유통되는 경로를 일컫는 용어. 소더버그는 마치 형사가 그 경로를 파헤치듯이 로버트, 하비에르 그리고 헬레나가 마약에 접근하는 각기 다른 방식을 세밀하게 추적해 나간다. 전작 <조지 클루니의 표적 designtimesp=20741>에서 보여준바 있듯이 각기 다른 캐릭터들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들을 교차시키면서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가는 소더버그 솜씨는 이야기에 접근하는 관객 시선을 넓혀주는 동시에 계속되는 긴장감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각 인물에 대해 지나치게 친절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이야기 전체가 지루하게 진행되는 점이나, 멕시코와 워싱턴을 각각 베이지와 블루의 모노톤으로 담아낸 작위적인 처리는 오히려 영화의 맥을 떨어뜨리는 아쉬움을 남긴다.개성있는 연기진도 영화를 빛내준다. 로버트 역의 마이클 더글러스는 기복이 심한 감정의 폭을 베테랑다운 솜씨로 표현해내고 있고, 캐서린 제타 존스 역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당찬 아줌마역을 재치있게 소화한다. 하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연기자는 베니치오 델 토로. 거친 동시에 따뜻한 정감을 지닌 하비에르 역으로 그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