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정책이 당국의 의도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무기력 증세를 보이고 있다.요즘 들어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에 세가지 뚜렷한 무기력 증세가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먼저 시장기능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이달 들어 세계증시와 채권시장에서 하루 거래된 규모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각종 가격변수들도 경제주체들의 신호등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경제통계도 더 이상 경제실상을 반영하지 못한다. 불과 한달 간격으로 발표되는 경제통계간(미국 경제성장률의 경우)의 절대오차가 90년대 평균 0.4%포인트에서 지금은 1%포인트로 확대됐다. 더 이상 경제통계가 시장과 경제현상을 따라가지 못함에 따라 통계발표 자체도 너무 늦다.모든 경제정책도 정책당국의 의도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무력화 단계에 놓여 있다. 일본에서 보듯이 재정정책의 경기부양과 시장조성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올들어 세계 각국들이 금리를 단기간에 대폭 내렸지만 세계경기와 증시 회복에 미치는 효과는 예전만 못하다.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일부 지적대로 여름철이라는 계절적 요인과 세계경제가 침체국면에 놓여 있다는 경기순환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요인과 함께 구조적인 요인이 결부돼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의 앞날을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구조요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경제활동면에서 경제주체들의 심리적 요인이 커지고 있는 점이다. 최근처럼 미래가 불확실해 짐에 따라 시장참여자 정책수용층 정책당국자가 가격변수 경제통계 경제정책의 의도(Signal) 대로 반응(Response) 하지 않고 있다.경제구조가 급변하고 있는 것도 커다란 원인이다. 특히 세계경제 구조가 빠르게 서비스화 정보기술(IT)화 됨에 따라 시장참여자와 각종 통계기법 정책당국자가 경제현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제때 제대로 된 경제정책이 추진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시장 경제활동 경제정책 영역이 글로벌화되고 있는 것도 3대 무기력 증세를 낳고 있는 원인이다. 가격변수와 경제통계가 더 이상 한 나라의 경제실상을 반영하는 얼굴이 아니다. 우리와 같은 개도국일수록 경제정책은 해외누수로 효과가 반감됐다.최근처럼 3대 무기력 증세가 나타날 때 가장 우려되는 것은 세계경제와 세계증시의 침체국면이 의외로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경제구조 변화와 세계경기 침체기가 맞물렸을 때 침체기간이 평균 12∼14개월에서 16∼20개월로 장기화된 점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 증시와 경기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최근 들어 인플레를 감안한 주요 국가들의 실질금리가 ‘제로’ 혹은 ‘마이너스’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점이다.올들어 선진국들의 계속된 금리인하로 시장금리가 하락되고 있다. 6월20일 현재 미국과 일본의 금리(3개월 만기)가 각각 3.7%, 0.05%까지 떨어졌다. 독일 등 유로랜드의 단기금리도 4% 내외까지 하락됐다. 반면 물가는 오르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3.6% 상승해 10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달 유로 12개 회원국들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4%에 달해 90년대 초반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달 선진국의 평균 물가상승률은 93년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2.8%로 추정했다. 20일 거래량을 가중 평균한 선진국 금리(단기금리)가 2.9%인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국제금리는 제로시대에 접어든 셈이다.문제는 최근처럼 실질금리가 제로수준까지 떨어졌는 데도 불구하고 침체된 증시와 경기회복에 별다른 효과를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만큼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점이다.무엇보다 금융과 실물부문이 동시에 위축되는 악순환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실질금리가 제로시대로 접어듬에 따라 앞으로 주식에 대한 투자매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처럼 세계 증시의 침체세가 지속될 경우 시중자금이 단기 부동화되면서 제도금융권에서 이탈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구조조정 약화와 도덕적 해이 현상도 우려된다. 이럴 경우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요인은 그만큼 높아지는 셈이다.정책적으로 무력화 단계에 처하게 되는 것도 문제다. 제로금리에 따라 금리인하 여지가 줄어든 상태에서 현재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경기부양책을 추진할 수 있을 만큼 재정사정이 여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앞으로 실질금리 향방과 궁지에 몰린 선진국 통화정책에 숨통을 터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경기가 얼마나 빨리 회복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올들어 단기간에 실질금리가 제로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역자산 효과(Negative Wealth Effect, 주가하락→자산소득 감소→민간소비 위축→경기둔화)에 따라 경기가 급락한 반면 물가는 높은 국제유가와 농산물 가격으로 공급측면에서 인플레 요인이 높아졌기 때문이다.금리인하 따른 인플레 압력 거세질 듯만약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올들어 단행한 금리인하로 풀린 통화가 인플레 압력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경기부양과 물가안정간에 정책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늦어질 수 있으나 선진국의 통화정책이 곧바로 인상국면으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 전망기관들이 올 하반기 이후 세계경기가 회복된다 하더라도 ‘V’자형보다는 ‘U’자형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이럴 때 세계경제와 증시가 좀더 빨리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각종 돌발요인(Hysterics)을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테면 정책당국자와 애널리스트들이 너무 쉽게 경제를 진단하거나 예상하는 것을 반드시 사후평가를 통해 책임을 묻는 방법으로 가능한 한 줄여야 한다.세계 각국간 혹은 한 나라내에서도 경제주체들간의 협조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가격변수 경제통계 경제정책이 무기력한 증세를 보이는 상황에서는 비록 완전치는 못하지만 유기적 협조를 통해 보완해야 세계경기와 증시가 좀더 빨리 안정을 찾을 수 있다.마지막으로 정책당국자와 경제주체들이 미래현상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선제적인 정책능력과 시나리오 경영능력을 키워야 한다. 우리처럼 한 나라의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최고책임자가 경제전망을 할 때마다 경기저점이 1분기씩 되밀리는 그런 능력을 믿고 국민들이 제대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중앙은행 총재들의 위상이 떨어지면서 소위 ‘중앙은행 총재 수난시대’라 불리워지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