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국 테러사건이 당사국인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와 우리 경제에 독인가, 약인가.지금까지 시각은 세계경기의 회복국면을 지연시킬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미국경제가 이번 테러사건으로 소비와 투자가 위축돼 추가적인 경기둔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 월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올 하반기 미국경제 성장률을 약 1%포인트 둔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분명히 이번 사태는 세계경제의 악재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만의 하나 미국이 테러집단에 대한 보복으로 이어져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세계경제의 장기불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다행히 이번 사태가 발생된 이후 세계 각국의 움직임을 보면 종전과 다른 모습이 나타나고 있어 눈에 띈다. 이번 사건의 주범인 테러범에 대한 세계공동 차원의 대응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고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하고 있다.물론 경제상황이 지금보다 더 악화된다는 전제를 달고 있긴 하지만 추가적인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선진국들이 언제든 지 금리를 내릴 태세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도 이번 사태에 따라 가장 우려되는 유가의 급등을 방지하기 위해 원유공급을 늘리고 있다. 종전에 볼 수 없는 새로운 현상이다.더욱이 이번 테러사건에 따른 피해정도가 엄청난 점을 감안할 때 피해복구에 따른 경기부양 효과가 의외로 클 수도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정책에 대해 무관심을 보였던 미국인들의 애국심도 되살아나고 있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테러범에 대해서는 나중에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전쟁을 불사하고서라도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는 차원이다.이런 상태에서는 미국 정부의 정책의도대로 미국 국민들이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앞으로 미국경제 향방과 관련해 아주 중요한 문제다. 사실 올들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일곱 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하하고 세금감면책을 추진했어도 경기부양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점에 있어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동안 추진된 경기부양 대책의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따라서 이번 사태는 미국경제와 우리경제 입장에서 반드시 암울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특히 최근처럼 경제활동에 있어서 경제심리가 중요시되는 상황에서는 이번 사태는 독처럼 암울하게 받아들일 경우 의외로 충격이 커질 수 있다.그렇다면 이번 사태가 미국을 포함한 세계경제에 약이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앞서 지적한 요인과 과거 이번 사태와 비슷한 사건을 당한 후 세계경제 모습을 살펴보면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이번 사태가 아니었더라면 정보기술(IT)분야의 추가재고 조정요인과 글로벌화의 치명적 약점에 따라 지난해 하반기 이후의 동반하락 국면이 장기화되는 `L`자형 경기모습을 점치는 시각이 많았다. 이 상황에서 이번 사태는 장기불황국면을 차단시키고 세계경기가 조기에 회복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세계 각국들은 올 상반기처럼 금리인하와 대내적인 정부지출을 통해 경기부양을 모색했으나 경제주체들이 각국 경제 앞날에 대해 불확실하게 느낌에 따라 의도했던 효과는 얻지 못하고 불황국면이 장기화됐다.동시에 몇 십년 간에 걸친 장기호황이 지속됨에 따라 대부분 공급과잉 상태를 보이면서 재고적체현상이 심화됐다. 결국 이 상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덤핑수출→산업피해→보호장벽→장기침체’의 악순환이 발생했다.이런 불황의 깊은 고리를 차단시켰던 것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따른 단기적 경기침체 요인에도 불구하고 우선적으로 적체된 과잉상품을 쉽게 처분할 수 있었다. 동시에 군수산업이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부각되면서 장기불황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됐다.여기에 제2차 세계대전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세계경제회복과 인류공영을 목적으로 국제적인 협조분위기가 노출됨에 따라 경제이기주의·보호무역에 따른 장기불안 요인이 해소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국제기구가 탄생했다.60년대 들어서도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이후 베트남 특수로 미국경제 역사상 최장의 호황국면으로 평가받고 있는 ‘케네디-존슨 경기호황 시대’가 열렸다. 90년대 들어서도 걸프전쟁을 통해 80년대 호황과정에서 누적된 일부 산업의 공급과잉 문제가 해결되면서 미국경제가 91년 3월부터 지난해 하반기까지 10년에 걸친 장기호황 국면의 초석이 됐던 것이다.어떻게 보면 이번에도 10년간 장기호황이 누적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의 재고가 누적된 상태다. 군수산업의 경우에도 90년대 들어 국제저유가 지속에 따른 재정사정 악화로 미국 군수물자의 최대 수요처인 중동의 수입이 줄어들어 재고가 누적돼 왔다.이에 따라 군수산업 분야에서 개발된 첨단기술이 민간부문으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미국만이 누렸던 ‘외부경제(External Economy)’를 누릴 수 없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국경제를 둔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인 생산성 둔화가 이런 요인에 기인하는 측면이 많았다.특히 97년 하반기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미국경제의 성장세를 지탱시켰던 신경제도 2000년대 들어서는 재고누적과 주가 고평가로 미국경제의 새로운 불안요인으로 등장했다. 물론 지난해 하반기 이후 신경제 거품이 해소돼 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해소될 것은 아니다.결국 이런 각도에서 보면 이번 사태가 미국경제의 아킬레스건을 해결시켜줄 가능성도 높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미국경제를 `역발상 경제(Reverse Economy)`의 이점을 가장 잘 활용하는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위기를 기회로 잘 활용하는 대표적인 국가다. 바로 이 점이 미국경제의 강점이자 세계제일의 경제대국만이 누릴 수 있는 장점이기도 하다.반면 우리 경제를 보면 위기를 기회요인으로 삼은 적이 비교적 드물다. 우리 경제가 본격적으로 경제개발에 착수한 이래 위기를 당한 때가 크게 보면 이번 침체국면을 포함해서 다섯차례다.‘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는 지혜 필요가장 첫번째 위기는 1972년 사채동결 파동과 73년 제1차 오일쇼크 이후 찾아왔던 불경기다. 그후 79년 제2차 오일쇼크와 군사 쿠데타에 따라 극심한 불황을 경험한 때가 두 번째 찾아온 위험시기였다.이런 위기들이 어떤 요인에 의해 회복됐나. 이번 외환위기를 제외하고 76년 이후 찾아왔던 중동건설 특수, 86년 이내 3년 반 이상 지속된 3저 현상, 93년 이후 다시 찾아온 미니 3저 현상과 같이 우리 경제가 아려울 때마다 우연하게 찾아왔던 대외환경의 호재가 우리 경기가 회복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됐다.오히려 이번 사태와 같은 대외환경의 악재가 나타나면 우리 경제가 가장 큰 충격을 받는다. 이번 테러사태 이후 증권시장을 개장한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의 주가하락폭이 가장 큰 것이 이런 사실을 반증해주는 대표적 사례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지 못하고 미리부터 겁먹는 대표적 국가라 볼 수 있다.이제부터 우리 경제도 ‘역발상 경제’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는 국가가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럴려면 우리처럼 소규모 개방경제 입장에서는 대외환경변화를 완충시킬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다. 동시에 대내적으로는 국민화합 분위기가 조성돼 위기를 기회요인으로 삼으려는 도전정신과 창의력을 길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