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주영 명예회장 대선 출마 전후 막강파워 자랑 … 재계, 현대의 실질적 해체로 해석

지난 6월 30일자로 부서 간판을 내린 현대그룹 PR사업본부.현대그룹의 공식적인 대언론 창구였던 PR사업본부가 지난 6월30일자로 부서 간판을 내렸다. 현대의 그룹 홍보조직이 만들어진 지 20여년 만이다. PR사업본부사령탑 김상욱 상무를 뺀 20여명의 직원들은 현대 계열사로 배치됐거나 최소한의 홍보를 위해 구조조정본부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이도 기자실 운영에 따른 최소한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것일뿐 그동안 PR사업본부가 해온 적극적인 그룹홍보는 하지 않을 것이란 게 현대측의 설명이다. PR사업본부의 해체는 현대라는 매머드그룹이 사실상 해체된 것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실제 현대는 지난해 현대자동차의 계열분리에 이어 올들어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가 그룹에서 떨어져나가는 등 그룹의 굵직한 주력계열사들이 분가해 그룹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올 연말 현대중공업마저 독자의 길을 걷게 되면 국내 최고의 그룹이었던 ‘현대’는 그야말로 종언을 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현대의 그룹홍보조직은 고 정주영현대명예회장의 인생역정 및 현대의 흥망성쇠와 궤를 같이 한다. 현대는 80년대 초반 고 정명예회장이 전경련회장을 맡는 등 재계의 대표주자로 급부상하자 ‘통합홍보실’이라는 명칭으로 그룹홍보조직을 신설했다. 통합홍보실은 파워가 막강한 그룹 종합기획실내에 만들어져 그룹 주요사업 홍보는 물론 현대자동차 현대건설 현대중공업 등 그룹 주력계열사들의 홍보조직을 사실상 총괄했다. 이렇게 힘이 실린 데는 심현영(현 현대건설사장) 박세용(현 인천제철회장) 사장 등 고 정명예회장의 최측근들이 종합기획실을 맡고 있어 가능했다.가장 막강했던 현대의 그룹홍보조직은 지난 90년 확대 개편돼 만들어진 ‘문화실’. 종기실내에 있던 통합홍보실은 새로 태동한 문화실의 1개 부서로 편입됐다. 현대가 그룹 홍보조직을 문화실이라는 새명칭과 함께 확대개편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고 정명예회장은 정치인으로서 성공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이의 실현을 위해 홍보조직을 강화했던 것이다.이런 의지는 고 정명예회장이 최측근인 이병규 비서실장(현 현대백화점사장)에게 문화실장을 겸하게 한 것과 현재의 문화일보 창간준비, 그리고 고 정명예회장의 대통령출마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역력히 나타난다. 고 정명예회장은 ‘기업의 홍보실을 문화실로 개편해 문화발전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당시 이어령 문화부장관의 주장을 받아 들여 문화실을 태동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문화실은 그룹홍보는 물론 고 정명예회장이 정계에 진출하자 직간접적으로 대대적 지원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문화실은 지난 92년 한 일간신문를 상대로 광고게재를 전면 중단하는 등 다소 전투적인 홍보전도 불사했다. 당시 문화실에 근무했던 현대 관계자는 “홍보조직이 국내 유력 일간지를 상대로 싸움을 벌인다는 것은 당시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고 정명예회장이 마음을 굳게 먹고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하지만 현대 문화실은 고 정명예회장의 대선 참패 이후 추락하는 비행기처럼 급격히 위축됐다. 당시 이병규 문화실장은 고 정명예회장의 비자금 문제에 연루돼 상당기간 그룹을 떠나 있었다.97년말 불어닥친 IMF 태풍과 김대중 대통령의 강도 높은 재벌개혁으로 문화실의 위상은 더욱 떨어졌다. 정부 재벌개혁의 핵이 바로 ‘그룹해체’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그룹홍보실 비서실 기조실 등 그룹의 핵심조직을 없애도록 재벌그룹들에 압력을 가했다.물론 이때부터 현대그룹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대마불사’형의 국내 경제가 ‘대마도 죽는다’는 새로운 진리를 찾으며 경영상태가 나쁜 현대계열사들을 옥죄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문화실은 더욱 위축됐다. 