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나라 … ‘그들이 잘 사는 이유?’

스위스고부가가치전략으로 ‘국부 창출’스위스 방문객들이 쇼핑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시계다. 스위스제 시계는 세계에서 가장 알아주는 명품이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시계를 보노라면 작은 시계틀 안에서 조그만 부품들이 자기가 맡은 임무를 정확하고 충실하게 해내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이런 시계들은 최고 수억원을 호가한다. 스위스 시계의 명가 스와치그룹이 최근엔 만든 8억원짜리 시계는 16개가 전세계 부호들에게 팔려갔을 정도라고 한다.스위스의 면적(4만1천2백84㎢)은 남한의 3분의1, 인구(7백20만6천명)는 남한의 5분의1에 불과하다. 하지만 스위스의 1인당 GDP는 3만3천4백70달러(2000년기준)로 남한의 3.5배에 달하는 부자나라다. 스위스는 자국산 명품 시계처럼 작지만 엄청난 부를 창출하는 나라인 것이다. 그 힘은 어디서 비롯됐을까.먼저 스위스 연방경제부 데이빗 차관의 얘기를 들어보자.“우리나라는 국토 대부분이 산이어서 소가 많고 우유생산이 증가해 일찍이 식품가공업이 발달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강국을 만드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뭔가를 찾아야 했지요. 그래서 시계, 전기 및 전자, 방직기계, 금융서비스에 대해 지원을 강화하는 등 이들이 세계에 ‘메이드 인 스위스’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가도 1등을 자신할 만큼 노력했습니다.”스위스의 1등 상품전략은 바로 ‘싼 것은 만들지 않는다’는 고부가가치 전략이었다. 예컨대 동화와 같은 ‘하이디 랜드’에서 기술을 선도하는 ‘하이테크 랜드’로의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스위스 정부는 미국과 비슷한 수준인 GDP의 3%를 R&D(기술개발)에 투자했고 기업들도 연구소 기능을 강화하는 등 R&D투자에 집중했다. 이와 함께 수익성이 없는 업종은 다른 나라로 이전시켰다. 스위스는 ‘집중과 선택’을 잘 조화시킨 셈이다. 그 결과 스위스는 세계적인 수준의 공과대학을 두개(취리히, 로잔)씩이나 두었고 노벨상 수상자를 19명이나 배출했으며 1인당 특허건수 세계 1위라는 위업을 달성했다.산업측면에서는 금융산업이 스위스 GDP의 10% 이상을 차지하게 됐고 세계 최첨단 기술을 보유한 제조업은 GDP의 6.1%를 점유하게 됐다. 이중 금융업은 미국 테러사건 이후 입장이 다소 곤란해졌지만 은행의 철저한 비밀계좌제도로 스위스로 돈을 끌어들여 다른 산업을 일으키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스위스의 경쟁력은 무엇보다도 자국기업들의 경쟁력에서 비롯됐다. 자국기업들은 고가제품을 상품화해 세계경쟁력을 갖춰나갔다. 이들 기업이 세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정부의 불간섭, 비규제조치다. 데이빗 차관은 “기업이 알아서 (경영활동을) 해야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온다”며 “국가는 경제적인 지원만 할 뿐”이라고 기업에 대한 정부의 불간섭을 강조했다. 실제 스위스는 국내 대기업에 적용되는 공정거래법이나 증권거래법상의 규제와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스위스의 지방 주정부들이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기업들에 큰 도움이 됐다. 이렌카 크로네(IRENKA KRONE) 수출 및 투자담당자는 “최근엔 26개 주정부들이 하이테크분야의 기업 유치를 위해 세금을 낮춰주는 등 각종 지원을 제시하며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같은 스위스의 토양에서 세계적 기업인 네슬레 스와치 로셰 등이 태동해 국가경제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이끌어왔던 것이다. 이중 유럽 3위의 제약회사 로셰그룹은 창업주의 후손들이 자본의 10%에 해당하는 주식으로 전체의결권의 50.1%를 지배하고 있다.스위스의 고부가가치 전략이 모든 점에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스위스는 이 전략으로 인건비가 몇 배나 비싸졌고 덩달아 물가도 주변국들보다 높다. 하지만 데이빗 차관은 “물가는 비싸지만 그동안 나라의 핵심전략인 ‘싼 것은 안 만든다’는 방침은 변한 게 없다”며 기존 전략을 못박고 있다.핀란드정부&노키아 조화 … ‘선택·집중’ 결실핀란드인들은 자국의 세계적인 정보통신기기업체인 노키아가 일본기업으로 알려져 있는 것에 내심 크게 못마땅해 하고 있다. 노키아는 핀란드 경제를 주도하는 대표적 기업일 뿐 아니라 핀란드인에게 자존심이기 때문이다.핀란드 국토는 한국보다 3배 이상 크지만 인구는 9분의1 가량인 5백17만1천명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1인당 GDP는 2만2천8백80달러로 한국보다 두 배가 넘는다. 이같은 경제강국 핀란드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바로 노키아다.노키아는 지난해 매출 2백80억6천8백만달러(36조여원 상당), 순익 37억9백만달러(4조8천억원 상당)를 기록했다. 