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을)걱정할 것 없습니다.(정부가)철저히 검사하고 안전에 만전을 기하니 맘 놓고 드십시오.”지난 10월10일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채널 4의 니혼텔레비전은 다케베 쓰토무 일본 농림수산상의 애절한 호소를 일본 전역에 생중계로 내보냈다. 치바 센다이 등 일본 각지를 아침 일찍부터 연결한 이날 방송에서 다케베 대신은 이어폰을 꽂고 마이크 앞에앉아 장시간 동안 쇠고기를 안심하고 먹어 달라고 수없이 당부했다.그가 만사를 제치고 TV화면에 등장한 것은 오로지 한가지 이유였다. 광우병의 광풍이 몰고 온 충격으로부터 축산농가를 조금이라도 더 보호해 보려는 일념에서였다.다케베 농림수산상의 호소는 그러나 어디까지나 ‘호소’로 끝나고 말았다. 수일 후 사카구치 치카라 후생노동상이 국회 답변에서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증상의 환자가 일본에서도 처음으로 나왔다”고 털어 놓았기 때문이었다.조금씩 쇠고기로 돌아서기 시작했던 일본 소비자들의 마음은 다시 싸늘하게 식어 버리고 쇠고기를 취급하는 음식점은 더 거센 태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일본 외식업체 관계자들은 일본 열도를 덮친 광우병의 충격을 이렇게 단적으로 표현했다. 동시다발 테러가 미국 경제를 대혼란과 침체의 수렁으로 몰아 넣었듯 광우병 역시 그에 못지 않은 피해를 외식업체들에 안겨 줬다는 하소연이다. 외식업체들의 비명이 엄살이 아니라는 것은 나타난 현상 몇가지만 들여다 봐도 단숨에 알 수 있다.최대 피해자인 야키니쿠(구워 먹는 쇠고기 메뉴를 일본식으로 부른 이름) 식당들의 경우 광우병 공포가 본격 확산되기 시작한 지난달 말부터 매출이 연일 곤두박질치고 있다. 기업형 야키니쿠점들의 모임인 일본야키니쿠협회는 조사에 응한 58개 회원사중 44개사의 10월 전반부 매출이 9월 동기보다 절반 이상 줄었다고 밝혔다.야키니쿠식당 모두 풍비박산 ‘울상’타격은 특정업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중저가형 음식점이건 고급 음식점이건 야키니쿠를 파는 곳은 풍비박산이 되다시피했다. 염가형 패밀리 야키니쿠식당으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큐가쿠’는 매출이 약 30%까지 줄자 10월19일부터 갈비 안창살 등 주력 메뉴의 값을 일제히 대폭 내리는 비상카드를 내놓았다. 가격 경쟁력에서 열세인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훨씬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신주쿠 가부키초에서 식도락가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누려 온 M식당은 매출이 70% 이상 날아갔다. 주말이면 발디딜 틈도 없이 붐비며 하루 수십만엔씩 올라갔던 매출이 이달 중순에는 10만엔을 겨우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광우병은 천하무적을 자랑해 온 외식업계 강자들에도 치명타를 날렸다. 햄버거를 65엔에 팔며 서비스 물가 파괴에 앞장서 왔다는 찬사를 받았던 일본 맥도날드도 광풍을 피해 가지 못했다. 파죽지세의 초고속 성장세를 자랑했던 맥도날드는 10월 전반부 매출이 지난해 동기보다 10% 줄어드는 수모를 당했다. 맥도날드는 9월까지만 해도 매출이 지난해 수준을 유지했지만 도쿄에서도 광우병 쇠고기가 나왔다는 보도가 나온 10월12일부터 고객 발길이 뚝 끊어졌다.“10년 동안 근무해 봤지만 이런 경험은 난생 처음입니다. 다른 업체들은 몰라도 맥도날드는 일본 최고의 강자업체인데 말입니다….”맥도날드의 한 종업원은 광우병과 전혀 관련 없는 호주산 쇠고기를 원료로 쓰는 데도 소비자들이 쇠고기라면 무조건 피하고 본다며 후유증이 장기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산지에 관계없이 쇠고기라면 아예 손도 대지 않으려는 소비자들이 급증하자 맥도날드는 부랴부랴 TV광고까지 동원하는 고육책을 내놓았다. ‘맥도날드 햄버거의 쇠고기는 안전하니 염려말고 먹으라’는 하소연인 셈이다.광우병은 일본 외식업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던 쇠고기 덮밥 전쟁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한국에도 진출해 있는 요시노야를 비롯한 2~3개 업체는 지난 여름부터 덮밥 한그릇을 우동보다 싼 2백90엔에 팔며 전면전을 벌여 왔으나 광우병 파동으로 순식간에 소비자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 났다. 이들 업체의 가격파괴 전쟁은 ‘동전 3닢으로 쇠고기 덮밥을 먹고 거스름 돈까지 받을 수 있다’는 유행어를 낳을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끌었던 게 사실이다. 