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냉동공조기술·구전마케팅 한몫 … 97년 매출액 전년비 4백% 껑충 ‘회사 살린 일등공신’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가전시장을 휘어잡고 있는 가장 큰 화제는 바로 김치냉장고 돌풍이다.5년 전엔 이름조차 없었던 김치냉장고 시장이 지난해엔 90만대 6천억원 규모로 급성장했고, 올해는 1백20만대, 1조원 규모로 늘어날 예정이다. 이런 숫자놀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소비자의 선호도다. 김치냉장고는 이미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에 이어 일반 가정에서 갖추고 싶어 하는 5대 가전품목이자 혼수가전의 필수항목으로도 자리잡고 있는 추세다. 그만큼 ‘장사’가 되는 시장이다 보니 가전업체치고 김치냉장고 시장에 뛰어들지 않은 회사는 없다.김치냉장고시장 60% 점유 ‘마켓리더’만도 김치냉장고 딤채그러나 5년 전만 해도 김치냉장고 시장이 이렇게 폭발적으로 성장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김치냉장고 ‘딤채’를 업계에서 처음으로 내놓았던 만도공조 위니아 직원들 사이에서조차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했다.그렇다면 국내 최초의 김치냉장고로 출발, 파이(시장규모)를 키워가며 현재 시장의 60%를 움켜잡고 있는 마켓리더이자 3년 연속 각종 매체로부터 히트상품으로 선정된 ‘딤채’의 성공비결은 과연 무엇일까.딤채의 성공비결에 앞서 ‘만도공조’란 회사부터 알아보자. 만도공조는 97년 부도난 만도기계가 사업부문별로 회사를 매각하면서 새로 탄생한 회사다. 현재 스위스은행이 1백% 지분을 갖고 있다. 60년대 초에 설립된 만도기계는 한라그룹 계열 자동차부품 전문회사. 특히 자동차 에어컨부문이 강했다.그러나 부품회사의 특성상 자동차산업의 부침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90년대 초부터 ‘위니아’란 브랜드로 가정용 에어컨을 생산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직접 소비재 하나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판단아래 또하나의 상품을 기획하게 됐고, 여기서 나온 것이 김치냉장고였다. 회사 경영진은 30여년간 냉동 공조(공기조절) 분야에 쌓아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가장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상품이 김치냉장고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회사로선 일종의 모험이긴 했지만 93년5월부터 96년2월까지 34개월 동안 34억원을 연구개발비로 쏟아 부었다.만도공조가 개발한 ‘딤채’ 기술의 핵심은 김장김치 맛의 재현. 겨울철 김장김치 보관의 최적 땅속 온도인 영하 1도~영상 1도 사이를 유지해주는 기술로 김치를 맛있게 익게 하면서도 4개월이나 장기보관이 가능하도록 했다. ‘딤채’란 이름은 조선시대에 쓰이던 김치의 고어에서 따왔다.마침내 95년 하반기 1차 시제품이 나왔지만 문제는 판로였다. 어떻게 팔아야 할지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제품 출시를 앞두고 행한 소비자 설문조사에서 소비자들은 김치냉장고의 필요성은 막연히 인식하면서도 기존 냉장고에 대한 신뢰도가 워낙 컸다. 게다가 소비자가 원하는 김치냉장고의 가격대는 겨우 15만원선. 그러나 ‘딤채’ 초기모델의 가격은 43만원 선이었다. 2백여개의 위니아 에어컨 대리점들도 “에어컨 회사가 무슨 김치냉장고냐”며 “못팔겠다”고 손을 저었다.이래저래 제품판매 방안을 놓고 골머리를 앓던 본사 마케팅팀이 내놓은 최종 아이디어는 ‘무스탕 마케팅’. 미국 포드자동차가 대형차가 판치는 시장에 소형차(무스탕)를 개발, 이를 판매하기 위해 전국 50개 주립대 학생회장들에게 차를 무상으로 기증해 운전하게 함으로써 성공적인 시장진입은 물론 자동차의 신개념을 만들어내며 포드신화를 일궈낸 주역이다.여성 오피니언 리더 3천여명 대상 사전 판촉마케팅팀은 곧바로 여성 정치인, 방송인, 소비자전문가, 요리전문가, 대단위 아파트 부녀회장 등 여성계 오피니언 리더 3천명을 선발, 이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냈다. ‘신개념 김치숙성 냉장고를 새로 내놓았으니 4개월 동안 무료로 사용하고 만족하면 반값에 드리겠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만족하지 않을 경우 아무 조건없이 수거하겠다는 약속과 함께.