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쓰는 헤어케어' 슬로건, 환불 캠페인 등 자신있는 광고로 겸용제품 아성 허물어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에 크고 맑은 눈’.마치 순정만화 여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이 말은 남자가 자신의 이상적인 여성형을 표현할 때 흔히 동원되는 수식어들이다. 요즘에야 ‘나만의 멋’을 중요시하는 탓에 이런 모습을 이상형의 ‘조건’으로 내거는 남자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긴 머리를 찰랑거리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은가. 거기에다 머릿결까지 아름답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머리의 길고 짧음을 떠나 아름다운 머릿결은 미용에 신경을 쓰는 여성들의 최대 관심사의 하나다. 얼굴중심의 ‘스킨케어’와 목욕중심의 ‘바디케어’에 이어 모발을 관리하는 ‘헤어케어’가 최근 들어 또하나의 미용 키워드로 부각되는 것이다.그래서 커지고 있는 것이 샴푸와 린스로 대표되는 고급 헤어케어용품 시장. 기존의 샴푸와 린스가 단순히 더러움을 씻어내는 ‘세제류’에 속했다면 요즘의 샴푸와 린스는 머릿결을 보호하는 ‘화장품’으로 격상되고 있다. ‘머리도 피부’라는 한 샴푸광고처럼.이런 움직임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한국피앤지(P&G)의 팬틴 샴푸 및 린스다. 팬틴 제품은 무엇보다 ‘샴푸+린스’ 겸용제품에 익숙해져 있던 국내 소비자들에게 ‘샴푸 따로, 린스 따로’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면서 죽어가던 헤어린스시장을 되살린 제품으로 기억될 만하다. 그것도 숱한 실패와 고전 끝에 얻은 성공이라 회사측으로선 더욱 의미가 크다.팬틴 ‘프로브이’ 제품이 국내 시장에 첫선을 보인 것은 93년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피앤지는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세계 시장에서 ‘월드베스트’로 공히 인정받던 팬틴 프로브이를 한국시장에 선보였으나 결과는 완전한 ‘참패’였다.그즈음 국내 시장은 80년대 후반부터 불기 시작한 ‘샴푸+린스’ 겸용제품의 인기가 거의 절정에 달해 있었던 때. 헤어케어 시장의 70% 이상을 겸용제품이 차지하고 있었다. 간편함과 저렴함을 무기로 한 겸용제품의 위세에 따로 써야 하는 불편함에다 가격까지 30% 정도 비싼 팬틴 제품이 설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출시 이후 거의 6년 동안 팬틴 헤어케어 제품은 해마다 매출액이 줄어드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특히 IMF를 전후로 사회의 전반적인 소비감소로 인해 샴푸시장 자체가 줄어든 데다 때마침 불어닥친 ‘리필’ 붐에 따라 팬틴제품의 판매율은 더욱 떨어졌다. 한국피앤지 관계자는 “숫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시장점유율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웬만한 국내 업체라면 ‘실패상품’으로 분류, 진작에 철수시켰을 법한 일이었다.한국피앤지는 그러나 다시 한번 도전의 기치를 내걸었다. 여기에는 품질에 대한 자신감과 세계시장에서 여전히 매출 1위를 지키고 있는 팬틴의 인기가 재투자로 이어졌던 것이다. 한국피앤지는 세계 각국의 팬틴제품 제조법(Formula) 중 최고급 성분만을 골라 한국여성의 머릿결에 가장 잘 맞게 보완, 업그레이드시킨 신제품 ‘팬틴 프로비타민’을 99년11월 재런칭했다.이에 앞서 98년4월부터 3개월동안 ‘소비자불만족 환불보증제’를 통해 큰 호응을 얻은 것도 ‘재기’의 밑거름이 됐다. 팬틴 제품을 14일 동안 써 보고 효과가 없거나 불만족스러울 경우 전액 환불해 준다는 캠페인으로 고정고객이 늘어났다는 분석이다.신제품 팬틴은 머리보호 성분인 프로비타민 B5(단백질의 일종) 성분을 훨씬 더 강화, 머리건조나 갈라짐 등을 방지하는데 중점을 뒀다. 제품용기도 ‘프리미엄급’으로 바꿨다.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 있는 기존의 연보라색에서 고급스러운 진주색으로 바꾼 것이다.품질 강화·제품용기 고급화로 재런칭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각종 홍보 및 광고전략. 한국피앤지는 제품출시에 맞춰 ‘따로 쓰면 건강해져요’라는 슬로건으로 캠페인을 벌였다. 겸용제품이 편리하긴 하지만 건강한 머릿결까지는 가꿔주지 못한다는 것, 따라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머릿결을 유지하려면 샴푸와 린스를 따로 쓰는 것이 유리하다는 내용이었다.