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 쳐졌던 학생은 성적 더 나빠져 … 부모 학교활동까지 저조 ‘정착 너무 힘들어’
LA 남쪽 롱비치 서쪽 해안지역인 랜초팔로스버디스(Rancho Palos Verdes)지역은 부촌으로 LA일대에서 학군이 좋은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이곳의 PV중학교와 고등학교는 1∼2년전부터 동양인학생이 백인학생 숫자를 추월했다. 현재는 동양인이 거의 60%이고 이 가운데 절반은 한국인이다.미국 학교의 대부분은 학업 성적과 사회활동을 함께 중시한다.미국내에서 집값과 생활비가 가장 비싼 곳 중 하나인 샌호제이 산타클라라(Santa Clara)지역의 쿠퍼티노, 산타클라라, 사라토가 등의 중·고등학교에도 최근 한국인학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들 학교는 동부의 아이비리그대학은 물론 스탠퍼드대학 UC버클리 등 명문대 진학자 수가 많아 한국의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높다.샌디에이고 카운티내에서 학군이 좋다는 델마(Del Mar)지역의 아파트에도 한국인들이 몰려있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유명한 의료기관이 많아 한국의사들이 선호하는 지역이다. 대개 엄마가 초등학교나 중학교 정도의 아이 둘을 데리고 와서 월세 1천4백∼1천7백달러 정도의 방 2개짜리 아파트에서 산다.문제는 과연 교육 때문에 이처럼 큰 돈을 미국에 뿌리고 있는 한국의 많은 가정과 그 자녀들이 충분히 성공적인가 하는 점이다. 결론은 ‘No’이다.오히려 “한국에서 학업이 쳐졌고 부모 없이 혼자 온 조기유학생은 90% 이상 한국보다 나빠진다”고 현지교민들은 지적한다. 여기에 “성격이 내성적이고 대도시 주변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남자애들은 1년 반 후면 마약을 하는 것이 공식”(이상빈 프랜차이즈아시아 부사장)이라고 한다.최근 LA에서는 한국에서 온 남자고교생이 ‘나이어린 애가 반말한다’고 때려 집단싸움으로 번져 재판받은 사례도 있다. 손자가 할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미국사회에서 한두살 어린애가 이름을 불렀다고 폭력사태로 번지는 것을 미국인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곳 학교에서 한국에서 갓 온 남학생이라면 고개를 흔들 정도”라고 교민들은 이야기한다.내성적인 아이들 1년 반 후면 마약에 빠져그럼에도 “영어라도 배우지 않느냐.” 하지만 천만의 말씀.샌호제이 동쪽 이스트베이에서 학원을 경영했던 조준희 Bank Express 샌호제이브랜치매니저는 “내성적이고 영어를 못하는 애들은 반드시 한국애끼리 어울려 영어가 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초등학교는 부모가 숙제를 도와줘야 하는데 부모가 없거나, 있어도 영어를 못하면 숙제도 도와주기 어렵다. 게다가 미국의 학교시스템은 부모가 교사들과 계속 상담하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부모가 영어를 못하니 학교와 멀어진다.미국학교가 공부부담이 덜하다는 것도 모르는 소리. 랜초팔로스버디스에 사는 중학교 4학년인 교포 김진경양은 “학교숙제가 매일 3∼4시간을 해야 할 정도”라고 말한다.부모와 떨어져 애만 보내는 조기유학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다. 그것도 공부만 뒤떨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인생의 방향이 어긋나는 실패다.인터뷰매리 그레이 샌디에이고 토리파인고교 교장“학업성적보다 인생을 통해 배우라”미국에서도 졸업생들을 얼마나 많이 명문대학에 진학시키는지가 학교 평가의 주요 요소다. 물론 명문대학이 원하는 학생이 시험성적뿐 아니라 사회활동과 예체능활동도 활발한 학생이라는 것이 한국과의 차이점일 것이다.샌디에이고 북부 델마의 토리파인(Torrey Pines)고교 매리 그레이(Marie Grey)교장을 만나 무엇이 이 학교를 뛰어나게 만드는지에 대해 들어봤다. 