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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법 개정에 대한 시비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의 기업규제완화 방침과 관련, 재계가 30대 기업 집단지정 제도와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폐지를 건의하면서 차제에 공정거래법 체계를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정부내에서도 부처에 따라 상당한 견해차가 있다.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의 공정거래법 개정 요구조항은 여러가지지만 핵심은 경제력 집중완화를 위한 조항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경제력 집중완화를 위해 30대 기업 집단지정제도를 명문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호출자금지 총액출자제한제도 등 출자규제를 실시하고 있다. 재계는 이런 경제력집중 완화 즉, 재벌규제에 관한 조항은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론적으로 보면 재계의 주장이 지극히 옳고 정부도 이 점은 인정하고 있다. 즉, 공정거래제도는 경쟁촉진을 통한 소비자후생 증대를 유일한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주장이다. 그런데 현행 공정거래법은 대기업 그룹에 대해서는 진입규제나 출자제한 등의 경쟁제한적인 규제를 실시하면서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보호조치를 강구하는 등 시장중립적이 아닌 차별적 규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는 경쟁촉진이라는 공정거래제도의 취지에 반할 뿐만 아니라 동일한 법률에서 상호 모순되는 정책목표를 부여하고 있어 법체계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경쟁조건은 동일해야 하고 특히 자산순서로 30대 그룹을 잘라 여러 가지 불이익을 주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도 어긋난다는 것이 전경련의 주장이다.재계가 공정거래법 체계를 손질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세계화 정보화라는 경제환경의 변화에 부응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개방화의 확산으로 경제에 관한 한 국경이 없어진 것과 다를 바 없고 국내 독과점 규제의 당위성도 그만큼 약화됐다는 것이다. 또 디지털혁명으로 불리는 정보화의 진전도 기업경영환경을 엄청나게 변모시켜 놓았기 때문에 이에 부응할 수 있도록 개편돼야만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사업다각화가 필수적이고 업종 전문화를 유도하는 출자총액제한 등의 경제력집중완화 규제는 마땅히 폐지돼야 한다는 것이다.사실 사업다각화를 문어발식 기업확장으로 보기는 어렵다. 물론 종래와 같이 계열기업을 자기 돈 한 푼 없이 은행돈을 빌려 마구잡이로 늘리거나 아니면 소액의 자본을 투자해 놓고 그 기업이 또 다른 기업을 인수토록 하는 소위 순환출자에 의한 기업확장 등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법으로 이를 규제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성이 없다. 불법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지 않는 한 막아서는 안된다. 다만 은행이 거래기업에 대한 신용도 평가에서 그런 점을 문제삼고 시정시키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이밖에도 기업결합제한이나 부당공동행위의 유형지정 등 독점규제나 불공정거래 행위 등도 디지털시대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것이 전경련의 주장이다.재벌규제를 지속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지만 외환위기 이후 기업행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세계경제환경이 엄청나게 변모된 만큼 이제는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한 제도운영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