한국피앤지는 특히 이 과정에서 린스만을 따로 떼어 광고하는 과감한 전략도 썼다. 그것도 ‘14일의 약속’이란 유명한 광고카피와 함께. 샴푸와 별도로 린스만은 좋은 것으로 써야 한다는 점, 14일 동안 사용하면 머릿결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 포인트를 둔 광고는 그동안 린스는 겸용 또는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해온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때마침 경기회복 추세에 맞춰 샴푸시장 규모가 99년 3천8백50억원에서 2000년 4천2백억원 규모로 10% 안팎 커진데다 헤어케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고급 헤어케어 제품에 대한 소비증가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겸용제품에 익숙해져 있던 소비자들이 따로 사용하는 샴푸와 린스에 관심을 돌렸다. 심지어 샴푸는 ‘싸구려’를 쓰면서도 린스만은 팬틴을 쓴다는 소비자도 생겨났다.이에 따라 전체 샴푸와 린스 시장의 70%를 잡고 있던 겸용제품 시장 규모가 지난해엔 20% 규모로 폭삭 가라앉았다. 덕분에 2000년5월 팬틴 린스가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섰고 팬틴 샴푸도 지난해 12월부터 시장을 석권했다. 국가고객만족지수(NCSI)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1위로 꼽혔다.(한국피앤지는 회사규정상 특정상품의 매출액이나 시장점유율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매출액 및 시장점유율은 생략)팬틴의 인기에 힘입어 국내시장에서 고급샴푸의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는 추세. LG생활건강, 태평양, 제일제당, 애경 등 그동안 저렴한 가격대의 겸용제품 개발에 주력해 왔던 국내 업체들도 최근 들어 일반 샴푸보다 30∼40%정도 가격이 비싼 프리미엄급 샴푸 개발에 속속 나서고 있다. 여기에다 아베다, 클라란스, 시슬리, 시세이도 등 고급 화장품 브랜드들도 앞다퉈 2만∼6만원대의 고급 샴푸를 내놓고 있어 앞으로 고급 샴푸시장은 더욱 경쟁이 심해질 전망이다.인터뷰 / 한국피앤지 팬틴 브랜드 매니저 이수경 부장“소비자에 귀기울였더니 좋은 결과”팬틴의 성공에는 회사측의 과감한 재투자 못지 않게 팬틴 브랜드매니저 이수경(35, 마케팅팀)부장의 공이 크다. 94년 한국피앤지에 입사한 이부장은 팬틴의 재출시에 맞춰 99년11월부터 팬틴 브랜드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그에게 떨어진 특명은 사장위기에 있던 팬틴 브랜드를 되살려 내는 것.“처음에는 솔직히 부담이 컸어요. 회사측으로서도 재투자를 한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고…. 그만큼 주시의 대상이었는데 지금은 존재조차 미약했던 한국시장이 성공 마케팅의 사례로 세계 각국에 보급될 만큼 중요시되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기쁩니다.” 이부장은 팬틴의 성공비결로 소비자들의 반응에 철저하게 귀 기울이고 소비자와 더불어 가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 점을 든다.“저희는 매번 신제품을 낼 때마다 ‘포커스그룹 인터뷰’란 이름으로 소비자 좌담회를 갖습니다. 소비자들이 우리 제품을 놓고 자유롭게 비판하고 토론하는 것을 통해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죠. 물론 토론장에는 직원들이 전혀 참석하지 않고 일종의 청취시스템을 통해 소비자들의 솔직한 반응을 듣는데 팬틴 신제품 출시에 맞춰서는 매일 3∼4회씩 거의 50회 이상 소비자 좌담회를 가졌죠.” 이를 바탕으로 거리에서, 대형매장에서 또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린스 따로 쓰기’ 캠페인을 비롯한 샘플 증정, 14일 동안 써본 뒤 사용소감 공모 등의 행사를 가졌다. 특히 세계시장에서 ‘14일의 변화’로 통용되던 카피를 ‘14일의 약속’으로 바꾼 것이나 린스 광고를 별도로 한 것도 소비자들의 반응을 기초로 했다.“무엇보다 ‘헤어케어’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저희의 홍보도 단순히 ‘우리 제품을 사라’라는 것보다 린스 사용의 중요성 등 올바른 헤어케어에 중점을 뒀고요.” 이부장은 “앞으로 팬틴 제품 시장점유율을 세계시장 수준으로 높이면서 한국시장이 세계 1위가 되도록 하는 것이 직장인으로서의 소망”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