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미국이 테러와 군사보복 조치에 따른 불안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증시를 비롯한 금융시장이 테러 사태 이전 상황으로 빠르게 정상을 찾아감에 따라 본격적으로 자국의 이익 챙기기에 나서고 있다.첫 움직임으로 지난 10월23일 미국의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자국의 통상법 201조를 적용해 한국산 철강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했다. 올들어 반도체 자동차에 이어 우리 주력제품에 대한 세번째 강력한 수입제한 조치인 셈이다.참고적으로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서는 세계 각국간에 놓여 있는 상품과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약하는 관세, 각종 무역장벽을 해소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렇지만 어떤 국가가 생산비 밑으로 상품을 덤핑수출하거나 단기간에 외국제품의 수입이 급증해 자국산업에 심각한 피해가 우려될 경우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할 수 있는 합법적인 근거가 마련돼 있다.미 통상법 201조에 따르면 이번에 긴급수입제한 조치를 계기로 앞으로 미국내 관련 철강업체를 대상으로 공청회 등을 거쳐 내년 2월까지 이번 조치를 최종적으로 확정하게 된다. 물론 최종판결되기까지 잠정기간 동안에도 이번 긴급수입제한 조치에 따라 국내 철강업체는 제재를 받게 된다.국내 철강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로 우리의 대 미국 철강수출이 약 40% 정도 격감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더욱이 이번 미국의 조치를 계기로 유럽연합(EU), 중국 등 여타 국가에서도 국내 철강제품에 대해 수입제재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가뜩이나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이런 움직임은 상당히 우려된다고 볼 수 있다.미국 철강업계 파산보호 신청 잇달아지난 9월11일 미 테러와 군사보복조치에 따라 그 어느 때보다 세계 각국간의 협력과 공조체제가 중요시되는 때에 이처럼 미국이 긴급히 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한 것은 최근 들어 베들레헴 스틸 등을 비롯한 미국의 철강업계들이 잇달아 파산보호 신청을 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결국 국내 철강업계가 미국 철강업체의 파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여부와 관계없이 미국 철강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부시 행정부는 최근 들어 미국시장에서 단기간에 가장 빨리 시장점유율(Market Share)이 올라가고 있는 국내 철강업체에 대해 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더욱이 테러사태와 군사적 보복조치 이후 미국 국민들의 애국심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미 하원에서 전쟁채권(War Bonds) 발행이 승인된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자국산업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는 것도 이번 조치에 우회적으로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물론 우리측 요인도 있다. 그 중에서 갈수록 우리 수출이 특정지역이나 특정제품에 몰리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는 점이다. 특히 미국 수출의 경우 반도체 자동차 철강제품에 대한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결국 미국 입장에서는 이들 제품의 수입급증으로 관련 업계의 피해가 우려됨에 따라 올들어 이들 업종들이 잇달아 미국으로부터 수입제한 조치를 당했다고 볼 수 있다.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결론적으로 미국의 통상압력은 갈수록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부시 행정부는 전통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중시하고 미국의 힘을 과시하는 방향으로 대외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이런 결론을 쉽게 예상해 볼 수 있다. 특히 미국의 경기침체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더욱이 부시 행정부는 우리의 대미국 수출주력 업종과 경쟁관계에 있는 전자 자동차 철강업체로부터 정치자금 등 적극적인 후원을 받고 있어서 앞으로 미국의 통상압력이 강화될 경우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나라가 어렵게 되지 않을까 예상된다.‘야누스 얼굴’ 대적할 통상전문인력 시급동시에 올해 초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주요 교역국에 대한 일방적 통상조치에 대해 WTO와 같은 다자채널이 제동을 걸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난 모습을 보면 미국은 이런 제재조치에 아랑곳하지 않고 통상압력을 강행해 오고 있는 상태다. 한편으로 미국이 WTO와 같은 다자채널을 중시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쌍무적인 통상수단을 더 선호하는 야누스적인 얼굴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우리 입장에서도 수출지역의 다변화와 수출업종의 다양화를 외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미국을 위주로 반도체 자동차 철강제품의 수출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따라서 당분간 미국의 통상압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미국의 이런 제재조치에 편승해서 여타 국가들이 동조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이번에 미국의 긴급수입제한 조치가 발동된 이후 우리 정부의 입장을 보면 미국과의 쌍무채널과 WTO와 같은 다자체널을 모두 활용해 적극 대처해 나간다는 자세다. 일단 국제적인 분위기도 이번 국내 철강제품에 대한 미국의 긴급수입제한 조치가 WTO규범에 위배된 것이라고 세계무역기구내에 설치된 분쟁해결기구(WTO-DSB)가 판정을 내림에 따라 좋은 상황이다.문제는 과거에도 이번 조치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똑같은 방법으로 대응해 나간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결과를 놓고 본다면 미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결국 미국을 비롯한 통상문제는 문제가 발생한 후 사후적·대증적으로 처리하는 것보다는 사전적 대응이 어느 정책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단기간에 성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설명회나 과거의 신사유람단 같은 것을 통해 우리 경제실상을 꾸준히 알리고 일본처럼 미국의 로비스트나 압력단체를 섭외해 미국내 우리 입장을 동조하는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관련업계의 여론에 의해 주도되기 때문이다.우리 내부적으로도 수출이 특정지역이나 특정제품에 몰리는 현상을 방지하고 통상전담기구의 기능을 강조하면서 통상전문인력을 키워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