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 자산 전문관리 ‘수익 내겠다’ 앞다퉈 선언 … 은행권 ‘수성’ 맞서 증권·투신업계 ‘대공세’ 나서

‘프라이빗 뱅킹’.이름도 낯선 이 시장이 올해 금융권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대형 증권사와 투신사들은 ‘종합자산관리 전문지점’을 강남 등에 너나없이 도입, 운영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은행들은 ‘PB센터’라는 이름을 선호한다. 사용하는 이름은 다르지만 거액 자산가 고객들의 자산을 전문 관리해 수익을 내겠다는 취지에서는 모두 ‘프라이빗 뱅킹’으로 분류된다.90년대 중반 이후 국내에 일반화한‘프라이빗 뱅킹’은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은행 보험 주식 부동산 세금 등 자산관리 전부문에 걸쳐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급형 금융서비스를 말한다. 금융사마다 대상 고객의 기준은 차이가 있지만 최저 연소득 5천만원 이상, 여유자금 1억원 이상의 부유층이 대상이다.대부분의 금융사는 PB고객만 전담하는 지점을 설치하기도 하고 또 다른 금융사는 기존 영업점에서 거래를 하지만 이런 고객들의 파일만 별도로 관리하는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2005년 2백50조원 시장 예상PB 전담 지점들은 우선 분위기부터 다르다. 내부 인테리어를 고급스럽고 안락하게 치장해두고 편안하게 투자 상담을 한다. 고급 응접 세트, 원목 책상, 독립된 사무 공간 등이 들어서는 순간 ‘아무나 올 수 없는 곳’이라는 느낌을 준다.가장 큰 차이는 이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다. 증권이나 은행권 너나할 것 없이 종합자산관리사(FP) 자격증을 가진 금융컨설턴트들을 배치했다. 때에 따라서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면서 해외 투자상담을 해주는 직원, 자격증을 너덧개씩 가진 직원, 부동산 전문가, 세무사, 법률 상담을 해줄 수 있는 직원까지도 만날 수 있다.이 서비스는 물론 금융사들의 다양한 수익원을 창출을 위한 시도다. 20%의 고객이 수익의 80%를 창출한다는 ‘20 80 법칙’이 은행권에서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지고, 제일은행 알프레드 호리에 행장으로부터 한 수 배운 듯한 시중 은행들은 돈 되는 고객만 노골적으로 대접할 기세다.증권업계 역시 거래 수수료만 갖곤 살아남을 수 없다는 오랜 해결과제를 풀 단초라고 본다. 그래서 마련한 돌파구가 PB 시장 공략이다. “돈 많은 사람들은 항상 있고 이 무주공산은 차지하는 게 임자”라는 생각이 유행인 것이다.최근 보스턴 컨설팅 그룹의 조사에 의하면 국내 PB서비스 가입요건을 10억원으로 볼 때 잠재고객의 자산 규모는 약 1백65조원으로 최소 9% 성장을 통해 2005년 약 2백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세금 납부액을 기준으로 추산한 현재 10억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가구수는 약 5만2천가구. 따라서 2005년 PB시장의 잠재 운용자산 규모는 8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창출되는 이익규모는 3천7백억원이나 된다.더구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해지면서 이같은 큰손 고객의 자산 성장률이 전체 가계 금융 자산 성장률을 앞지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이 컨설팅사는 설문조사에 의해 10억원 이상의 자산 보유자 중 80% 이상이 서비스를 이용할 의사가 있다고 확인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이다.PB 시장 공략 위해 인력 양성 심혈금융사들의 뜨거운 관심은 교육 기관서 먼저 확인된다. 은행 직원 중심의 연수 기관인 금융연수원에는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모두 2백여명이 ‘PB 전문과정’을 이수했다. PB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첫걸음이 인력을 양성해두는 것. 하루 이틀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일단 교육부터 시켜놓고 대비해두자는 심산이다.금융연수원에 처음 PB양성과정이 생긴 것은 올해 3월. 금융연수원 연수운용부 문영상 대리는 “금융사들의 요구가 많아 과정을 만들게 됐다”고 말한다. 국내에는 PB 전문 교육 자체가 전무해 외국 사례 등을 참조했고 이 분야의 선발 주자인 하나은행 등의 도움을 받아 교육 과정을 만들었다. 대한투자신탁은 1백20명이나 교육시켰다.특이한 것은 금융사의 일반 직원들이 맡고 있는 업무에 관계없이 무더기로 이 과정을 이수했다는 점이다. “시장 팽창에 대한 대비 차원인 것 같다”는 게 문대리의 설명이다. 올해는 한 번의 정규과정이 남았는 데 이 과정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늘 ‘다른 물’에서 놀 것만 같았던 증권가와 은행가가 맞닥뜨린 ‘외나무 다리’도 바로 이 PB시장이다. 