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란 속 단기임대 ‘메뚜기 세입자’ 등장 … ‘탈 강남’ 현상 두드러질 듯

올 가을에만 20만쌍의 신혼부부가 새로 탄생,서울 수도권 전세난 심화에 일조할 것이라는 분석이다.“2년만에 전세금이 4천만원이나 올랐으니 어떡해요. 집주인에게 2천만원 정도만 올려주면 안되겠냐고 했더니 전세 구하는 사람이 줄을 섰다면서 딱 잘라 거절하더군요. 기존 전세금으로는 비슷한 규모의 아파트를 구할 수가 없어 강북구 수유동의 다세대주택으로 이사하는 겁니다.”‘손없는 날’인 8월28일 아침,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아파트에서 이삿짐을 옮기고 있던 주부 박정아씨는 “요즘 전셋값 오르는 걸 보면 가히 살인적이라 할 만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박씨는 2년전인 99년 8월 갓 완공된 이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당시 발빠르게 움직인 덕에 이웃들보다 5백만원 낮은 8천만원으로 24평형에 입주했다. 하지만 입주 후부터 전셋값이 계속 올라 지난 5월부터는 1억2천만원을 넘어섰다. 오른 폭만큼 보증금을 올려 줄 능력이 없는 박씨 가족은 25평짜리 다세대주택을 구해 보금자리를 옮겼다. 강남에 직장이 있는 남편의 출근시간이 두 배 이상 늘어나고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은 전학을 시켜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나마 수유동의 다세대주택도 한 달 발 품을 판 덕에 겨우 건졌다고.이날 이 아파트에서 이사를 나간 집은 줄잡아 10여 가구. 관리사무소는 계약 갱신이 시작된 두어 달 사이 1백가구 정도가 이사를 나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근 쌍용부동산 김종민 중개사는 “1억2천만원 이상에도 전세를 들겠다는 수요가 여섯 명 정도 대기 중이지만 매물이 모자란다”고 밝혔다.전세얻기 ‘하늘의 별따기’이런 현상은 비단 이 아파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기존 세입자는 오른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집을 좁혀 가거나 서울 외곽으로 이동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분기 중 4만4천명이 ‘탈 서울’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빈자리를 노리는 세입자들은 몇 달째 지속되는 매물부족 현상에 지쳐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거나 높은 월세도 불사하는 상태. 9~10월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 중에는 “부르는 대로 줄 테니 전셋집만 구해달라”는 ‘다급 초조형’이 적지 않다.서울 강남권에선 상황이 더 심각하다. 재건축 열풍이 분 올해 초부터는 ‘전셋집 씨가 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남구 도곡동에서 10년째 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형순 중개사는 “재건축 여파로 임대물량이 줄어든 데다 집을 비워두면 재건축 승인을 빨리 받을 수 있다는 소문 때문에 고의로 비워 두는 곳이 늘면서 전세난이 더욱 심해졌다. 이렇게 전세 구하기 힘든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강동구에서는 저밀도지구인 암사 명일지구의 동서울아파트 4백70가구가 이주에 들어감에 따라 주변 전세 물량이 동났다. 아파트는 물론 소형 다세대 다가구주택까지 전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암사동 강동시영 13 15평형, 명일동 삼익그린 18평형 등은 최근 두어 달 사이 1천만원 이상 가격이 뛰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세시장에선 전에 볼 수 없던 신풍속도까지 등장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6개월 안팎의 단기 수요가 크게 늘었다는 것. 이른바 ‘메뚜기 세입자’들이다. 철거를 앞둔 재건축 대상 아파트에 기약없이 입주하거나 단기 임대용 원룸으로 발길을 옮기는 신혼부부나 독신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강남구 역삼동 삼성동, 서초구 잠원동 신사동 등지에선 보증금 1백만~1천만원에 월세 65만~1백40만원 조건의 원룸이 많이 나와 있다.이들은 당분간 월세로 살면서 전셋값이 내리길 기다리는 케이스. 또 새 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하기 위해 공백기간 동안 짐을 이삿짐센터에 맡기고 월세를 사는 가족도 많아졌다.10월 이후 전세난 ‘숨통’ 전망도올해는 4~6월 결혼시즌에 윤달이 끼는 바람에 가을 신혼부부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올 가을에만 20만 가구가 새로 탄생, 서울 수도권 전세난 심화에 일조할 것이라는 분석이다.하지만 10월 이후 전세난이 조금씩 풀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서울 강북지역에서는 하반기에 2만여 가구의 신규 입주물량이 공급되며 이 가운데 20~30평형대의 중소형 아파트가 절반을 넘어 아예 집을 사자는 수요가 촉발될 가능성도 점쳐진다.또 9천가구 이상의 임대아파트가 공급돼 서민 전세난 해소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주택공사와 민간 건설업체들에 따르면 서울 수도권에서는 9~11월 사이 임대주택 9천2백52가구가 공급된다. 저소득층에게 공급되는 국민임대주택이 5개지구에서 3천2백39가구, 청약저축에 가입한 무주택세대주에게 공급되는 공공임대주택은 5개 지구에서 2천2백33가구가 새로 나온다. 민간건설업체가 공급하는 민간임대주택은 6곳에서 3천7백80가구가 공급된다. 임대기간은 5년이지만 2년6개월이 지나면 분양으로 전환할 수 있는 아파트들이다.하지만 강남권 전세난은 쉽게 풀리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연말까지 신규 입주물량이 2천가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 특히 집주인들이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고 있어 이미 나타나고 있는 강남 수요자들의 강북행, 수도권행이 더욱 두드러질 가능성도 높다.전세값 폭등 ‘이런 일도’3백만원만 더 주면 ‘내집 마련’유래없는 전세난 때문에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에 바짝 근접, 전세가 비중이 90%를 넘는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 기용아파트 18평형은 매매가가 6천5백만원인데 비해 전세가는 6천만원. 5백만원만 더 얹어주면 아예 집을 살 수 있는 셈이다. 도봉구 창동 상계주공18단지 13평형, 강동구 성내동 선광 20평형도 전세가 비중이 90% 이상인 곳이다.수도권에서는 안산시 고잔동 주공8단지 22평형이 94.83%로 가장 높다. 1천20가구 대단지인 이곳은 매매가가 5천8백만원, 전세가는 5천5백만원으로 3백만원 차이다. 파주시 금촌동 동현 23평형, 수원시 매탄동 매탄성일 18평형도 3백만~4백만원만 더 부담하면 집을 살 수 있는 곳들이다.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중이 높은 곳은 입지여건이 떨어지고 단지 규모나 평형이 작은 곳이 대부분. 즉, 매입하기엔 투자가치가 떨어지지만 다른 아파트에 비해 가격, 평형 등이 세입자 조건에 유리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중장기 임대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투자자나 전세난에 시달리고 싶지 않은 서민층이라면 관심을 둘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