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보험 등 주력상품 변화 바람 … 전문화·소수 정예화 정착돼야
지난해 하반기부터 불어 닥친 ‘아줌마부대’ 감원 바람은 올 초 절정에 다다랐다.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됐을까. 여기에는 보험사의 구조적인 관행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IMF 외환위기 이후 금리 인하와 주식 시장 침체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이 보험시장에도 그대로 옮겨 왔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험사들의 사전 준비는 전무했다.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보험사들은 ‘아줌마부대’로 불리는 벌떼식 보험 모집인을 통해 현금을 끌어모으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당시에는 금융시장의 고금리 기조와 부동산 시장 호황기였기 때문에 고객돈을 잘 굴려 높은 투자수익을 거두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보험상품 가격을 결정하는 예정이율과 실제 자산운용 수익률간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차이, ‘이차익’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수익은 쏟아졌다.여기에 보험사들은 평균 8%대의 확정형 금리, 원금보장이라는 이점을 더해 고객 유치에 더욱 힘을 쏟아 부었다. 최근 보험사들이 주력 상품을 바꾸고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사업비를 줄이려 하는 것 등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과거 생명보험사들은 상품의 3대축을 이루는 생존 사망 생사혼합 보험 구분 없이 꾸준히 많은 상품을 내 놓았다. 특히 고객 유인 효과가 큰 확정금리형 저축성 보험 상품 판매에 주력했다. 생보업계에 따르면 확정금리형 상품이 생명보험사 전체 상품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거뜬히 넘었다.손해보험사들도 보장 상해 보험인 장기보험 판매에 주력하면서 일부 확정금리형 상품을 판매했다. 하지만 의무 보험 성격을 띠는 자동차보험 시장이 전체 손보시장의 5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 데다 화재 해상 항공보험 등 일반보험시장이 저금리에 비교적 자유롭다는 측면에서 손보사들의 경영난은 상대적으로 가벼워 보인다. 아무튼 주식시장 침체와 전반적인 경제 상황 악화는 생손보사들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보험상품 구성 및 판매채널 변화보험의 상품 구성도 과거에 비해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생명보험업계에서는 종신보험이 새로운 주력 상품으로 부상했으며 손보시장에서는 가격 자유화와 직판채널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90년초 메트라이프생명이 처음 종신보험을 도입했을 때만 해도 그다지 각광받지 못했던 종신보험은 이제 전통적인 건강 상해보험을 밀어내고 주력상품으로 자리잡았다. 수입보험료 변동상황을 보면 이런 추세는 뚜렷하다. 지난해 초 외국사 위주의 종신보험 시장에 국내 생보사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보험사들은 지난해 1분기(4~6월)에 2백11억원의 보험료를 거둬들였다. 하지만 올 1분기에는 2천4백53억원으로 1년 사이에 10배 가까운 시장이 형성됐다.손해보험사들은 올 초 자동차보험료 완전 자유화 아래 가격 경쟁력 확보에 고심하고 있다. 여기에 CM(사이버 마케팅) TM(텔레마케팅) 등 모집인을 거치지 않는 직판채널과 특화 상품을 무기로 한 신규 시장 진입자들에게 자리를 내줄 판이다. 초저금리로 인한 장기보험과 일반 보험에서의 고전은 손보업계에 위기의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보험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보험사의 대표적인 수익원인 사차(예정사망률과 실제 사망률간의 차이) 이차(예정이율과 실제 자산운용 수익률간의 차이) 비차익(예상한 사업비용과 사용한 비용간 차이) 중 보험사가 자구 노력을 통해 늘릴 수 있는 것은 비차익 뿐이기 때문이다.비차익 줄이기의 첫번째 대상은 당연히 보험모집인이 될 수밖에 없다. 내근직의 경우 희망 퇴직 등을 통한 구조조정이 가능하지만 자산운용 판매관리 기획 업무 등 핵심 인력은 조직 관리 차원에서 일단 칼을 피할 수 있었다. 보험사들은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 영업 누수를 감수하고 모집인 감축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설계사 감축을 단행하게 된 보험사들은 또다른 문제에 당면하게 됐다. 모집인 수와 보험판매실적이 직결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보험사들은 무작정 모집인 수만 줄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계사를 줄이는 대신 재교육 등을 통해 기존 모집 조직을 전문화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전문 인력은 기존 단순 보험 판매에서 벗어나 고객에게 맞는 상품을 소개해주고 전반적인 재무설계까지 지원할 수 있는 우수한 인력을 말한다.모집인 전문화 현상 두드러져일선 마케팅 부서 담당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런 모집인 전문화 현상이 얼마나 빨리 자리잡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이제는 모집인 시험이 더 이상 응시만 하면 합격률 1백%에 육박하는 형식적인 시험이 아니다. 과거에 시험에 응시하기만 하면 지급했던 ‘응시수당’도 사라졌다. 막무가내식 증원을 꺼리게 된 것이다.이런 가운데 생보사 종신보험 전문설계사는 이미 5천명이 넘어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금 늦긴 했지만 손해보험사들도 기존 영업조직의 재교육과 신규 인력 채용을 통해 전문판매사 수를 늘리고 있다. 