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독주체제 사실상 ‘끝’ … 미국 통상압력 등에 업은 GM과 한판승부 불가피

현대자동차 김동진 총괄사장은 지난 9일부터 14일까지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김사장은 미국과의 통상마찰 해결을 위해 미국 상하원 의원 및 무역대표부 관계자들을 만나 한국정부와 현대자동차의 노력을 설명했다. 그리고 김사장은 조용히 또다른 특수임무를 수행했다.미국 현지 자동차공장 건립을 위한 부지선정을 위해 앨러버머 테네시 등 4개주를 둘러보고 주지사들도 만났다. 이는 지난 10월16일 김뇌명 한국자동차공업협회 회장이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시장 판매가 연간 50만∼60만대를 넘어섰고 통상압력도 심해지는 만큼 현지에 공장을 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발언함으로써 더욱 확실해졌다. 김회장은 현대차의 형제회사인 기아자동차 사장이기 때문이다.경쟁구도현대차가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해 어느 때보다 민감하게 반응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년 1월1일부터 국내시장을 놓고 현대가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이자 미국 빅3 선두업체인 GM과 맞붙어야 할 판인 까닭이다. 물론 현대차가 국내 자동차산업의 대명사나 다름없는 만큼 자국시장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노력일는지 모른다.하지만 자동차전문가들은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GM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정부가 한국정부에 모종의 압력을 가할 지 모른다는 우려에 현대차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 국내자동차 시장은 내년부터 현대 GM 르노의 치열한 3파전이 거의 확정적이다.현대는 지난 98년 기아를 인수했고 르노는 지난해 삼성자동차의 지분 70.1%를 사들였으며 GM은 올해 9월 대우자동차를 인수하기로 하는 양해각서에 사인을 했다. GM은 대우차에 대한 실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인수가 거의 확정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야흐로 국내 자동차시장은 세계 10대 메이커들간의 각축장이 된 셈이다. 90년대 중반까지 국내 자동차업체들의 판이었던 자동차 패권지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경쟁력먼저 국내 자동차 판매시장을 보면 현대가 50%에 가까운 시장을 장악한 가운데 나머지 시장을 4개 회사가 나눠가지고 있다.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자동차 내수판매량은 지난 9월말 현재 1백9만1천7백97대로 집계됐다. 이중 현대가 54만1천27대를 팔아 49.6%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했고 기아는 29만3천4백54대(점유율 26.9%), 대우 12만5천2백97대(11.5%), 쌍용 8만7백39대(7.4%), 르노삼성 5만1천2백4대(4.7%) 순으로 나타났다. 이중 현대차그룹(현대+기아)의 시장 점유율은 76.9%로 아직 내수시장을 장악하고 있다.생산능력도 현대차그룹이 단연 앞선다. 현대차그룹은 현대 2백21만대, 기아 1백15만대 등 모두 3백36만대의 생산능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는 세계 6~7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반면 대우는 92만대, 르노삼성 24만대, 쌍용 21만대로 미약하다. 하지만 문제는 기술력이다. 여기에선 GM이나 르노가 앞서는 게 사실이다. 물론 이는 본토에서의 기술을 말한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현대의 경우 생산대수에 있어 세계경쟁 수준의 50%(2백11만대), 품질은 44%, 디지털 기술은 8%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따라서 이들이 제품력이 뛰어난 자동차를 대우나 르노삼성 라인을 통해 양산에 들어갈 경우 생산능력만으로 이를 방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자동차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대차가 최근 제품력이 있는 자동차를 내놓고 품질불량 제로를 선언하는 등 부산을 떠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전략향후 시장구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이동화 상무는 “르노삼성의 경우 생산능력이 작아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대우의 경우 인수한 GM이 어떤 전략을 펼칠 것이냐에 따라 시장 점유율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결국 GM의 전략에 따라 현대와 르노의 전략이 상당히 달라질 것이란 얘기다. 그동안 국내자동차시장은 현대의 전략에 따라 경쟁업체들이 전략을 수정해가는 형태를 띠었다. 그러나 이젠 GM의 대한국 전략에 따라 현대 등 경쟁업체들이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자동차전문가들은 GM이 대우를 중소형차의 단순 생산기지로 활용하는 것과 기술개발을 통한 아시아 공략기지로 이용하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있다. 이중 GM이 대우를 전자의 경우로 활용한다면 대우의 시장 점유율이 현재보다 약간 웃도는 선에서 그칠 뿐 아니라 현대나 르노를 크게 긴장시키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GM이 대우를 후자의 경우로 대대적인 공격경영을 펼치면 크게 양상이 달라질 것으로 자동차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현대는 물론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는 다임러크라이슬러나 르노삼성자동차의 대주주인 르노가 이를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자동차전문가들은 GM이 대우자동차의 부평공장내 기술개발센터만 인수하고 공장을 인수하지 않은 것을 두고 단순 생산기지로 활용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나 현대는 GM이 대우자동차의 노조를 의식해 페인트 모션을 썼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나름대로 치밀한 전략을 짜고 있어 내년 세기의 자동차전쟁은 벌써부터 흥미를 끈다.세계 자동차산업 재편 시나리오GM 등 5강 구도 속 현대 진입 ‘안간힘’90년대 초반 자동차업계에는 2000년대 세계 10대 메이커 즉, 미국 빅3(GM 포드 크라이슬러), 일본 빅3(토요타 닛산 혼다), 유럽 빅4(벤츠 BMW 폴크스바겐)만이 살아남을 것이란 시나리오가 나돌았다. 실제 2000년대 들어 10개사만 살아 남았다. 단지 10개사 중 두 개사만 바뀌었다. 벤츠와 크라이슬러의 합병(다임러크라이슬러), 르노의 닛산지분 인수(36.8%)로 현대와 푸조가 2000년대 생존명단에 올랐던 것이다. 물론 현대는 90년대 초반 ‘글로벌 톱 10’이라는 생존전략을 짜고 기술개발, 생산 및 판매확대, 재무구조 개선 등에 노력해 결실을 본 것이기도 했다.그러면 2010년엔 몇 개의 자동차회사나 살아 남을 수 있을까.자동차 전문가들 사이에선 6개의 자동차회사가 생존할 것이란 시나리오가 설득력있게 나오고 있다. 그중 5개 즉 GM 포드 토요타 벤츠 르노 등은 별 이변이 없는 한 생존 가능성이 거의 1백%에 가깝다는 게 이들 전문가의 분석이다. 따라서 현대 혼다 BMW 폴크스바겐 푸조 등 5개 자동차메이커들이 남은 티켓 한 장을 두고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때문에 2000년대의 문턱을 넘은 10개 메이커가 모두 살아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동차 전문가들은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세계경기가 최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등으로 장기적으로 얼어붙을 것으로 보여 이 고비가 1차 관문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