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기업을 끝까지 책임지고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진윤자(56) 엔러버(www.nlover.com) 사장은 지난해 10월 어느 이른 아침 서울 보문사 경내 탑 주위를 돌며 이렇게 빌었다. 빨간 단풍잎이 하나 둘씩 떨어져 절간은 차분한 가을 모습을 자아내고 있었다.“그런데 제 마음은 한 여름처럼 얼마나 뜨거웠는지 모릅니다. 이 날은 제가 생애 처음 창업한 지 1년째 되는 날이었고 드디어 제가 원하던 사이트를 오픈하던 날이었어요. 이 사이트를 통해 신랑신부들이 행복하게 새 출발 할 수 있도록 빌고 또 빌었습니다.”진사장이 오픈한 사이트는 웨딩 리지스트리(Wedding Registry)를 인터넷으로 구현한 것이다. 미국에선 신랑신부가 결혼 청첩장을 돌릴 때 그들이 선물로 받고 싶은 목록(웨딩 리지스트리)을 같이 돌린다. 결혼식 하객들은 초대장에 적힌 백화점에 들러 신랑신부가 원하는 상품 목록을 확인한 뒤 사주고 싶은 것을 골라 결제한다. 국내의 경우 대개 부모가 혼수품을 장만해주는 것과는 다른 풍경이다.“지난 96년 미국에서 우연히 이런 결혼 풍습을 보고는 이거다 싶었어요. 한국은 혼수 문제로 양가 집안이 혼례도 치르기 전 다투는 것을 많이 봤는데 이 제도를 소개하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었죠.”진사장은 결국 3년 뒤 전업주부 생활을 마감하고 ‘일’을 저질렀다. 인터넷으로 정보검색 정도만 했던 진사장은 창업 전 쌍용정보통신에서 운영하던 인터넷 소호(SOHO) 과정을 수강한 뒤 구체적인 실행에 들어갔다. 우선 가족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고3인 작은 아들은 “엄마의 인생은 엄마 것”이라며 진사장의 창업 의지를 북돋았다. 남편도 자신의 사무실 한 쪽을 빌려 줄테니 한번 해보라고 격려해 주었다.가족들의 동의를 얻은 후 진사장은 국내 벤처기업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프로그래머로 근무하는 조카들과 대학에 다니는 조카까지 불러 첫 창업 회의를 열었다.“조카들은 자기가 결혼한다면 웨딩리지스트리를 제공하는 사이트에서 혼수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어요. 사업가치는 있다는 결론을 얻었죠. 또 조카들이 주말마다 시간을 내 사이트를 구축하겠다고 약속을 해줬구요. 운영과 개발자금은 제가 모아놓은 돈으로 하기로 했어요.”한국의 혼수문제, 해결 실마리 제공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부딪히는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이디어는 미국에서 얻었지만 국내 상황에 이를 접목시키는 것이 힘들었다. 미국 신혼부부는 3만~5만원 정도의 상품을 원하지만 한국 신혼부부는 냉장고 TV 장롱 등 값비싼 것이 많다. 그렇다고 친구들이나 하객들에게 값비싼 제품을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진사장은 할 수 없이 하객들끼리 돈을 모아 공동구입하는 결제시스템을 개발해야 했다.이 뿐만이 아니다. 진사장은 사이트에 올릴 혼수용 상품을 구하기 위해 제조공장을 직접 방문하고 이들의 이해를 구했다. 이름도 없는 사이트에 상품을 제공할 리 없는 그들을 설득시키는 것은 웬만한 노력으로는 힘든 일이었다.이렇게 뛰어다닌 결과 지금은 1천3백개의 혼수품 목록이 올라와 있고 올해 5백쌍의 신혼부부들이 엔러버를 통해 혼수품을 마련할 예정이다. 진사장은 이 사이트를 단지 결혼 혼수품 마련뿐 아니라 돌 집들이 등의 행사에도 응용할 생각이다.“나이 든 주부라고 왜 창업을 못하겠어요. 중요한 건 자신감입니다. 이 일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인지 확신만 있다면 가족들을 불러모아 상의해 보세요. 길이 보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