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를 치지 말라’. 한국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는 뒤통수를 맞는 일이다. 오죽하면 뒤통수를 자주 때린다는 이유로 최근 지방의 한 고등학생은 친구의 등을 흉기로 찔렀을까. 친구들끼리의 장난이 날카로운 비수가 돼 올 줄은 서로 몰랐을 것이다.이런 일들이 학창시절에 흘러가는 의례쯤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른이 돼서도 이런 일들은 반복된다. 특히 남들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남의 뒤통수를 잘 친다. 이른바 갑의 위치에 서 있는 기업이나 사람 혹은 단체는 을의 위치에 있는 기업이나 사람들에게 횡포를 부린다는 얘기다. 이런 역학관계에선 파트너십이란 없고 상하에 따른 복종만이 있을 뿐이다. 상대방의 이익을 인정해주는 풍토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밥줄 끊어질라 … 중소업체 울며 겨자 먹기사회 전반에서 벌어지는 ‘갑의 횡포’는 약자의 한을 낳고 그 한은 다시 갑의 등에 비수를 꽂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예를 들어보자. 대기업 전자업체와 중소규모의 협력업체가 있다. 대기업은 경비절감을 이유로 협력업체에 제품 단가를 낮출 것을 요구한다. 원가절감을 위해 손쉽게 선택하는 방법이다. 최소한 성의있는 협상도 없이 전화 한 통으로 중소기업체가 생산한 부품의 단가를 낮춘다. 만약 중소기업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협력 관계가 깨진다. 밥줄이 끊기지 않으려면 중소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로 대기업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따른다.그러나 중소기업은 그 가격으로는 도저히 품질을 맞출 수 없다. 자연스럽게 품질이 좋지 않은 제품을 납품하게 되고 결국 대기업이 생산한 제품은 전반적으로 질이 떨어진다. 그러다 보면 대기업은 국내외 경쟁업체와 비교해 품질경쟁력이 떨어지고 대기업의 생존력 또한 저하된다. 같이 망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이런 일들은 비단 기업간에 벌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스포츠 영화 방송가 법조계 등 다양한 곳에서 갑의 횡포가 존재한다. 요즘 스포츠 비즈니스는 구단과 선수, 그리고 팬이 한 마음으로 뛰게 하는 방안을 내놓아야 성공한다. 선진국의 스포츠 마케팅은 셋의 협조를 통해 스타라는 상품을 생산하고 더 많은 관객을 불러 모아 서로 이득을 많이 챙기는 것이 목표다. 이런 이유로 스포츠 마케팅 전문가들은 국내 구단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선수를 정당한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프로야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갑’은 시장경제의 기본적 원칙마저 무시하고 ‘을’은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마저 누리지 못한다.스포츠·연예계·법조계, 갑 횡포 허다영화촬영 현장의 을은 참담할 정도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월 50만원을 받고 밤새 촬영현장을 뛰어 다니는 스태프들이 부지기수고 일당도 받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이들은 이제 조합을 결성해 영화제작사에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강력하게 항의한다. 다행인 것은 젊은 제작자들을 중심으로 제작환경 및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연구조사사업에 착수한 상태라고 한다. 이런 영화계 혁명이 한국 영화발전을 앞당길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법조계에선 지식과 돈, 그리고 힘없이 그저 갑의 합리적이고 공평무사한 처분만을 고대하는 우리 이웃이 영원한 을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자조가 난무한다. 변호사와 판사, 그리고 검사라면 누구든지 기본적으로 갑 자리에 서게 될 기회가 있지만 서민들은 그렇지 못하다. 삼자들의 이익 틈바구니 속에서 서민들은 제대로 된 법적 서비스를 받기 힘들다. 변호사와 판사, 그리고 검사 누구도 자신이 국민에 대해 을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이따금 본인 의지와 정반대로 고개를 숙이지만 그럴 때도 이들의 무의식중에 자신이 갑이라는 생각이 짙게 깔려 있다. 이런 그들 앞에 서민들은 항상 을이다.연예계 역시 탤런트를 생산하는 구조에서 갑과 을은 극명하게 나뉜다. 연예인이 되려는 공급은 넘치는 데 비해 스타는 한정돼 있어 불공정하고 추악한 거래가 발생한다. 스타를 만드는 사람과 스타가 되려는 수많은 사람들 간에 먹이사슬이 형성되는 것이다.비즈니스가 있는 곳에선 갑과 을로 힘의 관계가 나뉜다. 그러나 갑의 위치에 서 있는 사람은 을의 처지를 이해해 줘야 한다. 아무리 자신에게 이익이 많이 남는 거래라도 상대방에게 이익을 나눠주는 거래를 택하는 노련한 경영자의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면 누구라도 상대방에게 ‘한’을 품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힘이 없지만 그 ‘한’이 언젠가는 부메랑이 돼 갑을 ‘코너’에 몰아 넣을 소지도 다분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