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갑작스럽게’ ‘기획실장’이라는 명함을 들고 회사에 나타난 ‘2세 경영인’은 으레 직원들의 반발을 사게 마련이다. 회사 창립자와 직원들이 기껏 일궈놓은 텃밭을 단지 아들이라는 이유로 가로채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드러내놓고 말은 않지만 직원들은 슬며시 이런 질문을 마음속으로 던진다. “어디 한번 보자. 얼마나 잘하는 지.”이세준(34) 에이콘 사장은 ‘2세 경영인’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회사 설립자인 아버지 이영찬 회장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아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에이콘은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업체지만 건설자재 업계에선 꽤 유명한 파이프 제조업체다. 첨단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부틸렌(PB) 소재의 파이프를 생산, 국내 수도관 중 급수와 급탕에 들어가는 배관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다. 또 코스닥 등록법인(시가총액 2백50억원)으로지난해 매출액은 2백20억원을 기록했다.1백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회사에 젊은 나이로 사장에 오른 이사장도 직원들의 부담스런 시선을 받았을 법하다. 게다가 그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아버지마저 지난해 12월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작고하자 그는 홀로 일어서야 했다. 선친이 작고하기 전 4년여 동안 경영수업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당장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올해 실적이었다.“지난 상반기에 매출 1백39억원과 당기순이익 11억원을 올렸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매출은 36%, 당기순이익은 2백70%가 늘어난 결과입니다. 건설경기가 좋지 않은 때에 이렇듯 좋은 실적을 올렸던 이유는 현금흐름 관리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그는 사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어음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매출의 80% 가량이 어음으로 처리되는 건설업계의 관행으로는 도저히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현금흐름을 개선하기 위해 현금장사인 소매영업에 치중했다. 특히 가정용 보일러 배관 시장을 타깃으로 정했다. 이를 위해 그는 전국 40개 대리점에 회사직원들을 보내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는 한편 주요 대리점에는 아예 인건비를 회사에서 부담하는 직원들을 파견해 대리점주들이 비용절감의 효과도 맛보도록 했다. 그 결과 상반기 매출액 중 소매영업분야에서 40억원의 현금이 회사에 새로 유입됐고 매출의 50%를 현금으로 받는 체제를 구축했다.전국 대리점 돌며 현장정보 수집“전국에 있는 대리점들을 돌며 설비기사 직원들을 만나 현장의 생생한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보일러 배관의 경우 신축물량보다 개보수 물량이 훨씬 많다는 것도 현장에서 접한 정보였죠.”그가 사장에 부임하고 난 뒤 변화된 모습은 이 뿐만이 아니다. 해외 영업을 강화해 수출물량을 대폭 늘려놓았다. 경희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남가주 대학에서 건축학 석사를 마친 이사장은 유창한 영어실력을 무기로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닥치는 대로 해외 거래선을 뚫기 시작했다. 선친이 경영하던 때부터 그가 해외 바이어들과 친분을 다지며 해외진출을 조용히 준비한 것이 실적으로 연결됐다.“저뿐만이 아니라 우리 직원들이 아버지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남은 열매는 같이 나눠야죠.” 이사장은 지난 여름 5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과 부부동반으로 동남아 여행을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