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코사의 주차엘리베이트는 카 리프트가 3백 60도 회전할 수 있어 좁은 공간에서도 충분히 기능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디지털화로 24시간 구석구석 진단, 감시해준다.미국과의 디지털 경제전쟁에서 패하고 중국의 추격에 쫓기는 바람에 지금은 빛이 바랬지만 일본 기업의 강점을 묻는 질문에 대다수 한국인들이 ‘외길 정신’을 으뜸으로 쳤던 시절이 있었다. 새로운 시장이 생겨나면 으레 너도 나도 뛰어들어 치열하게 치고 받는 한국의 기업 풍토에서 장수 회사, 한우물 기업의 존재는 두려움과 함께 부러움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정보기술 전쟁에서 미국에 패권을 넘겨줬어도 제조업에 관한 한 일본의 경쟁력은 아직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평을 듣는다. 전자 자동차 철강 반도체 등 대형산업에서 하찮은 부품 하나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세계 정상을 달리는 업종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제조업에 관한 한 전세계의 공장임을 자부하는 일본의 자존심이 근거없는 오만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일본 이코노미스트들은 일본 제조업의 경쟁력을 이어가는 밑뿌리 힘 중 하나가 외길 기업에서 나온다고 자신하고 있다. 볼트 너트 제조에만 1백년 이상의 세월을 바쳐온 다케나카 제작소, 망원경 시장에서 세계를 주름잡는 켄코, 창업 이후 줄곧 달리는 물체의 안전만 생각하며 브레이크 개발과 싸워온 나부코 등…. 덩치는 작아도 세계 최정상의 기술력과 혼으로 무장한 외길 중소기업은 일본 어느 곳에나 수두룩하게 박혀 있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들의 자랑이다.도쿄 미나토구의 시바다이몬에 본사를 둔 다이코(사장·고다마 야스시, 48)는 한국인들에게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회사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회사 제품은 한국의 일반 소비자들이 눈으로 접해 보거나 직접 써 볼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회사 덩치가 큰 것도 아니요, 한국 시장에 소비재를 직접 팔거나 광고 선전활동을 하지도 않으니 한국인들이 다이코라는 회사의 존재를 알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이야기다.그러나 일본 시장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일반 소비자들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을지 몰라도 적어도 한국과는 상황이 판이하다. 화물용 특수 엘리베이터 분야에서 일본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톱 메이커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특수 엘리베이터에 관한 한 최선두에서 판로를 개척해 오면서 신제품 신기술 개발에서도 독보적 명성을 구축해 놓고 있어 다이코의 회사 이름은 제조업 벤처의 기수나 마찬가지의 대접을 받고 있다.이 회사가 세상에 이름을 처음 알린 것은 지난 1958년 10월의 일이다. 58년은 파리 에펠탑을 그대로 흉내냈다 해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도쿄를 상징하는 ‘도쿄 타워’가 세워진 해요,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명감독 나가시마가 프로야구에 데뷔한 해이기도 했다.하지만 일본 기업인들에게 1958년은 패전의 잿더미에서 일어선 일본 경제가 본격적으로 고도성장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고도성장은 필연적으로 국민소득 향상과 함께 소비재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종착역에는 마이카 붐이 기다리고 있던 것이 이 당시의 일본 경제 상황이었다.일찌감치 공간활용 제품에 눈돌려 성공다이코는 창업 시기가 빨랐다고 볼 수 없는 기업이었다. 그렇지만 이 회사는 경제 볼륨 확대가 몰고 올 난제 중 하나로 도심 공간의 효율적 활용이 대두될 것으로 보고 일찍부터 사업방향을 여기에 맞춰 잡았다. 비좁은 도심과 주택난, 그리고 지진에 대한 걱정으로 고층건물을 쉽게 올릴 수 없는 도쿄의 지역적 특성을 정확히 간파한 노선이었다.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다이코의 사업 아이템은 기본적으로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품목들이었다. 엘리베이터라는 운반 도구 자체가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기가 쉽지 않은 데다 사람도 아닌, 화물을 실어나르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일반인들의 관심 대상이 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동차용 유압 엘리베이터와 회전식 카 리프트, 그리고 주차설비에 이르기까지 이 회사의 주력 제품 중 브랜드와 상호가 일반인들에게 직접 노출되는 품목은 거의 없을 정도다.다이코는 그러나 자동차용 엘리베이터를 비롯한 대부분의 제품 개발에서 일본 1호의 기록을 갖고 있다. 자동차를 실은 채 내부에서 3백60도 회전하면서 예정된 곳까지 자동으로 운반시켜 주는 카 리프트는 공간활용을 극대화 하면서 주차설비 부지를 최소화했다는 점에서 첫등장시부터 경쟁업체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출입문 입구에 턴 테이블이 설치된 다른 자동차용 리프트와 달리 다이코 제품은 승강기 바닥에 턴 테이블이 장착돼 있다. 