노키아는 핀란드 GDP의 24%, 수출은 총수출의 20%, 전체 정보통신산업 매출의 40~50%를 차지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매년 핀란드의 GDP 성장에 2%포인트를 기여하고 있고 민간부문 R&D투자의 45%, 총시장가치의 65%를 점하고 있다. 이와 함께 노키아는 1차 벤더로 3백50여개를 거느리고 있고 이중엔 유럽에서 가장 큰 제조전문회사들만 2백여개에 이른다.노키아가 세계적인 정보통신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90년대 초반 파격에 가까운 구조조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요르마 오릴라 노키아 회장은 지난 92년 취임 후 1위가 아니거나 1위에 오를 가능성이 없는 사업 즉, 고무 제지 펄프 타이어 가전 컴퓨터 등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이동전화단말기와 정보통신사업에 집중했다. 그 결과 노키아는 세계 단말기시장에서 1위(35%점유)를 기록했고 총매출의 3분의2를 단말기 사업에서 올리고 있다. 노키아는 단말기시장을 계속 선점하고자 15개국에 55개의 R&D센터를 두고 있고 전체 직원의 3분의1이 R&D센터에서 근무하게 하고 있다.노키아의 성공요인에는 핀란드 정부의 지원도 절대적이었다. 핀란드 정부는 지난 95년 노키아의 규제완화 요청을 받아들여 각종 규제를 철폐했다. 그리고 같은해 ‘10년간의 기업가정신 함양(Decade of Enterprene-urship)’ 프로그램을 가동해 정부부처 경영자단체 노동계 학계 등이 참가해 기업가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앞서 핀란드 정부는 93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국가산업전략을 수립, 8개의 산업별 클러스터를 선정했고 이중 정보통신 클러스터(산업단지)를 미래의 핵심산업으로 분류해 집중육성했다.노키아는 자체 구조조정 노력과 정부의 정보통신육성정책에 힘입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러면 노키아의 대주주는 누구일까. 놀랍게도 노키아 지분의 89.47%(2000년말 현재)를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다. 국내에선 삼성전자 포철 등 대기업에 외국인 지분이 많은 것에 대해 적잖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핀란드에선 노키아와 같은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핀란드 경제연구소(ETLA) 페카 연구조정관은 “긍정적 요인이 많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90년대 중반까지 노키아에 대한 외국인 지분확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이에 대한 집중 연구결과, 생산확대 선진경영방식 도입 등 이점이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에 대한 문제가 거론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90년대 초반 노키아의 채권단은 스웨덴의 대표기업이자 노키아 모토로라와 함께 3대 휴대폰업체인 에릭슨에게 노키아 인수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는 에릭슨이 거절해 무산됐지만 인수했다면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는 지 모른다.스웨덴시스타 , 세계 2위 첨단밸리로 부상팝그룹 ‘아바’(ABBA), 볼보자동차, 그리고 바이킹으로 잘 알려진 스웨덴은 북유럽에서 가장 많은 인구(8백88만4천명)를 가져 제법 안정적인 시장규모를 지닌 나라다. 그래선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스위스 및 핀란드의 도시들 보다 역동적이라는 인상이 짙게 풍긴다. 스웨덴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곳은 스톡홀름 북부지역에 위치한 시스타 사이언스 파크(Kista Science park)다.이곳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이어 세계 2위이자 유럽최대의 첨단기술단지다. 이곳엔 에릭슨 노키아 컴팩 IBM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7백여개의 첨단회사와 2만8천여명의 직원, 3천3백여명의 학생이 거주하고 있고 3백50여종의 세계 정상급 기술이 단지내 산재해 있다. 특히 이중 GSM 무선통신 기술은 세계최고 수준을 자랑한다.스웨덴은 70년대 초까지 시스타지역을 정부의 군사훈련장으로 사용하다가 스톡홀름시의 ABC(Arbete : 일자리, Bostad : 주거지, Center : 소도심) 원칙에 따라 첨단산업단지로 개발에 들어갔다. 시스타 사이이언스 파크는 스웨덴을 강국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세계적 첨단기지로 만드는 데 주도한 것은 정부가 아닌 에릭슨이었다. 에릭슨이 이곳으로 입주한 후 IBM이 진출했고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에릭슨 및 IBM과 사업관계를 맺고 있는 첨단회사들이 속속 입주하기 시작했다.