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후작(Marquis de Sade). 문학 역사상 그만큼 푸대접을 받는 작가를 찾기도 쉽지 않다. <소돔의 120일 designtimesp=20752>을 비롯한 그의 작품 대부분은 아직까지 금서로 취급받기 일쑤다. 그 뿐 아니라 그는 작품보다 오히려 그의 이름에서 파생된 새디즘(가학증 혹은 음란학대증)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인물이기도 하다. 아마도 사드가 살아 있다면 그의 이름이 도서관보다 정신과 병동에서 더 자주 언급된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릴지도 모르겠다.사태가 이러하니 <프라하의 봄 designtimesp=20755> <북회귀선 designtimesp=20756> 등 소위 지적인 체 하는 에로티시즘 영화로 알려진 필립 카우프만의 새 영화 <퀼스 designtimesp=20757>가 사드 후작의 말년을 다룬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관객들의 상상에 어떤 그림들이 펼쳐졌는지는 뻔하다. 그리고 이 그림들은 아마도 감독을 어지간히 괴롭혔을 것이다. 자칫하면 포르노로 낙인찍히거나 아니면 관객들의 음흉한 기대에 못 미쳐 버림받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카우프만 감독을 끊임없이 괴롭힌 건 바로 사드라는 이름이 가져다 주는 고통과 희열 사이의 그 어떤 느낌을 어떻게 영화로 그려낼 것인가 라는 문제였다.결국 카우프만은 신음소리나 채찍을 과감하게 포기한다. 대신 그는 퀼스(Quill : 잉크에 묻혀 글을 쓰는 깃털 펜을 일컫는 말)를 통해 사드 작품의 본질인 고통과 수치심 그리고 그를 넘어서는 비범한 쾌락의 쓰기와 읽기에 주목한다. 영화의 전면에 나선 주인공은 샤랑통 정신병원에 감금된 말년의 사드 후작(제프리 러시)이지만 영화는 사드와 세탁부 처녀 마들렌(케이트 윈슬렛) 그리고 샤랑통 병원의 원장인 쿨미에 신부(조아퀸 피닉스)의 은밀한 상관관계를 통해 사드의 세계를 구현한다. <퀼스 designtimesp=20764>의 사드는 사악한 가학증 환자라기보다 글쓰기의 강박증에 시달린 나약한 작가의 모습이다. 그는 마들렌의 도움으로 몰래 원고를 밖으로 빼내 작품을 출판하지만 쿨미에 신부는 그 난잡한 소설의 출판을 저지하기 위해 사드에게 펜과 종이를 빼앗아간다. 글쓰기의 권리를 빼앗긴 사드는 점점 난폭해지고 읽기의 쾌락에 빠져든 마들렌은 수단과 방법을 불문하고 그를 돕는다.길로틴 대에 선 음란한 여성이 참수되는 오프닝 시퀀스를 시작으로 영화는 욕망과 억압, 쾌락과 고통이 공존하는 미묘한 순간으로 관객들을 인도한다. 그러나 <퀼스 designtimesp=20767>에서 욕망과 억압이라는 사드적 드라마가 모습을 드러내는 건 바로 쓰기·읽기의 욕망과 이를 억압하려는 검열이 충돌하는 순간이다. 우습게도 욕망을 도둑맞은 작가 사드는 오히려 수치와 고통에서 열락의 순간으로 진입하는 마조키스트의 얼굴을 보여준다. 이렇듯 성욕과 쓰기·읽기의 욕망을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카우프만 감독의 지적인 통찰력 덕택에 <퀼스 designtimesp=20768>는 자칫 때리고 맞고 신음이나 질러대는 삼류 에로물로 전락할 위험에서 벗어나고 있다. 비록 케이트 윈슬렛의 옷을 몽땅 벗겨 끝내는 관객의 싸구려 기대를 충족시키려는 노골적인 음탕함이 거슬리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