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제조업체간의 생존경쟁이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한 곳은 단연 냉동식품 시장이다. 전자레인지나 끓는 물에 잠시 데우거나 익혀서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냉동식품은 일본 시장에서 한햇동안 무려 5백종 이상의 신제품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유통업체 매장의 진열대 크기는 거의 변함이 없다. 특히 기껏해야 매장 면적이 20평 안팎에 불과한 편의점은 진열대가 특히 작다. 판매 순위에서 품목당 3위 안에 들지 못하면 당장 퇴출선고를 내리는 게 대다수 편의점이다.이같이 가혹한 편의점 진열대에서 올해 유난히 각광받고 있는 냉동식품은 쌀로 만든 ‘밥류’다. 밥류 제품 중 ‘한국’요리를 본따 만든 한국풍 냉동식품은 인기 상위를 달리며 하반기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일본 시장에 나와 있는 한국풍 냉동식품은 수십종에 이른다. 하지만 최근 가장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 중 하나는 전통 한국의 맛을 강조한 ‘불고기김치볶음밥’이다. 니혼수산이 내놓은 이 제품은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거래선 점포의 90% 이상을 뚫고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일본인들에게 인기 높은 불고기와 김치 두가지를 결합시킨 제품전략이 소비자들의 구매욕구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경쟁업체들의 분석이다.음식 고유의 맛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등 제품개발 스타일이 보수적인 탓에 소비자들로부터 큰 시선을 끌지 못했던 니혼수산은 불고기김치볶음밥으로 회사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바꿔놓는 데 성공했다. 한국풍 냉동식품에서 또 하나 시선을 끄는 업체는 유키지루시다. 일본 최대의 유가공업체이면서 지난해 여름 식중독사고 은폐사건으로 창립후 가장 큰 시련을 겪었던 이 회사는 냉동식품 쪽으로 제품전략을 강화한 후 한국풍 제품에 기대를 걸고 있다. 유키지루시의 불고기볶음밥은 우유사업에서 먹칠 당한 회사 이미지를 앞으로 냉동식품 쪽에서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을 것인지를 재는 하나의 잣대가 될 전망이다.일본 소비자와 식품업체들이 주목하는 다크호스 제품의 선두주자는 발상전환형 튀김류와 가격파괴형 일부 초저가상품이다. 발상전환형 튀김류의 대표 상품으로 꼽히는 니치로의 ‘가자미 덴뿌라’는 재료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입관을 보기 좋게 뛰어 넘어 성공했다. 일본 소비자들이 구워먹거나 조리만 해 먹는 것으로 알았던 가자미를 튀김 재료로 과감히 사용한 것이 적중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니치로가 첫선을 보인 오징어 덴뿌라의 시리즈 제품 중 하나로 등장한 이 가자미 덴뿌라는 지난해 한햇동안 38만 상자가 팔려 나갔다. 올해도 인기몰이를 계속하자 경쟁업체들이 너도 나도 뛰어들어 냉동식품 시장의 가자미 덴뿌라 전성시대를 예고할 정도다.발상전환형 튀김류·초저가형 밥류 등도 잘 나가낙쿠스 나카무라라는 회사가 ‘엄마의 응원 보따리’라는 코믹한 이름으로 내놓은 제품은 냉동식품 시장의 만성적 덤핑판매에 도전장을 던졌다는 점에서 성공여부가 관심대상이다. 일본 냉동식품 업계에서 실제판매가는 희망 소비자가격의 50~60%에 불과할 만큼 메이커 전체가 불꽃 튀는 할인경쟁에 휘말려 있다.그러나 낙쿠스 나카무라는 소비자들의 가격불신을 없앤다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처음부터 초저가를 선언하고 할인판매를 거부했다. 이 회사가 내놓은 튀김 볶음밥 등 모두가 봉지당 1백엔의 가격에 소비자들을 만나고 있다. 하청공장에 반품을 떠넘기지 않고 자체 처리하는 방식으로 신뢰를 심어주면서 가동률 제고와 원가절감에 총력을 쏟은 것이 염가 제품탄생의 원동력이 됐다고 회사측은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