손해보험협회 조선하 모집관리 부장은 “보험사들이 모집인을 줄인 만큼 새로 충원하지 않고 있어 앞으로는 과거와 같은 영업조직 비대 현상은 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4월에서 9월까지 1인당 생산성이 같은 기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는 분석 결과도 나오고 있다.(58쪽 표 참조)이같은 과정에서 보험 설계사들을 마구잡이로 퇴출시키는 등 부작용도 발생한다. 이같은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근태 임금 등을 기반으로 하는 객관적인 평가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모집인도 이제는 당당히 직업 의식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전문화, 소수정예화되고 있는 기존 모집인 조직과 새롭게 부상하는 남성 전문설계사 조직을 적절히 병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명보험협회 배찬병 협회장은 “보험회사의 영업 모집인 전문화는 어쩔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면서 “보험사와 모집인들이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대비책을 수립해야만 보험산업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남성전문 설계사 ‘FC’고가 상품·질 좋은 서비스 위해 탄생최근 아줌마 부대와 함께 보험업계에서는 FC(파이낸셜 컨설턴트)로 불리는 남성전문 설계사들이 새로운 판매채널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 FC들은 생명보험업계에서는 종신보험 전문판매사로, 손해보험업계에서는 고가 상품과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판매채널로 자리 잡았다. 생보업계에서는 삼성 교보 대한생명 등 대형 생보사와 외국사 중심으로 FC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손보사들 역시 고객 서비스 강화 차원에서 전문 판매 조직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생명보험협회는 지난달 기준으로 국내 남성 설계사수는 1만5천명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중에서 기존 남성 설계사의 숫자를 감안하면 종신보험 변액보험만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설계사는 5천명 수준인 것으로 추산된다.지난해 초부터 국내 생보사들이 종신보험 판매를 위해 FC 양성에 주력하면서 기존 남성 설계사와는 차별화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지난 91년 한국 푸르덴셜생명은 전문조직 양성을 위해 당시 일본 푸르덴셜생명 상무를 역임하고 있던 미야자끼씨를 국내로 불러들여 빅락(BIG ROCK)이라고 불리는 SM(세일즈 매니저) 프로그램에 착수하게 된다. 이때 양성된 SM들이 현재 각 생보사에서 13명의 BM(브랜치 매니저, 지점장)으로 성장해 FC조직의 밑거름이 됐다. 이후 94년에 일본 푸르덴셜 생명의 전문 영업인이 국내에 들어와 좀더 전문적인 남성 설계사를 양성하면서 기존 모집인과 구분되는 용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ING생명도 비슷한 시기에 남성특화 조직을 양성했지만 시기적으로는 푸르덴셜보다 1년 남짓 늦은 것으로 알려졌다.이 시기에 ING생명에서 영업시스템 구축 작업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삼성생명과 신한 SK생명 등으로 자리를 옮겨 선진 영업을 전파한 것이다. 2년전부터는 교보생명도 ING의 일부 전문인력 영입과 본사 자체적인 남성설계사 양성 계획 아래 본격적인 FC조직을 양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시장 참여를 유보하던 대한생명과 알리안츠제일생명도 전문남성 설계사 양성에 착수했다. 이렇게 미국의 생활설계사가 국내에서는 전문영업맨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들 남성전문 인력들의 수입과 본사의 복지혜택은 기존 설계사 조직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준이다. 아직 출발단계인 교보생명의 전문남성설계사들의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는다고 교보생명 관계자는 말했다.인터뷰이순녀 보험모집인 노조 위원장“마구잡이 아닌 합리적 해법 찾아야”정식 인가는 받지 못했으나 보험 모집인들에게도 노조가 있다.모집인 노조가 현재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 신분을 보장하는 것. 모집인은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조를 결성할 수도 없다. 불안한 위치 때문에 회사측 뜻대로 해고당하고 회사측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규정에 의해 좌지우지되며 인간적인 모멸을 당하는 등 각종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이유다. 둘째, 수당 체계의 개선이다. 현 수당체계는 중도에 그만둘 경우 설계사의 몫을 보험사측이 가져가게 돼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현재 해고된 모집인들이 받지 못한 수당을 지급받기 위한 소송이 여러 건 진행중이다.보험모집인 노조 이순녀(43) 위원장은 ‘저금리로 인한 역마진이 발생, 설계사 감원을 통해 비용을 줄이지 않을 수 없다’는 보험사측의 주장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과거에 판매했던 고금리 확정금리형 상품 때문에 역마진이 발생한다고 내세우는 데 실은 이같은 계약들이 상당 부분 이미 해약돼 실제로 지급해야 할 금액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험계약을 중도 해지하면 원금도 찾지 못하고 약속한 이자도 다 받지 못하므로 실제 보험사측에 손해될 게 없었다는 논리다.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변신이 필요하다면 합리적인 방법을 택해야 하는 데 보험사들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 이위원장의 생각이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