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한국경제신문 경제부장은 새벽 5시40분이면 어김없이 서울 중림동 회사에 도착한다. 오전 6시와 7시, 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경제논평을 하기 위해서다. 열흘 전까지만 해도 논설위원으로 재직했던 정부장은 틈나는 대로 라디오 방송국과 대학강단, 기업체 강연장 등에서 어려운 경제를 쉽게 푸는 황금 마우스로서 명성을 날렸다.“청중이 제게 원하는 것은 신문에 난 사실보다 그 이면의 숨겨진 진실입니다. 전 경제문제의 해답을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그 문제가 안고 있는 복잡성,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청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는데 주력합니다.”정부장은 17년간 경제분야 기자로 뛰면서 러시아 특파원, 국제 금융팀장, 그리고 논설위원을 지냈다. 금융팀장 시절 그는 <기업 최후의 전쟁 M&A designtimesp=20779>와 외환실록 <이 사람들, 큰 일 내겠군 designtimesp=20780>이란 책을 펴냈다. 두 책의 특징은 기자가 현장에서 사건의 전말을 낱낱이 보도하는 ‘생생함’이다. 외환실록의 경우 셀 수도 없는 취재원들의 육성 녹음이 실려 있다.정부장이 강연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요인은 ‘그가 현장에 있다’는 사실 때문. 청중들은 사건의 이면, 사실 뒤에 숨은 진실을 정부장으로부터 듣고 싶은 것이다.“사실은 신문에 이런 사건 뒤의 숨은 진실들이 나와야 하는데 기자들이 일은 많고 지면은 한정돼 그렇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진실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깊이 있는 취재를 막고 있는 거죠.”그는 지난 89년부터 강의를 시작했다. 일선 기자시절엔 ‘경제신문 보는 법’ 등을 강의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경제신문’이라는 신념에서다.이후 국제금융의 흐름 등을 짚은 강의를 했고 IMF가 닥쳐오기 3개월 전엔 ‘외환위기가 다가온다’는 기사를 게재해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다가올 외환위기의 정확한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 당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경제문제 쉽게 풀어주는데 주력“미래를 염두에 두고 경제해설을 하다보니 요즘엔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곤 합니다. 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주가를 올리면 모든 경제문제가 해결될 듯 호들갑을 떠는 정부의 금융정책, 지난 98년 실패한 경기부양책을 요즘 다시 채택하는 것 등은 분명히 잘못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 역할은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우를 지적하는 겁니다. 저는 칼이 정확하게 어디에 떨어져 있는지 짚어줘야 올바른 정책이 나온다고 믿습니다.”그가 잊을 수 없는 강의는 IMF 직후 30여명의 주부들이 신문사를 방문, 경제강의를 요청했을 때다. 당시 단어조차 생소했던 IMF로 남편이 직장을 잃고 가정파탄이 줄지어 나타나자 부인들이 직접 신문사로 찾아왔던 것. 비상시국이었던 만큼 그들의 눈빛은 진지하고 심각했다.“나라를 망하게 한 원인이 무엇이냐, 또 세계화의 공과가 무엇이냐는 질문들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왜 우리 남편이 직장을 나와야 했는가를 묻는 질문에는 진땀을 흘렸죠. 당시 가정 경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주부들의 그때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