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백욱인 엮음/창작과 비평/296쪽/2001년/1만2천원

강아지가 한 마리 지나간다. 애완견을 좋아하는 사람은 무슨 종인지, 몇살이나 먹었을지 궁금해 한다. 마침 지나가던 수의사는 개 꼬리에 돋아난 부스럼을 눈여겨 본다.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큰 병이 될텐데’. 동물을 그릴 요량이던 화가는 개의 동작 하나하나와 근육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동물을 무서워하는 어린아이는 개가 자신을 물지나 않을까 온 신경이 쏠려 있다.같은 대상도 누가 보느냐에 따라 너무나 다르게 마련이다. 기업가, 관료, 경제학자, 엔지니어, 미래학자 …. 인터넷 혁명에 대해 수많은 논객들이 말하고 또 말했다. 그래도 이 혁명은 여전히 정체불명이고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지 오리무중이다. 아직 다른 각도에서 다른 시선으로 이해할 여지가 무궁무진한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눈을 빌려 볼 때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이 책은 과학기술사회학자들의 눈과 머리를 빌려 보는 인터넷 혁명에 관한 것이다. <싸이버스페이스 오디쎄이 designtimesp=20789>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가상공간을 부유하듯 탐색한다. 들어가는 첫 장은 인터넷의 역사에 대한 글이다. 급변하는 현재에 살면서 미래가 궁금하거나 불안할 때 사람들은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보게 마련이다. 계산기부터 시작해 네트워크의 유래가 된 아파넷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인터넷의 꼴이 갖춰지기까지의 역사를 살펴보고 난 뒤의 결론은 기술의 독재성과 문화성을 동시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의 독재성은 물질성이라는 말로도 바꿀 수 있다. 비록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일단 만들어진 후에는 인간의 개입에 저항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기술은 또한 문화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사람들의 의도적인 노력에 따라 다른 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총이 널리 보급된 이후에도 일본 무사들이 검을 선호했듯이.인터넷의 일대기를 둘러보고 나면 현실세계와는 또다른 자유와 규제가 존재하는 세상, 넷의 안과 밖을 들여다보는 글들이 준비돼 있다. ‘넷 안’의 이야기들은 네트와 사회운동, 가상공동체 등에 대한 통찰이고 ‘넷 밖’은 정보통신계의 공룡기업과 벤처, 이런 기업의 CEO, 밤새는 엔지니어, 투자자 등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안과 밖을 누빈 다음에는 그 이면을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정보의 편재가 사회경제적 격차를 점점 더 넓히고 있음이 이같은 정보사회의 이면 중 하나다.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의 생활화라는 측면에서 이 격차는 더욱 뚜렷해진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더 많은 공공장소에서 접속이 가능케 하는 것, 접속장벽을 낮출 수 있게 하는 심리적·실질적 교육 등이 제시된다.여기 실린 글들은 인터넷 혁명의 역사적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측면들을 각각 짚는다. 엮은이인 홍성욱(토론토 대학)·백욱인(서울산업대) 교수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논문을 쓰고 주제별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필자에게 집필을 의뢰했다고 밝히고 있다. 정보통신 혁명이라는 흐름에 능동적인 주체로 참여하려면 개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구체적인 강령은 아니지만 각자의 원칙을 형성할 배경 관점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의를 찾을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