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시트 납품 독점, 토요타에 역수출 쾌거 … 스터프 토이 사업도 활기
경기도 반월공단 염색단지내 ‘일정(一井)실업’이란 회사가 있다. 회사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73년 설립 이래 지금까지 한 우물만 계속 파오고 있다. 그 한 우물은 다름 아닌 ‘염색가공업’이다. 특히 자동차 시트 원단 염색가공 분야에선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일본 토요타 등 유수의 자동차 회사들이 이 회사의 제품을 쓰고 있다. 가죽시트를 제외한 수십종의 자동차 시트 원단을 모두 생산할 수 있는 곳은 국내에선 이 회사뿐이다. 현재 자동차 시트 시장은 1천5백억원대. 이중 3분의 1인 5백억원 정도의 물량을 일정실업이 생산한다.업종에서만 한 우물을 판 게 아니다. 한번 잡은 거래선을 절대로 놓지 않는 ‘한 우물’도 계속 파 왔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의 성공을 가져다 준 비결이 됐다. 86년 당시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생산하면서 시트커버의 전량을 일본에서 수입해 쓴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것이 현대차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됐다.“우리제품만 써라”… 독점계약후 개발 완료현대자동차 구매 담당자를 찾아가 “왜 국산품을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국산은 아직까지 품질이 ‘기준치 이하’란 대답이었다. 당시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하려면 시트 커버도 그 쪽에서 제시하는 42개의 기준을 통과해야만 했다. 그러나 한국 제품은 이중 10가지나 기준에 못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차를 어떻게 해서든 파트너로 만들려면 그 기준을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수입돼 쓰이던 일본 제품을 구해다가 전직원이 밤을 새워가며 분석에 분석을 거듭했다.분석 결과 성공 가능성을 예감했다. 그런뒤 다시 현대자동차를 찾아갔다. 기준에 맞추기만 하면 일정의 제품을 쓰겠다는 확답을 얻기 위해서였다. 확답을 듣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외산과 비교해 손색없는 제품을 만들어내려면 우선 개발비가 만만치 않을 테고 제품이 나온 후 다른 업체가 모방해 내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격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막판 굳히기’가 필요했다. ‘우리 제품을’에서 ‘우리 제품만을’ 쓰는 것으로 독점계약을 맺었다. 안정적인 판로를 마련해 놓고 뛰어들자는 것이었다. 확실한 거래선을 잡은 이상 주저할 게 없었다. 개발에 착수한 지 1년만에 수입원단을 대체할 자동차 시트 원단을 개발해냈다. 5년간 현대자동차에 독점공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른 국내자동차업체는 물론 일본에까지 역수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세계적인 자동차회사인 토요타에도 납품을 하게 된 것이다. 현대차가 사용하는 시트가 미국시장에서 호응이 좋은 것을 보고 토요타측에서 과감하게 자국 업체와 일부 거래를 끊고 원가경쟁력이 있는 일정의 제품을 쓰기로 한 것이다. 제대로 된 거래선(현대차)을 한 번 잡은 게 더 큰 거래선으로 이어진 것이다.누구라도 이 회사와 한번 파트너가 되면 좀처럼 등을 돌리지 않는 이유가 있다. 우선 원자재를 납품받을 때 원가절감을 핑계로 값을 깎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값에 좋은 물건을 들여와야만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특별히 품질에 하자가 없다면 가격조건을 바꾸지 않고 10년이든 20년이든 ‘의리’를 지켰다. 자재 수급이 어려운 시절에도 생산에 차질을 빚지 않았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원자재 가격 안깎고 10년 넘게 의리 지켜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안산 반월공단내 1, 2공장에 이어 97년 화성에 90억원을 들여 3공장을 완공했다. 당시 매출은 3백20억원에 불과할 때였다. IMF경제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자동차 사업이 활황을 보이면서 시트 시장 규모도 따라 커지고 있었던 터다.그러나 3공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2백억원대의 빚을 지게 된 것이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경기까지 곤두박질 치면서 시트 사업 자체가 된서리를 맞게 됐다. 98년초 은행에서 보증서가 없으면 대출이 안 돼 신용보증기금을 찾기도 했다.위기 탈출을 위해서 새로운 아이템을 잡아야 했다. 그 때 만약을 위해 쌈짓돈으로 묶어둔 70억원 정도의 현금이 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 자금을 풀어 자동차 시트 생산기계로 생산 가능한 다른 아이템을 찾아 나섰다. 해외사업팀을 꾸려 세계 각국으로 자료수집에 나섰다. 유럽과 미국을 다 뒤져서 찾아낸 아이템이 인형에 들어가는 섬유소재인 ‘스터프 토이(Stuff Toy)’였다. 스터프 토이 수출이 활기를 띠었다. 98년 환율 급등으로 외화부채가 크게 늘어나면서 은행빚도 2백20억원으로 늘었지만 기존 자동차시트 사업과 스터프 토이 사업으로 거둔 수익을 모두 금융비용을 갚는 데 썼다. 99년 상반기 50억원, 하반기 90억원을 갚았다. 99년 남은 빚은 모두 80억원. 이렇게 해서 지난해말 은행빚을 ‘제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올해는 ‘어음발행이 없는 원년’으로 잡았다. 그동안 40억원 정도의 어음을 발행해왔다. 그중 현재 13억원어치만 남았다. 이런 추세라면 연말쯤 어음발행 금액도 0이 된다. 생산성향상 및 고부가제품 매출 증가 등에 힘입어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94억원으로 지난해의 62억원에서 50.1%가 증가했다. 경상이익도 77억원에서 1백24억원으로 61.4%가 늘어났다.CEO탐구고희석 회장회사도 직원도 투명경영 동참 ‘윈-윈’‘자리이타(自利利他)’. 고희석(72) 일정실업 회장은 자신의 경영철학을 한마디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물론 남에게도 이익이 돼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윈-윈’전략의 고풍스런 표현일 수 있다. 원부자재를 납품받을 때 가격을 깎지 않는 것도 다 이런 철학 때문이다.고회장이 회사를 세운 건 지난 73년. 한전 자금부장으로 일하다가 섬유 수출 오퍼상을 차린 게 사업가로 30년 세월을 보낸 계기가 됐다. 고희를 넘긴 그의 경영철학은 투명경영. 모든 업무를 실무자에게 믿고 맡긴다. 회사의 이익이 있다고 판단되면 담당직원이 재량껏 처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때문에 고회장은 아직까지 그 많은 거래업체 사장들의 얼굴도 모른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거의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실무에 간섭할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직원들의 복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신경을 더 쓰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반월공단내 노조가 없는 업체가 거의 없지만 일정실업엔 어울리지 않는 얘기다. 직원들 사이에서 ‘우리 사장이 노조위원장’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급여조건이나 근로환경이 인근의 어떤 업체보다 앞선다. 회사가 잘 되면 직원에게도 그만큼 이익이 돌아온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