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워 연구 개발, 최고 기술로 1등 제품 일궈 … IMF위기 해외진출로 뚫고 세계적 인지도 획득
“사실 기업의 규모를 키우고 싶은 유혹을 많이 받았어요. 은행들도 돈은 얼마든지 빌려줄테니 가져다 쓰라고 했죠. 그랬다면 대우중공업 정도는 됐을 겁니다. 그러나 제가 고지식해서 남의 말을 잘 믿지 않습니다. 사업초기부터 결심한 무차입경영과 외길 승부에 전념하자고 스스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요.”불확실한 미래 대비 … 제품 개발 투자삼영열기 최평규 회장은 “어떤 사업이라도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신념으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춘 기업을 일궈냈다. 이 회사에서 생산하는 열교환장치 ‘고주파핀튜브’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97년 2백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던 삼영열기는 지난해 7백억원의 매출을, 올해는 1천억원을 바라볼 정도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이기 때문에 순이익(지난해 1백50억원)도 매출액 대비 20%를 유지한다. 부채비율은 40%로 상당히 적고 현금유보율도 지난해 8백80%를 기록하는 등 재무구조가 탄탄하다.한 분야에서 1등 기업을 일궈내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는 세우지만 최회장처럼 이를 실천하는 경영자는 소수다. 최회장은 “일을 취미 삼아 해야 1등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싫증을 내지 않아야 좋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한 번 일에 몰두하면 3~4일은 꼬박 밤을 샌다. 사업 초기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기술진과 함께 열교환기를 개발한 1년 동안은 집에 들어가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우리나라 경영자들은 일과 제품에 대한 열정이 적습니다. 조금만 사업이 잘 되면 고급차부터 구입하기 시작하죠. 제가 단언컨대 사장 주머니에서 돈이 딸랑딸랑 소리가 나면 그 기업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려면 제품 개발에 투자해야 합니다. 준비하지 않는 기업에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탄탄대로를 달렸던 삼영열기도 IMF 직전인 97년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갑자기 물량이 줄더니 아예 매출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흑자 경영의 전통을 깨는 것 뿐 아니라 회사가 문을 닫을 지도 몰랐다. 다급해진 최회장은 눈을 해외로 돌렸다. 10여년 전부터 해외에 수출도 하고 기술인증도 받는 등 준비는 했지만 국내 물량이 많아 해외 시장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해외진출에 회사의 명운을 맡겨야 했다. 이때부터 최회장은 미국 등 해외 발전소들을 돌며 영업에 나섰다. 그러나 해외 유수의 기업들이 한국의 조그마한 기업을 알지도 못했고 기술력도 의심하기 일쑤였다.“정면 돌파하기로 마음을 단단히 잡았어요. 그래서 외국기업들에 이렇게 얘기했어요. 누구든지 우리 회사에 와서 한 달이 됐든 두 달이 됐든 기술력을 시험해라. 경비는 우리가 전액 부담하겠다. 그리고 원한다면 장비를 가져가서 1년 동안 사용해보고 문제가 없다면 그 때 돈을 내라. 이렇게 했더니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ABB(Alstom Power) 등 미국 최대의 발전소 건설회사에 수출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런 영업전략이 성공했기 때문입니다.”‘제품 사용해 보고 구입하라’ 전략 구사당초 고전을 예상했지만 막상 도전해보니 의외로 해외진출의 여건이 좋았다. 최근 미국내 전력수요의 급격한 증가로 각 주정부는 효율성이 높은 복합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중이었고 삼영열기가 개발한 폐열회수장치를 필요로 했다. 실제 지난해 8월 미국 델택(DELTAK)사와 장기공급계약을 시작으로 미국내 발전소 건설엔지니어링사로부터 제품 주문 요청이 쇄도했다.또 중동과 중남미는 정유 석유화학 플랜트를 대대적으로 공사하고 있어 삼영열기가 개발한 공냉식열교환장치(Air Cooler)를 주문하고 있다. 오로지 열교환장치 개발에 전력한 결과 이 제품에서 파생된 여러 제품들이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는 것이다.최회장은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얻은 지금도 ‘제품을 먼저 사용해 보고 구입하라’는 전략을 편다. 요즘에는 아예 무료 사용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대폭 늘려놓았다. 제품에 대한 자신감과 든든한 자금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엄두도 못 낼 영업방식이다. 이처럼 마치 물 흘러가듯 무리하지 않는 추진력이 까다로운 선진국 고객들의 신뢰를 받았다. 지금 삼영열기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95%는 해외에 수출한다.올해 매출액이 1천억원대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자 최회장은 전문경영인을 영입했다. 그는 앞으로 해외사업에 주력할 계획이다. 해외 수출건이 늘자 최근 외국인들이 삼영열기의 주식을 꾸준히 매입해 지분 35%를 보유하고 있다.CEO탐구최평규 회장무차입 경영 … “작지만 강한 기업 키워냈죠”“27세에 아파트를 팔아 사업을 시작했어요. 친척들에게도 돈을 빌렸어요. 이러다보니 사업하는 게 고통이었어요. 만약에 망하면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거잖아요. 내가 가진 빚만 갚으면 다신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는데. 벌써 23년이 흘렀네요.”그가 빌린 돈을 다 갚고도 계속 사업을 했던 이유는 “좀더 키워보자”는 조그마한 욕심 때문이었다. “올해는 이것까지만 해보자” 했던 것이 1년, 2년이 지나 지금의 삼영열기가 됐다는 얘기다. 무리하지 않았던 마음가짐이 작지만 최고의 기업을 키워낸 키워드였다.그가 사업 초기부터 실천한 무차입 경영 역시 소박한 마음에서 출발했다. 은행 돈을 빌리면 그 돈을 관리해야 할 경리 직원을 채용해야 하고 이는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당시 8명의 직원을 두고 회사를 운영했던 최회장의 입장으로서는 한 사람만 더 채용해도 무려 10%가 넘는 운영비를 들여야 했기 때문에 돈을 빌리지 않았다. 이게 그냥 관행으로 굳어져 무차입 경영을 하게 됐고 IMF처럼 위기의 순간에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일요일에는 뭘 할 지 모르겠어요. 일이 취미인데. 골프도 안쳐요. 일밖에 모르는 내가 요즘엔 잘 살고 있는지 가끔 돌아봅니다. 그래도 어떻게 해요. 일이 재미있는 걸.”약력: 52년 경남 김해 출생. 75년 경희대 기계과 졸업. 77년 연세대 산업대학원 졸업. 77년 경원기계공업 입사. 79년 삼영기계공업 설립.©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