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 계약 집행, ‘중추세력’ 부상 … 세계 누빌 지구력·순발력 있어야

수출 전선에서도 과장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IMF 이전만 해도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수출 업종의 실세(?)는 부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 그 자리를 과장들이 대신하고 있는 게 요즘 추세다. 특히 과장의 역할 권한 의무 등이 올라가면서 옛날 과장과 확연히 달라졌다. 수출입 계약의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 만큼 책임도 따르는 기업의 중간관리자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에 삼성물산 LG상사 SK글로벌 코오롱상사 등 종합상사 과장들이 기업의 중추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요즘 수출과장들은 ‘팔방미인’이 돼야 한다. 조직원 관리는 물론 수출입 영업까지 뛰어야 하고 임원과 사원 사이의 가교 역할은 기본이다. 혼자 밖으로 뛰어서도 너무 안에만 있어서도 안 된다. 안팎의 업무를 균형 있게 유지할 수 있는 인물이 요즘 시대 수출과장의 모습이다.SK글로벌의 과장들은 젊고 개혁적인 분위기를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균 나이 35세에 개혁성향이 강해 회사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회의 바이어와의 협상 등 대부분의 업무를 과장이 진두지휘하는 경우가 많다.대표적인 인물이 상사부문 의류수출 1팀의 노상준(35) 과장이다. 그는 올해 과장급 팀장으로 승진했다. 부장급 이상이 팀장을 맡고 있는 SK글로벌에선 이례적인 일로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노과장이 이끄는 의류수출 1팀 6명은 지난해 약 6천만달러 어치를 수출했다. 동종업계 1인당 수출액이 평균 3백만달러인 것에 비교하면 3배 이상 많은 액수다.현업 챙기랴 가교역할 하랴 가장 바빠“수출입 가격 계약 등 모든 일은 과장이 직접 결정하고 집행합니다. 위 간부에겐 보고하는 정도입니다. 과장이 다 알아서 하지만 그만큼 책임도 따릅니다.” 과장 4년차인 노과장은 지난 91년 SK상사에 입사해 올해로 11년째 의류 수출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노 과장은 “팀제가 되면서 과장 부장이라는 직급이 의미가 없어졌지만 옛날 과장과는 많이 달라졌다”며 “의사결정권을 갖고 현업에서 뛰는 것은 물론 위아래를 연결하는 중간 관리자로의 역할도 있어 바쁜 직급”이라고 말했다.LG상사 과장들은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는 ‘담당자’로 확실히 자리잡고 있다. 연봉제로 바뀐 뒤 과장 부장 등 직급보다 해당 업무의 담당자가 중요해졌기 때문. 그런 만큼 회사에서도 담당자에게 충분한 권한을 주고 있다. LG상사 석유팀의 경우 두명의 과장과 한 명의 팀장이 있다. 이들은 각각 의사결정권을 갖는 담당자로 업무를 처리한다.‘연간 2억달러 이상의 기름을 파는 과장’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김용범(37) 과장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과장 3년차인 김과장이 취급하는 품목은 나프타, 벙커C유, 벙커링 등 2차 정제 기름들. 2차 정제 기름은 원유와 달리 틈새시장을 뚫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노련한 김 과장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업계 최고의 승률 30%를 자랑하기 때문. “벙커C유의 경우 취급하는 공급업체가 5백여 곳이 넘죠. 보통 딜 하나에 30∼40개 업체가 붙습니다. 이들과 경쟁해 수출하기 위해서는 빠른 정보와 협상력이 있어야 합니다.” 김과장의 의사결정 포인트는 거래선 여신한도다. 이를 잘못해 물건을 팔고 돈을 받을 수 없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코오롱상사는 신인사 조직개편을 통해 과장의 역할과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부장급의 조직관리와 대리급의 현업을 동시에 맡기면서 의사결정권을 위임한 것이다. 김관선(39) 일반상품팀 과장도 위아래를 연결하는 중간관리자와 영업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수출입 담당자로 기업내 커뮤니케이션 채널 역할을 하고 있다. 