그간 은행 고객은 보수 안정형 투자자, 투신과 증권 고객은 공격형 투자자로 나눠서 서로 다른 고객을 상대해 왔다. 그러나 PB 시장에선 얘기가 다르다. PB라는 것 자체가 부동산 수익증권 채권 예금 등 가리지 않고 한 사람의 자산을 전부 관리해준다는 개념이기 때문에 ‘네 땅 내 땅’ 구분은 없는 게 당연하다.은행선발은 강화·방어 … 후발은 인재육성 분주국민 주택 합병은행의 시장공략 선언 이후 은행권에 부유층 대상 ‘프라이빗 뱅킹(PB)’ 경쟁이 뜨겁다. 씨티 등 외국계 은행과 하나은행 등 국내 선발주자들은 고객관리서비스 강화를 포함한 수성책 마련을 서두르는 반면 후발주자들은 관련 조직 재정비와 전문가 육성 및 영입계획을 짜느라 분주하다.은행들의 심리적인 위기감을 자극한 것은 국민주택 합병은행장 후보로 선정된 김정태 행장이다. 그는 통합은행장으로 선정되자마자 PB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는 최근 누차 올 은행 순익의 24%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되는 부유층 상대의 PB시장 공략이 합병은행의 전략적 모토라고 말했다. 주택은행 관계자는 “합병은행 출범 후 1차로 서울 시내 10여개 PB센터를 열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최고의 조직과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택은행은 이를 위해 11월께부터 합추위 차원의 청사진을 마련하고 각 증권사 투자상담사와 세무사 변호사 등 유능한 경력자를 대거 영입할 계획이다.은행 중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곳은 하나은행과 씨티은행이다. 이들은 많은 금융사들이 같은 시장 공략에 나서자 ‘방어전’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씨티은행 관계자는 “91년 국내 처음으로 ‘씨티골드’서비스를 선보인 이래 월 예금 평균잔액 1억원 이상의 VIP고객 상당수를 이미 PB고객으로 확보했다”며 “투자설계프로그램(FNA) 시뮬레이션 등 차별적 서비스를 통해 고객기반을 추가로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골프 주치의, 고객자녀 맞선행사, 유학설명회 등 각종 아이디어를 짜내 독특한 고객관리마케팅을 벌이고 있는 하나은행도 후발주자들의 도전을 물리칠 자신이 있다는 입장이다. 하나은행은 중소형 은행의 생존전략으로 일찌감치 거액 소수 고객 틈새시장 개척을 채택해 성공했다. 현재 하나은행의 프라이빗 뱅커들은 1인당 고객 수 1백50~2백여명, 액수로는 PB 1인이 7억원 정도를 책임지고 있는 셈이라고 김희철 PB지원팀장은 밝혔다.PB센터는 하나은행 전체 수익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합병 전 보람은행 때부터 매킨지에 컨설팅을 받아, 6년전부터 자산가 고객을 별도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졌다. 합병 후에도 고객을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었던 건 PB시장의 특성이 PB개인과 자산가들간의 네트워크에 기반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드웨어는 흉내낼 수 있어도 진짜 PB 네트워크는 하루아침에 흉내낼 수 없다”고 하나은행측은 말한다.일찌감치 이 시장을 선점한 하나은행이지만 이미 본사에 있던 ‘PB지원팀’ 외에 PB본부를 최근 발족했다. 한차원 높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필요를 느끼던 차에 다른 금융사들의 도전이 거세지자 본격적으로 조직을 구성했다.본격적인 PB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밖에 대부분의 은행들이 지난해부터 서둘러 거액 고객 관리에 잔뜩 신경을 쓰기 시작하고 있다. 99년부터 이 서비스를 시작한 산업은행은 37개 영업점 중 15곳에 VIP클럽 형태로 PB센터를 설치해놓고 있으며 새로 44명의 프라이빗 뱅커(PB)를 육성중이다. 시중상업은행들에 비해 고객 수가 적기 때문에 오히려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은행 안창우 대리의 설명이다.조흥은행은 최근 BCG(보스톤 컨설팅 그룹)의 컨설팅을 받아 PB 본부 조직을 발족했다. 일단 합류한 기획인원들이 시스템 구축을 끝내는 대로 본격적인 시장 쟁탈전에 뛰어들 계획이다. 이 은행 최길상 팀장은 “PB시장에서의 성패는 우수한 인력을 얼마나 확보하는가에 달려 있다”면서 “우리은행은 외국계 금융기관 경험자, 거액 고소득 자산가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 등의 기준을 세워서 인력을 구하고 있다. 인력 충원을 국내에만 한정하지 않겠다는 원칙도 세웠다”고 말했다. 특히 PB사업 본부장을 외부에서 영입할 계획이다.12만4천계좌 이상의 기업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은행 역시 PB시장 확대 여지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기업 대표와 임원을 타깃으로 설정, 현재 30여개 주요점포에만 설치된 PB창구를 연내에 3백80여개 전 점포로 확대하는 한편 개인영업 부문에 영업의 무게중심을 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