정부 또한 산학협동을 촉진하기 위해 스웨덴 왕립공과대학과 스톡홀름대학의 정보통신학과를 시스타지역으로 이전했고 88년에는 정보통신대학을 설립했다.시스타산업단지의 앤더스 회장은 “대학에서 양성된 우수한 인력과 대학의 우수한 기술을 기업경영에 직접 활용하는 산학협동 시스템이 잘돼 있어 산업단지가 세계적인 단지로 성공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 10년간 이 단지의 위상이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시스타 산업단지내 도서관은 대학과 기업, 기업과 기업간 중요한 정보교류 센터로 활용되고 있다”며 “이의 중요성을 인식한 세계 유수의 첨단기업들이 속속 진출을 희망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영국 연구소를 시스타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지금도 시스타 산업단지의 첨단화를 이끄는 기업은 역시 에릭슨이다. 단지내 전체 인력중 44%(1만2천명)가 에릭슨 직원인데서 잘 나타난다. 에릭슨은 1876년 설립된 무선통신 및 네트워크장비제조를 주업종으로 하는 통신전문회사다.에릭슨은 전화기 제조업체로 출발, 75년 자동전화교환기 AXE의 성공으로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에릭슨은 올들어 휴대폰시장의 침체로 고전중이다. 1분기의 휴대폰사업 매출이 전년동기 대비 52% 감소했고 5백70만달러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에릭슨은 올 상반기에만 1만4백명을 감원한 데 이어 하반기 1만명을 추가감원하는 뼈아픈 구조조정을 진행 중에 있다. 동시에 일본 소니와 신제품개발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맺고 제2의 전성기를 준비하고 있다.IMD 패밀리 비즈니스 센터가족기업 3대 승계 성공률 ‘7%’국내의 ‘재벌’과 같은 가족기업들은 몇 대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들은 경영효율면에서 일반 공개기업과 비교할 때 어떨까.13년 동안 가족기업 문제를 집중 연구해온 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대학원) 패밀리 비즈니스센터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 최근 이 센터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조사대상 가족기업들 중 경영권이 창업세대에서 2세로 넘어가 성공한 곳은 20%에 지나지 않았고 2세에서 3세로 성공적으로 경영권 승계가 이어진 곳은 7%로 성공확률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패밀리 비즈니스의 요아힘 슈바스(JOACHIM SCHWASS) 교수(사진)는 “가족기업들은 승계과정에서 지배구조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하는 공통과제를 안고 있다”며 “하지만 이들은 경영권 승계시 가족내부의 불화로 대부분 단명하고 만다”고 말했다. 슈바스 교수는 이어 “현대는 세계적인 가족기업들의 전형적인 문제(가족들간 불화)를 겪은 기업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부연 설명했다.경영권 승계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족기업들의 경우 세대가 바뀌면서 기업에 대한 가족들의 통제력이 약해질 뿐 아니라 오너들 스스로도 기업통제에 대한 미련을 과감하게 떨쳐내고 있는 것으로 패밀리 비즈니스 센터측은 분석하고 있다. 특히 2세대는 창업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으면서 한 기업안에서 서로의 역할을 나눠 맡지만 3세대들은 승계과정에서 아예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경영성과면에선 가족기업들이 비가족기업에 비해 다소 나은 것으로 패밀리 비즈니스 센터측은 보고 있다. 그러나 가족기업들의 경우 통상적으로 경영성과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아 제대로 비교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게 센터측 설명이다.슈바스 교수는 “가족기업들이 왜 패밀리 비즈니스를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통해 이들이 심각한 반성과 적절한 해답을 찾도록 도와주고 그렇지 못하면 공개기업으로 방향을 바꾸도록 유도하는 것이 패밀리 비즈니스센터의 주 목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미국 포드사의 경우 창업초기 오너가 경영을 하다 전문경영인에게 맡겼으나 최근 다시 경영권이 오너에게 돌아와 그 과정에 상당한 관심이 모아진다”고 덧붙였다.한편 IMD의 패밀리 비즈니스 센터는 지난 96년부터 3대 이상 가족경영이 유지되고 있는 가족기업들을 대상으로 매년 우수 기업을 선정, 수상하고 있는 데 올해는 4세대 경영을 하고 있는 인도의 한 가족기업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역대수상자는 96년 레고(덴마크), 97년 헤르메(프랑스), 98년 퓌그(스페인), 99년 헨켈(독일), 2000년 제그나(이탈리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