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세계경기와 증시가 침체됨에 따라 헤지펀드와 벌처펀드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대부분의 헤지펀드들은 현재 조세피난처(Tax-Haven Area)를 활동무대로 삼고 있다. 특히 미국계 헤지펀드들의 경우 거의 모두 카리브해 연안지역에 본부를 두고 있는 데 이는 세금회피가 주 목적이다.본래 헤지펀드는 1949년 미국인 알프레드 존슨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그 후 한동안 활동이 거의 없었으나 90년대 들어 조세피난처가 활성화되고 정보통신 발달과 각국의 자본자유화 일정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헤지펀드들의 움직임이 크게 활발해졌다.실제 조세피난처에 속한 국가들의 세수와 헤지펀드들의 활동은 높은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조세피난처 국가들이 가장 많은 세수를 올렸던 지난 98년 8월 러시아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 발생직전 헤지펀드 수는 4천여개, 투자원금 규모는 4천억달러에 이를 만큼 전성기를 누렸다.그 후 98년 8월 러시아 모라토리엄, 99년 6월말 이후 미국의 금리인상, 2000년 3월 기술주 폭락이 잇따랐고 국제금융시장 안정차원에서 조세피난처에 대한 규제움직임이 일어나면서 헤지펀드들의 활동이 줄어들었다. 특히 헤지펀드의 대표격인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와 줄리안 로버트슨의 타이거 펀드가 큰 손실을 내면서 전반적으로 헤지펀드들의 움직임이 크게 위축됐다. 그러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국증시를 비롯한 세계증시가 위축됨에 따라 국제투자자들의 투자성향이 안전자산과 ‘고위험 고수익’ 금융자산으로 양분화되는 과정에서 헤지펀드에 대한 수요가 증대됐고 올들어 국제금리의 동반인하로 재원조성도 쉬워졌다. 또 조세피난처에 대한 규제 움직임에도 불구, 개도국들의 정치일정과 맞물려 조세피난처가 활성화됨에 따라 헤지펀드의 활동이 재개되고 있다.일반투자자 유치 위해 TV광고까지 불사현재 전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헤지펀드 수는 6천여개, 투자원금 규모는 5천억달러를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규모는 러시아 모라토리엄 이전 수준을 웃도는 것이다. 한때 헤지펀드의 상징격이었던 조지 소로스도 최근 들어서는 공격적 투자를 재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종전과 다른 점은 과거 헤지펀드는 1백만달러 이상의 기관투자가나 부유층의 전유물이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헤지펀드들이 자구책 일환으로 최소투자 규모를 10만달러선에서 수천달러 수준으로 낮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1만달러 미만의 일반투자자들도 헤지펀드 주고객으로 등장하고 있다.헤지펀드들이 일반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광고까지 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투기적 성향이 강해 미국에서조차 TV 광고를 금지하고 있지만 벨기에를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헤지펀드들의 광고를 허용하고 있다.최근 공격적 투자를 재개하고 있는 조시 소로스워런 버핏투자자들의 범위도 확대돼 독일 최대은행인 도이체방크를 비롯해 세계최대 연금단체인 미국 캘리포니아 퇴직연금기금도 투자하고 있다. 종전의 경우 연기금들은 대표적인 장기투자자들이었다. 그만큼 지난해 하반기 이후 투자수익률이 계속해서 낮아져 왔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물론 헤지펀드가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할 만큼 호황기를 누리는 것은 그만큼 높은 수익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최근 국제금융시장을 들여다 봤을 때 세계증시의 침체, 국제 저금리 추세 지속 등으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여건이 못된다는 점이다.벌써부터 수익이 떨어지는 일부 헤지펀드의 경우에는 투자손실을 새로운 투자원금으로 보전하는 악순환 조짐이 일고 있다. 자격없는 펀드매니저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골칫거리다. 이런 현상은 98년 8월 러시아 모라토리엄을 계기로 롱텀메니지먼트(LTCM)를 비롯한 헤지펀드들이 손실된 투자원금을 보전하는 과정에서 국제적으로 신용경색(Credit Crunch) 현상을 야기시켜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이 일대 혼란이 발생했던 때와 비슷한 조짐이다.국제금융시장 불안감 증폭시켜미국경기를 비롯해 세계경기 침체로 부실기업이 늘어나자 헤지펀드와 함께 벌처펀드들이 기업사냥에 나서고 있다. 벌처펀드란 썩은 고기를 먹고 사는 독수리에 비유한 용어로 부실기업을 싸게 사들여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 가치를 올린 뒤 되파는 펀드를 말한다.비즈니스위크 최신호에 따르면 미국기업들의 부실채권 규모가 사상 최대폭인 5천9백억달러에 이르자 기존의 투자은행 헤지펀드 개인투자회사 등이 중심이 됐던 부실기업 인수전에 벌처펀드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90년대 초반에는 벌처펀드들이 노리던 매물이 부동산 중심이었으나 최근 정보기술(IT)산업의 거품이 꺼지자 이들 기업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다는 것.실제로 지난 8월에 베이 하버 매니지먼트는 파산위기에 있던 넥스트 웨이브 텔레콤에 7억달러를 투자해 넥스트를 회생시켰다.닷컴기업 전성기에 거의 활동을 중단했던 워런 버핏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버핏은 이미 부실채권으로 곤경을 겪고 있는 금융사 피노버 그룹과 콘세코 보험의 부채를 사들이고 추가로 부실기업을 저가에 사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세계 최대 규모의 벌처펀드인 오크트리 캐피털 매니저먼트의 하워드 마크스 회장은 “수년동안 부실채권 시장의 르네상스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해 왔는 데 이제 때가 온 것 같다”고 최근의 시장분위기를 전했다.물론 장애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벌처펀드들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지만 막상 구미에 맞는 회사를 찾아내고도 실제 투자를 하는 데는 뜸을 들이고 있다. 현재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부실채권 규모는 3천6백억달러를 넘고 있지만 벌처펀드가 사줄 수 있는 채권은 4백50억달러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앞으로 헤지펀드와 벌처펀드들의 활동이 계속될 지 여부는 궁극적으로 세계경기와 증시가 얼마나 빨리 회복되느냐에 달려 있다. 최근 수정전망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요 기관들의 전망을 토대로 볼 때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는 지금의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결국 헤지펀드와 벌처펀드들의 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의 불안감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관련 정책당국자들과 투자자들은 이런 추세를 예의 주시해 사전에 충분한 대비책을 강구해 놓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