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류,숙성정도까지 구별하는 '김치전문가'...건강식품 김치,세계화 가능
‘밥(Bob)’으로 불리는 로버트 워필드(Robert Warfield)씨(56, 서울 연희동)는 동료들 사이에서 ‘김치전문가’로 통한다. 미국 반도체 회사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소속으로 TI와 아남 반도체의 합작사업(Joint Venture) 프로젝트 팀원인 그는 외국인 동료들과 회사 근처 식당에 갈 때마다 김치 등급을 매김으로써 한국생활 1~2년차인 동료들의 기를 죽이기 때문이다.“제가 ‘최고’로 치는 김치요? 글쎄요. 일단 너무 맵지 않으면서 적당히 익은 김치를 좋아합니다. 갓 담은 생김치는 너무 파삭거리고(crispy), 너무 익은 김치는 지나치게 부드럽죠(soft). 그래서 저는 적당히 잘 익어서 씹었을 때 ‘터지는 듯한(bursty)’ 느낌의 김치에 최고등급을 매깁니다. ‘bursty’는 ‘crunch’(와삭와삭 씹히는)와 구별하기 위해 제가 만들어낸 말이죠.”자신이 좋아하는 김치맛을 표현하기 위해 ‘bursty’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워필드씨는 “지금까지 먹어본 김치 중 10~15% 정도만 ‘bursty’한 김치였다”며 “아내가 담은 김치가 일반적으로 최고지만 가끔씩은 더 맛있는 김치를 발견할 때도 있다”며 웃는다.워필드씨가 한국 김치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70년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파견되면서. 김치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는 상태에서 김치 맛을 봤다는 그는 “처음에는 너무 매워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듬해 한국인 부인(정형숙, 48)을 맞아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틈틈이 밥과 김치를 먹기 시작한 것이 김치에 맛을 붙이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됐다.“밥을 먹을 기회가 많아지면서 밥이 있으면 당연히 김치를 먹게 되고 김치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밥을 찾게 됐다”며 밥과 김치의 ‘찰떡궁합’을 설명했다. 가장 좋아하는 김치는 잘 익은 배추김치, 두 번째로 좋아하는 김치가 오이소박이, 총각김치는 잎 부분만 좋아한다고 말할 정도로 김치종류에도 일가견이 있다. 부인이 없는 동안 직접 김치를 담가보기도 했지만 젓갈 넣는 것을 몰라 김치 맛내기에 실패한 경험을 털어놓으며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이다.동양철학에도 관심 많아“한국의 김치는 세계 어느 나라의 음식과도 다른 독특한 맛이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모든 사람이 좋아하기는 힘들지만 일단 맛을 본 사람들은 좋아할 가능성이 있죠. 무엇보다 우리 몸에 좋은 ‘건강식품’이라는 것이 김치 세계화를 위한 가장 큰 매력이고요.”77년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직원으로 다시 한국에 나온 이후 미국과 한국을 3~5년씩 오가며 거주하다가 97년부터 지금까지 서울 연희동에서 살고 있는 그는 김치 이외에도 한국의 산과 절을 즐겨 찾고 도자기 그림(민화) 등 한국 문화에도 상당히 일가견이 있는 편. 워필드씨는 자신은 원숭이 띠, 부인은 용띠, 2녀1남의 자녀들도 원숭이띠나 쥐띠, 용띠인데다 강아지마저 원숭이띠라며, “원숭이띠, 용띠, 쥐띠가 (주역에서 말하는) ‘삼합(三合)’이라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며 동양철학에 대한 만만치 않은 상식을 보여주기도 했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