따라서 운행중인 자동차가 출고시를 대비해 방향전환을 할 수 있도록 돼 있어 자동차 소유자들은 일반 기계식 주차장에서처럼 장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다른 메이커들도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다이코는 턴 테이블 내장형 카 리프트에 관한 한 일본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독보적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자동차용 엘리베이터의 경우 다이코는 적재 하중 20t, 즉 화물을 잔뜩 실은 상태의 초대형 트럭까지 들어 올릴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해 놓고 있어 경쟁업체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주차장의 입체화 자동화 인텔리전트화를 일관되게 추진해온 다이코의 기술력을 보여 주는 일화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소니의 창업자인 모리타 아키오 전회장과 함께 나고야 공장 준공식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모리타 회장이 우리가 설치한 화물 엘리베이터를 잠시 타 보더니 사람이 타는 것보다 어떻게 더 소음이 없느냐고 묻는 겁니다. 20년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그 때 일만 생각하면 뿌듯합니다.”고다마 사장은 남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제품이지만 그래도 그 안에 담긴 정성과 기술력을 인정해 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고 한다. 모리타 회장에게 고품질을 인정받은 다이코는 그 후 60대의 화물 엘리베이터를 추가 납품한 것을 비롯, 도요타 등 다른 일본 초일류 기업으로도 판로를 넓혀 나갔다. 고다마 사장은 소니, 모리 빌딩 등 도쿄의 이름난 건물에는 다이코의 엘리베이터가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며 24시간 소리없이 제 역할을 다하는 회사 제품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다이코가 경쟁업체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또 하나의 제품은 기계실(머신 룸) 없는 엘리베이터다. 기존 엘리베이터는 건물 옥상에 설치된 기계실에 승강기를 끌어 올리는 권상기와 제어반 등을 들여 놓아야 한다. 하지만 이 제품은 제어반과 권상기를 초소형화해 승강로 내부에 설치하는 방식으로 기계실 문제를 해결했다. 따라서 기계실에 해당하는 만큼 건물의 고도가 낮아져 건축회사는 한 개 층을 더 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기능면에서도 영구자석을 이용한 전동기를 사용함으로써 소비전력이 대폭 줄고 승차감도 향상된 장점을 갖고 있다. 꿈의 엘리베이터로도 불리는 이 제품을 다이코는 한국의 현대엘리베이터와 공동 개발, 일본 최초로 인증을 따낸 후 98년부터 판매 중이다.기계실 없는 엘리베이터 주목받아남들 눈에 좀처럼 띄지 않는 곳에서 작동하는 제품만 만들어 온 제조업 벤처나 다름없지만 다이코는 이제 새로운 경제 환경 변화를 맞아 한 차례의 도전을 시도 중이다. 지난 6월말 최고 경영자 자리에 오른 고다마 사장이 급진전하는 정보기술(IT)을 엘리베이터 등 고유 아이템과 접목시키는 신사업구상을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창업자의 종손으로 메이지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70년대 중반 미국 버클리대에서 공부한 유학파답게 인터넷 벤처에도 뜨거운 애정과 관심을 쏟고 있다. 벤처 기업을 후원하는 ‘일본 엔젤스 포럼’의 상임 이사이기도 한 그는 한국 벤처들의 에너지와 사업 마인드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고다마 사장은 한국 인터넷 벤처들이 대내외 환경 변화에 휘말려 곤경을 겪고 있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할 것이 확실하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한국 인터넷 산업의 도전의지와 과감한 발상을 일본도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는 21일부터 서울서 열리는 ‘디지털 엑스포 코리아 2001’에 참석, 한국 인사들과 폭넓은 정보교환 기회를 가질 예정이다.타업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빛이 나지 않는 길을 고집해 왔지만 다이코는 이제 회사이름을 널리 알릴 절호의 기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이 5층짜리 노후 아파트의 계단 외측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있도록 금년초 법규를 개정함에 따라 엄청난 신시장을 거머쥘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사소한 물건 하나 뿐 아니라 공동주택도 끊임없이 보수해 아껴 쓰는 일본에서는 고령 인구가 늘어나자 낡은 주택의 엘리베이터 설치 문제가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다이코는 약 7만대로 추산되는 노후 주택 엘리베이터 설치가 그동안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를 맘껏 발휘할 기회라고 판단, 올 하반기부터 시장공략에 나서 회사 이미지를 한층 더 높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