도쿄역 앞의 초염가 덮밥집 ‘나카우’는 점심시간만 되면 샐러리맨들이 20~30명씩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진풍경을 연출했으나 이런 모습이 광우병 이후 자취를 감췄다.요시노야의 야스베 쯔토무 사장은 “가격인하 약발이 먹힌 9월 초만 해도 지난해 동기보다 매출이 62% 늘어났지만 10월 들어서는 증가율이 뚝 떨어졌다”고 뜻밖의 복병에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일본 외식업계 전문가들은 광우병 파동이 외식업계의 약육강식, 적자생존을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광우병 타격이 장기화될 경우 가뜩이나 디플레 고통에 시달려온 자영업 형태의 음식점과 중소업체들은 모두 시장에서 퇴출되고 그 자리를 살아 남은 강자가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대형업체들의 선도로 가격인하 싸움이 불꽃을 튀기고 있는 일본 외식시장은 야키니쿠만도 점포수가 2만개를 넘고 있다. 하지만 연간 매출이 1천억엔(약 1조1천억원)을 넘는 외식기업은 11개사에 불과할 정도로 외형과 자금력이 튼튼한 회사는 그 수가 한정돼 있다. 일본 외식업계 전체 1위인 맥도날드가 지난 한햇 동안 4천3백억엔의 매출을 올렸지만 2위 스카이락이 2천4백억엔, 3위 홋카홋카데이가 1천7백70억엔에 그칠 정도로 격차는 크게 벌어지고 있다. 또 기업형 외식업체라 해도 연간 매출이 1백억엔을 넘지 못하는 중소 규모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가격 싸움에서 힘이 달리는 업체들을 중심으로 광우병 파동에 쓰러지는 외식기업이 속출할 경우 이는 강자에 흡수되고 자연스럽게 업계 판도 재편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이들은 판도 변화의 선두 주자로 지난 7월 기업공개를 통해 5백억엔의 신규 자금을 조달한 맥도날드를 지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맥도날드의 상징으로 버티고 있는 후지타 덴 사장이 햄버거 사업 하나에만 만족할 리가 없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맥도날드가 타기업의 흡수, 합병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하지만 한국인 외식업 관계자들은 이번 광우병 파동이 몰고 온 충격 중에서도 한국 음식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이로 인한 생계 위협을 첫 손가락에 꼽고 있다. 일본인들의 뇌리 속에 ‘야키니쿠는 한국 음식, 한국 음식하면 야키니쿠’라는 등식이 박혀 있는 판에 자칫 광우병 사태가 전체 한국 음식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몰고 올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광우병 사태로 한국 식당도 피해 막대재일 교포뿐 아니라 80년대 이후 일본에 건너온 한국인들이 생계 유지의 주요 수단으로 삼고 있는 야키니쿠는 최근 수년간 코리아 붐이 확산되면서 짭짤한 재미를 누려 왔다.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야키니쿠가 가장 먹고 싶은 음식 중 하나로 자리잡은 것은 물론 TV 라디오 등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한국 야키니쿠와 관련된 기사, 광고가 홍수처럼 쏟아졌다.저마다 냉가슴을 앓고 있지만 광우병 파동이 불거진 후 한국인들의 야키니쿠 식당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또 야키니쿠가 기피 대상으로 부각되면서 아무 관련 없는 다른 한국 음식들도 억울하게 푸대접을 받고 있다. 도쿄의 한 대형음식점 ‘J’ 식당 종업원 정모씨는 “한국 음식하면 우선 야키니쿠를 연상하는 데다 아예 발을 끊어 버리니 다른 메뉴 매출도 형편없이 줄었다”고 털어놓고 있다.광우병 사태는 사카구치 후생상과 다케베 농림수산상이 10월18일 합동 기자회견을 갖고 연간 1백30만두에 달하는 식육 쇠고기를 앞으로는 일일이 검사해 출하시키겠다고 발표한 후 불안이 다소 가라앉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 발병 원인으로 지목돼온 눈 내장 일부와 척추 등은 소각 폐기하도록 일본 정부가 지시를 내리자 시민들의 공포와 불신도 수그러들기 시작했다.그러나 일본 언론은 소비자들의 신뢰가 회복되고 야키니쿠 식당이 다시 붐비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식품안전을 강조하며 ‘청결’에 특히 강한 자부심을 가져온 일본인들의 감정도 크게 상처를 입었다고 지적, 파동이 진정되더라도 후유증은 이래 저래 오래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