문화실은 현대건설 소속이었지만 여러 계열사들의 분담금으로 살림을 꾸려왔다.문화실이 최근에 사라진 ‘PR사업본부’로 명칭이 바뀐 때는 98년 7월. 그룹홍보실 등을 없애라는 정부의 주문이 잇따르자 현대는 문화실을 PR사업본부로 바꾸고 소속사를 현대건설에서 금강기획으로 변경했다. 이때 현대의 다른 핵심조직들도 대폭 손질됐다. 종합기획실이 폐지되면서 경영전략팀과 구조조정 본부로 나눠졌다.고 정명예회장 사망 이후 역할 위축가뜩이나 위축된 PR사업본부를 더욱 맥빠지게 만든 것은 지난해 초반 터져나온 이른바 ‘왕자의 난’이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 정몽헌 현대회장간에 벌인 신경전은 한동안 긴밀한 사이였던 현대자동차 홍보팀과 PR사업본부를 서먹서먹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한지붕 아래서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그 중에서도 가장 난감해 한 곳은 PR사업본부였다. 이곳은 현대자동차 등 각 계열사들의 인력을 차출해 만든 부서였다. 따라서 김상욱 상무 등 자동차출신 직원들의 경우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됐던 것이다. 이 일로 PR사업본부 조직은 사실상 와해되는 국면으로 치달았다. 물론 현대도 금강산 관광사업 등으로 계속적인 위기일발 상황을 거듭했다.현대자동차의 분가 이후 ‘왕자의 난’은 진정돼 갔지만 그룹사정은 더욱 안 좋아졌고 주력 계열사들이 그룹에서 속속 벗어났다. 이에 따라 PR사업본부의 역할이 크게 줄었고 이내 ‘무용론’까지 대두됐다. 특히 고 정명예회장이 사망한 이후 PR사업본부의 역할은 더욱 줄어들었다. 그리고 현대의 그룹해체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서 PR사업본부는 더 이상 역할이 없게 되자 기억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서울 계동 현대사옥 새주인은 누구?금감원 눈독 속 현대차 매입설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사옥의 최종 주인은 누가 될까. 아직까지 현대사옥은 현대자동차 현대건설 등 현대 관계사들이 지분형태로 소유하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은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곳은 현대건설로 55%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로 이 지분에 대한 권한은 사실상 채권단이 쥐고 있다. 현재 현대사옥에 대해 관심을 내보이고 있는 곳은 금융감독원이다. 금감원측은 현대사옥이 서울 4대문 안의 중심지에 있고 구조조정차원에서 매물로 나와 있어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금감원은 현대그룹 구조조정과 맞물려 있는 등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현대자동차가 매입할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는 현대자동차가 이미 사옥본관 7∼9층과 별관 3층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다른 현대 관계사들에 비해 자금사정이 비교적 넉넉하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현대 정씨패밀리 장자인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선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사옥을 제3자에게 쉽게 넘기진 않을 것이란 게 재계의 분석이다. 정씨패밀리들은 최근 가족모임을 갖고 고 정주영명예회장의 집무실(현대사옥 15층)을 전시관 등으로 보존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더욱 신빙성있게 들린다.현대사옥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현대자동차가 계열분리로 서울 강남 양재동 사옥으로 이전하면서 본관 7∼9층과 14층, 별관 3층이 완전히 비어있고 최근 PR사업본부 폐쇄로 본관 10층 일부도 빈공간으로 남아 있다.한편 현대건설은 고 정명예회장 집무실이 있는 15층을 현대자동차에 넘기고 7층 지분을 가져오는 안을 현대자동차에 제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