이 학교는 우수학교에 부여되는 ‘내셔널블루리본스쿨’타이틀을 받았고 ‘캘리포니아 최우수고교(Redbook Magazine)’로 꼽히기도 했다.그레이 교장은 토리파인고교는 “지난 4년간 대입학력평가시험인 SAT1에서 샌디에이고 카운티내에서 가장 점수가 높았다”고 소개한다. 예를 들어 “99년 SAT1의 수학점수는 미국 평균이 5백11점. 캘리포니아 평균이 5백14점이었는데 이 학교는 평균 5백93점이었다”는 것이다. 올봄에도 졸업생의 70% 이상이 4년제 대학 입학허가를 받았다.그레이교장은 그러나 “학업성적 그 자체보다 학생들이 인생을 통해 배우는(Life-long Learning) 자세를 키우는 것이 우리교육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가 강조하는 것도 ‘정서적 행복(Emotional Wellbeing)’이다.이 학교가 뛰어난 이유도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레이 교장은 지적한다. 학교내 총기사고 등이 발생하는 미국에서도 가장 안전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방학 때면 자기계발에 나서는 우수한 교사와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학교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우수성의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기자를 교장실로 안내한 안내원도 자원봉사중인 학부모였다.교육이주 성공사례부모 고생 목격 … 곧게 바르게 성장● 박태용씨 부부실리콘밸리에 처음 온 한국인으로 꼽히는 박태용(65)·박정호씨(63)부부. 박씨는 이 지역에서 성공한 한국이민 1세대로 꼽힌다. 경제적 안정과 자녀교육에서 모두 성공했기 때문.박씨는 75년 당시 민성전자의 샌프란시스코 지사장으로 부임했다 79년 회사가 도산했을 때 미국에 남았다. 아이들이 한국 귀국을 반대한데다 미국이 더 나은 교육기회를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됐기 때문. 생업이 마땅치 않아 청소용역업을 했다. 부인과 함께 새벽 2시까지 청소하면서 울기도 했다고 한다. 첫째 아들은 동생들을 모아놓고 “부모님이 우리 때문에 고생한다”며 “실망시키지 말자”고 다독거리기도 했다는 것. 부모의 고생하는 모습을 봐서인지 모두 열심히 공부, 셋 다 UC버클리에 진학해 지금은 세 아들 모두 의사로 일한다. 독실한 신자인 부모를 따라 교회도 다니고 셋 중 두 아들이 캘리포니아에서 개업하고 있다.박씨 부부는 세탁소를 오래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안정돼 약 20년 전에 산 집이 현재 1백만달러를 호가한다. 교육 때문에 택한 미국 이주에서 성공한 박씨 부부는 그러나 “이민은 좋지만 아이 혼자 보내는 조기유학은 실패사례를 너무 많이 봤다”며 반대했다.● 최근호씨 부부샌디에이고 라호야의 UC샌디에이고대학 앞에 있는 쇼핑몰에서 ‘여미마키(Yummy Maki)’라는 작은 일식당을 하는 최근호씨 부부도 교육 때문에 이민왔다.미국에 사는 처남의 초청에도 불구, 이민 생각이 없었던 최씨 부부는 큰 딸이 “미국가서 공부하고 싶다”고 해 이민왔다. 처음엔 한국에서 돈을 가져다 쓸 수 있어서 고생을 안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월세를 받던 건물에 상속세 문제가 생겨 결과적으로 한 푼도 안남았다. 생업을 위해 골프채 제조업체인 캘러웨이사에 취업했다. 영어를 못하다 보니 한국의 석사학위에도 불구, 품질관리라는 막노동을 했다. 직무변경 이력서를 냈으나 뜻대로 안돼 회사를 그만뒀다. 8만5천달러 정도에 분식집 규모의 작은 식당을 98년 봄에 인수했다. 1년 후부터 손익분기점이 넘어 지금은 융자금도 많이 갚았다. 다행히 큰 딸은 한국에서 온 지 3년밖에 안됐지만 올 봄 동부 명문대(UPENN)에 입학허가를 받았다.최씨 부부는 “조기유학온 애들이 대개 한국에서보다 나빠지는 경우를 본다”며 “우리의 경우 부모의 고생을 옆에서 철저히 지켜본 것이 딸에게 알게 모르게 힘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