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권하는 사회’. 금융사들은 돈 빌려 주기에 개인들은 돈 빌려 쓰기에 모두 열심이다. 경기 불황과 저금리가 수익경영의 압박에 시달리는 금융사들을 주택담보대출 등에 경쟁적으로 나서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들도 금리가 낮다고 생각, 대출받는 것을 쉽게 생각하며 대출을 받아 투자에 나서기도 한다.실제로 우리나라 가계 빚은 꾸준하게 증가하면서 평균 2천만원을 넘어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현금서비스 및 카드론을 제외한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금액이 지난 4월 3조4천20억원, 5월 4조6천1백71억원, 6월 4조2천5백40억원 등 2분기 중 12조2천7백31억원에 달했다.지난 1분기 중 현금 서비스 및 카드론을 포함한 가계대출 규모는 8조4천2백25억원이나 됐다. 2분기 중 현금 서비스 및 카드론 증가액 규모를 전 분기 수준인 2조5천5백12억원으로 가정할 경우 올 상반기 가계대출 증가금액이 21조원을 웃돈다.이에 따라 가계대출 잔액은 1분기 말 2백49조5천억원에서 6월말기준으로 2백60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가구당 대출 잔액도 1분기 1천9백30만원을 기록했는데 3개월만인 6월말 2천만원을 돌파했다. 계산에 포함되지 않은 보험과 신용금고 등 제 2금융권의 대출액을 합치면 수치는 더 늘어나게 된다.제일 먼저 변한 것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의 태도다. 은행들은 대출영업팀을 조직해 운영하고 있거나 운영 계획을 갖고 있다. 이제 거만하게 앉아서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올 상반기 가계대출 증가금액 21조원 웃돌아한국은행이 지난달 실시한 조사에서도 이런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한은은 지난달 25~30일 중 45개 금융기관 여신업무 총괄담당 책임자를 대상으로 대출행태에 대한 면담 우편조사를 실시한 결과 “2분기 금융기관 전체의 대출태도가 누그러졌다는 응답이 54%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금융기관들의 돈을 빌리는 측에 대한 태도는 각기 달라 대기업 대출은 엄해진 반면 가계대출에 대해서는 완화됐다. 한은 관계자는 “구조조정 마무리가 지연되면서 신용리스크가 적은 안정적 거래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은행 및 상호신용금고의 소매금융시장 확보경쟁이 심화, 가계대출 완화추세가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최근 대출 시장의 최대 ‘사건’은 주택담보 대출금리가 6%대로 떨어진 것과 흔히 ‘론패스’라고 불리는 소액 급전 대출 시장의 급팽창이다. 전에는 대출을 받기가 어려웠던 사람들에게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면서 빌려쓰는 인구를 늘린 ‘제도권 금융기관의 사채시장 공략’도 한 경향으로 꼽힌다.론패스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와 마이너스 통장 사이의 틈새상품이다. 론패스를 가장 먼저 내놓아 히트시킨 삼성캐피탈의 안성찬 부장은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편리한 대출을 원하는 것이 요즘 소비자들의 기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돈이 급한 사람이 ‘대출, 받을 수 있는가 없는가’를 목표로 여겼던 것은 어쩌면 옛말일 지 모른다. 전문가들은 “가계 빚은 없는 게 가장 좋지만 무조건 나쁘다고 여기는 것도 현명한 재테크는 못된다”고 말한다. 계획을 세워 저축하듯 빚도 정확한 목적과 계획에 따라 얻어 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어차피 필요해서 빌려 써야 한다면 골라서 잘 받는 게 중요하다. 또 과거 높은 이자로 대출을 받았던 사람들도 대출을 갈아타는 비용과 금리를 비교해 옮기는 것이 유리하다 싶으면 망설이지 않고 전환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그러나 개인 대출 규모는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빌려쓰는 사람들은 아직 그다지 영리하지 못하다. 아무리 대출 이자가 떨어진다 해도 예금 금리에 비하면 훨씬 높은 데도 대출은 대출대로 갚으면서 예금은 예금대로 하는 어리석은 재테크를 하는 사람도 한 둘이 아니다. 개인들이 대출 조건을 일일이 따져 보기도 쉽지 않다. 빌리려는 사람에 따라, 자금의 용도에 따라 내용도 복잡하고 종류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분명히 판매한다고 나와있건만 수지가 맞지 않는 등 해당 금융사의 이해 관계에 따라 실질적으로는 취급하지 않는 상품도 수십여가지다. 광고에 나온 금리만 믿고 대출 상담을 하러 갔다가 광고보다 4~5%나 높은 이자를 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시간 낭비만 하기도 일쑤다. 그래서 대출 전문가들은 무조건 한 금융사의 말만 믿지 말고 “정보를 찾아라” “손품, 발품을 팔아라”고 말한다. 또한 상품에 따라서는 금리가 획일적으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흥정을 잘 하면 값을 깎을 수 있는 (대출 금리를 낮출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똑똑한 소비자가 필요한 ‘대출세일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