김과장의 이런 노력 덕분에 일반상품팀은 그 동안 세 번의 인센티브를 받았다. 회사의 중간간부로 아래 사람들이 실적을 올릴 수 있도록 윤활유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김과장은 88년 입사해 95년까지 7년간 미주쪽 봉제 수출을 담당했고 96년부터 지금까지 유연탄 중심의 자원에너지 수입을 맡고 있다. 95년 과장대우를 거쳐 97년말 과장에 진급한 김과장은 “모든 사항에 대해 직접 결정을 내리고 있다. 최종 결정은 팀장 이상 본부장이 하지만 이변이 없는 한 대부분 수용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출 과장은 지구력과 순발력이 있어야 한다”며 “여기서 순발력은 순전히 발로 뛰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김과장은 사내에서 일 욕심이 많은 ‘터프가이’ 과장으로 통한다. 그래서 김과장은 e메일 아이디를 잡소리(jobsori@)라 지었다. 일감이 생기는 소리가 들리면 언제든지 찾아간다는 뜻에서다.과장되면 기업체 경영 수업받는 셈삼성물산 과장은 외부에서 인기가 좋다. 스카우트 제의도 많고 독립해 사업체를 차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는 삼성물산의 과장들이 그만한 파워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삼성물산에 입사한 신입사원이 선배로부터 듣는 얘기가 있다. 바로 ‘과장까지 해보고 나가라’는 말이다.“삼성물산의 과장은 그만큼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죠. 상품 발굴에서부터 거래선 발굴, 조직 관리, 고과 관리 등 기업체 경영 수업을 하는 셈입니다.”윤홍석(34) 정보시스템사업부 e솔루션팀 과장도 이런 과정을 밟고 있는 과장 중 한 명이다. 92년말 입사한 윤과장은 지난해 3월 과장으로 진급, 올해로 2년차를 맞았다.윤과장이 소속된 정보통신사업부는 올 3월 인사에서 타부서보다 많은 4명의 신규 과장이 나왔다. 삼성물산에서 독립채산제로 움직이는 정보통신 디비전만의 특성도 있지만 그만큼 중간간부로 과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란 게 윤과장의 설명이다.김용범 LG상사 석유팀 과장“순간순간 딜 결정, 책임감 막중”김용범(37) 과장의 하루는 시황모니터링부터 시작한다. 영국의 브랜트유, 미국의 서부텍사스중질유(WTI) 등 세계 기름 값 시황을 체크하는 것이다. 시황을 알아야 기름 수급에 적절한 타이밍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시황 체크가 끝나면 7백여 곳에 이르는 거래선과 전화 통화를 시작한다. 대부분의 딜이 전화로 이뤄지는 석유팀의 특성으로 하루에 걸고 받는 전화량은 보통 1백여통이 넘는다.“하루 종일 전화에 매달려 딜링해도 성공률이 30% 정도입니다. 이것도 동종업계에선 가장 높은 수치죠. 그만큼 순간 순간 결정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 자리입니다.” 김과장은 수백개에 달하는 경쟁업체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적절한 가격을 제시하고 거래선의 여신한도를 파악하는데 필요한 모든 의사결정을 직접 한다. 그는 “딜이 매일 매일 일어나기 때문에 담당자에게 의사결정권이 없으면 일을 할 수가 없다”며 “과장급이 대부분 처리하지만 직급에 상관없이 담당자가 되면 누구나 결정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94년 LG상사에 입사한 김과장은 현재 나프타, 벙커C유, 벙커링 등 수출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가 연간 취급하는 기름의 양은 나프타 30만t, 벙커링 1백50만t 등 총 1백80만t. 금액으로 2억5천만달러가 넘는다. 매년 3천억원 이상을 김과장의 손에서 핸들링 되고 있는 셈이다. 올해 김과장 개인 매출 목표는 3억5천만달러다.김과장이 담당하는 분야 가운데 벙커C유는 공급업체만 5백 곳이 넘는데 반해 수요처는 한정돼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 그만큼 계약을 따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경험이 필요합니다. 전화로 딜링하는 일이 많아 협상의 노하우가 있어야 합니다. 정보를 습득하고 분석하는 능력도 선행돼야 하죠. 또 상대방을 파악할 수 있는 눈치와 지치지 않는 체력은 기본입니다.” 김과장은 입사한지 4년 반만에 담당자가 돼 처음으로 전화 딜링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LG상사 석유팀의 매출을 매년 10∼15%씩 성장시키는 실세 과장으로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