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더치앙 지음/이재훈 옮김/이후/2001년/1만3천원

“미국과 일본에서 기술적 트렌드를 읽고 장사는 중국에서 한다.” 요즘 기업가들을 만나보면 이런 얘기를 자주 한다. 중국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 예상됨에 따라 ‘차이나 러시’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중국에서 돈을 벌고 있는 기업은 적다는 얘기도 많이 들린다. 같은 한자문화권에 거리도 가깝지만 중국인들의 정서, 중국정부의 미래전략 등을 국내 기업가들이 잘못 파악하고 있다는 증거다.21세기 중국의 국제경쟁 전략은 무엇일까.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면 현재 중국이 직면한 고민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중국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 것이다. <13억의 충돌, 시장의 신화와 중국의 선택>은 이를 가늠할 수 있는 책이다.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지식인중 한 사람인 한더치앙(韓德强)이 지난해 펴낸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저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시장에 대한 신화를 버리고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라는 것. 이를 위해 저자는 4가지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한다.첫째, 일자리를 창출할 것. 오늘의 중국이 직면한 문제는 국제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살아 남는가’와 ‘어떻게 하면 내란을 방지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이는 중국 실업률의 증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평등 우선’과 ‘효율 고려’를 지지하는 저자는 세 명이 할 수 있는 일을 다섯 사람이 나눠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둘째는 자원의 절약. 인구문제 다음으로 중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 자원이다. 중국은 이미 석유와 토지 삼림, 물이 많이 고갈됐다. 세계 각지에서도 자원 획득 능력이 부족해 자원소모형 경제성장은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 따라서 중국은 자원절약형 경제발전 모델을 선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개발노력의 상당부분을 대도시가 아니라 농촌과 소도시에 기울이고 농공업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셋째, 전략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전략산업은 정부가 직접 개입해 육성하고 보호해야 한다. 강대국으로 발전하기 전 미국의 보호관세는 유럽 국가보다 훨씬 높았다. 독일의 바이에르, 영국의 ICI, 미국의 듀폰, 스위스의 바젤 등 대표적인 업체들은 정부의 비호아래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했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중국도 정부의 힘으로 전략적 산업을 육성해 ‘거대하지만 약소한’ 모델에서 ‘크고 강력한’ 모델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육성할 산업 중 하나는 군수산업이다. 미국은 자동차, 반도체 등의 산업에선 경쟁우위를 다른 나라에 내어주고 있지만 군수산업과 고부가가치산업은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분석에서다.넷째, 과학기술과 교육사업에 새로운 영혼을 불어넣어야 한다. 지난 10년간 중국의 수많은 엘리트들이 유럽과 미국으로 떠나 중국의 혁신능력을 허약하게 했다. 한더치앙은 정부가 과학기술과 교육부문에 투자, 우수한 인력을 육성해야 부국강병을 이룩할 수 있다고 말한다.결론적으로 저자는 중국은 아직도 수세의 입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세적인 전략이 중화민족이 채택해야 할 기본적인 전략적 자세라고 주장한다. 맹목적으로 시장경제를 받아들일 경우 개인주의가 원동력이 돼 단결에 이롭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이 급격한 변화를 원하지도 않고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