이 제의에 응한 테스트마케팅 소비자 2천3백명에게 95년12월 제품이 배달됐고, 이듬해에 들어서면서부터 소비자들의 반응이 답지하기 시작했다. 회사 관계자는 “기대 이상의 극찬이었다”고 전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4개월 뒤 대부분의 소비자가 반값에 딤채를 구입했다. 반납한 8명은 하자상품이 배달된 가정이었다.본격적인 제품 출시는 96년6월. 이후 12월말까지 2만대가 팔렸는데 대중매체 광고를 거의 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부분이 주부들의 ‘입소문’이 낳은 결과였다. 96년 말부터 신문광고 및 프로모션을 시작하긴 했지만 철저하게 주부들의 구전마케팅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덕분에 97년에 접어들면서 매출은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급기야 97년 하반기, 특히 김장시즌부터는 주문이 폭주했다. 하루종일 공장을 돌려도 밀려드는 주문을 맞출 수가 없었다. 수요조절을 위해 프리미엄을 10%씩 붙여 팔아도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결국 2만명의 고객은 현금을 걸고 주문만 한 채 다음해까지 기다려야 했다. 97년 매출액은 전년보다 4백%가 늘어난 4백억원으로 모두 8만대를 팔았다.회사측은 딤채의 성공비결로 ‘구전마케팅’을 꼽는다. 회사 관계자는 “구전마케팅의 효과가 2~3년 후에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렇게 빨리 폭발적으로 나타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며 주부들의 입심에 경이감을 표했다.현재 딤채는 크기에 따라 6가지 모델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를 위시해 LG전자, 대우캐리어 등 대부분의 업체들이 김치냉장고를 내놓고 치열한 추격전을 벌이고 있는 현실에서 딤채의 약점으로 꼽히는 것은 ‘가격이 비싸다’는 점. 회사측은 그러나 “김장김치의 최적 숙성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보유한 회사는 우리회사 뿐”이라며 “비싼 만큼 가치가 있는 제품, 가격보다 질로 승부를 거는 제품을 만들겠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인터뷰김종우 만도공조 딤채 마케팅팀 과장‘써보니 좋더라’ 입소문, 주문 폭주“‘딤채’가 회사를 살린 1등 공신이지요. 딤채가 아니었다면 회사가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만도공조 딤채 마케팅팀 김종우(35) 과장은 “딤채 주문이 폭주하던 97년 하반기는 공교롭게도 IMF 경제위기가 시작되던 시점이자 회사가 부도를 낸 시점이기도 했다”며 “부도난 회사에서 꼬박꼬박 월급 받고 상여금까지 챙긴 회사는 우리밖에 없을 것”이란 말로 딤채의 인기를 설명했다.“‘딤채’ 개발을 놓고 회사내부에서 반대의견이 많았습니다. 괜히 적자 아이템을 만들어 회사를 어렵게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컸었죠. 저희 팀도 주부들을 대상으로 테스트 마케팅을 하고 나서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죠.”김과장은 “일반적인 테스트마케팅의 경우 소비자들의 불만이 쏟아지는 것이 상례인데 딤채의 경우 대부분이 감사 편지였다”고 전한다. ‘써보니 좋더라’라는 이런 찬사가 결국 주부들의 ‘입심’을 타고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면서 주문 폭주로 이어졌고 회사측은 ‘박카스 영업’이란 특이한 영업방법을 쓰기도 했다.“박카스영업은 박카스가 한참 잘 나가던 시절 수요가 너무 많아 현금을 먼저 입금한 영업점에 한해 액수만큼 물건을 배달해주는 영업방식인데 제조업체라면 한번쯤 꿈꾸는 영업방식이지요. 덕분에 월급 걱정을 덜어낸 것은 물론 부도 이후 회사의 회생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딤채가 없었다면 감히 투자하겠다는 회사도 없었겠지요.”김과장은 당시 반대를 무릅쓰고 딤채 생산 및 판매를 지휘했던 경영진은 현재 황한규사장을 비롯해 회사 경영의 주축이 됐다는 말로 딤채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김과장은 이와함께 IMF와 맞물려 폭증한 딤채 판매는 서민용으로 보기엔 비싼 가격으로 미뤄 당시 우리 나라의 빈부 격차가 그만큼 컸다는 뜻이 아니겠냐며 사회의 어두운 한 단면을 지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