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 오른 황당한 질문도 진지하게 답해 … 돈 한푼 안들이고 회사PR 대성공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선영아 사랑해’. 뭇 사람의 관심을 끌었던 한 인터넷 사이트의 마케팅 전략이었다. 닷컴과 벤처 열풍이 전국을 휩쓸던 99년에는 이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현금을 나눠주는 등 기업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한 갖가지 묘안들이 동원되곤 했다.그런데 요즘 인터넷 콘텐츠 기획자들과 마케팅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선영아 사랑해’에 필적하는 히트작이 나왔다는 얘기가 회자된다. 바로 해충방제 서비스회사 세스코 홈페이지의 게시판이다. 일명 ‘세스코 유머’라 불린다. 회사 게시판에 올라온 얼토당토 않은 질문에 운영자가 전문지식을 동원, 성실히 답변하자 이게 순식간에 네티즌들 사이에 퍼져나간 것.(박스 참조) 수많은 사이트 게시판에 연거푸 복제돼 오르면서 대형 포털 사이트에 세스코 팬클럽이 결성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예상치 못한 이같은 열풍에 힘입어 세스코는 잠재 고객인 신세대들 사이에 회사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키고 우호적인 이미지까지 심어줄 수 있었다. 더구나 한 푼도 들지 않았다.당사자들도 예측하지 못했다는 이같은 열풍은 ‘엽기’와 ‘유머’를 좋아하는 인터넷 사용자들의 성향과 잘 맞아떨어지는 운도 작용했고 급속도로 복제돼 나가는 인터넷의 속성을 탄 결과다. 그러나 알고 보면 ‘비결’은 더 깊은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세스코는 전우방제에서 97년 이름을 바꾼 회사다. 방제서비스 부문과 제약산업 부문으로 각각 나뉘어 있다. 2000년부터 시작한 TV광고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도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나 개인보다는 호텔 대형빌딩 백화점 병원 공장 등의 환경관리로 인정받은 회사다. 천여명의 방제기술자와 서비스차량 5백여대를 갖추고 있다.성공적으로 방제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96년경 대형사로 전환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국내에서는 청소 대행업과 같은 ‘사람 서비스’ 업종에서 체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한 회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경비보안 회사인 세콤 정도가 유일했다.이 무렵 전략 기획을 맡은 전찬혁(34) 상무는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매뉴얼과 철저한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생각, 시스템 구축에 매달렸다. 10만여가지의 해충 방제 서비스를 매뉴얼화 하고 업무 흐름을 중앙에서 통합 관리하는 전산 시스템을 만들어 나갔다. 이 시스템에만 30억원이 들었다. 이같은 작업을 하는 데 5년 가까이 걸렸고 그동안 회장으로부터 ‘미친 짓’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그 결과 “지난달 신라호텔 어느 식당 몇 번 가스레인지 옆에서 바퀴벌레가 몇 마리 발견됐다”는 것까지 데이터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이를 완료하고 나서는 직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사내 문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세스코의 서비스맨들이 ‘쥐잡고 벌레잡는 사람’으로 취급받지 않고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한 벌에 30만원이나 하는 유니폼과 차량을 만들고 기업 규모에 걸맞지 않게 최고의 돈을 들여 CI 제작자에 ‘세스코’라는 CI를 제작케한 것도 이같은 노력의 일부였다.5년 걸려 매뉴얼화 성공 … 방제시장 자리매김이렇게 하고 났더니 매뉴얼에 없는 예외상황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서비스맨들이 서비스하러 가는 도중 길을 묻는 아기엄마를 태워다 준 것. 이 경우 시간 지연이 발생하고, 하루 할당 서비스량을 채우지 못하게 될 수도 있어 센터에서 통제하는 시스템이 어긋나게 된다. 이같은 ‘예외상황’에 대해 관리자들은 이를 매뉴얼에 포함할 것인지 아닌지를 토론에 부쳤다. 결과는 ‘매뉴얼에 수용’. ‘직접 고객인 음식점 사장이나 호텔 총무팀 계약자만이 우리 고객이 아니다’라는 의미에서였다.전상무는 화제가 된 인터넷 게시판 또한 이같은 정책이 자연스레 드러나게 된 결과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시스템 구축 작업 중에는 ‘고객이 회사를 접해, 회사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하게 되는 모든 접점’에 대한 분류도 포함돼 있었다. 이 분류를 통해 각각의 상황에 회사에 대해 가장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응대 방법 또한 매뉴얼로 체계화한 것이다.홈페이지 게시판은 이렇게 분류된 1백87가지 접점 중 하나였다. 이 접점에서 ‘엉뚱한 질문이 들어온다’는 또하나의 ‘예외상황’에 부딪치자 ‘어떤 경우에도 고객의 질문을 무시하지 않는다’와 ‘성실히 답하라’는 원칙으로 대응하기로 했다는 것이다.그러자 세스코 직원 중 누구도 예상치 못한 좋은 결과가 왔다. 이 회사 손은석 마케팅팀장은 “게시판에 답변을 올리면서도 한번도 이게 유머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덩달아 유명세를 타게 된 게시판 답변의 주인공들도 언론에 나서기를 반기지 않았고 그들을 스타로 만드는 것도 회사의 방침과 어긋난다고 했다. “1백87가지 고객 접점이 있다고 했듯이 고객을 만나는 서비스맨들, 고객센터 직원 등 회사 이미지를 위해 애쓰는 동료가 많은 데 게시판 답변자만 과도한 주목을 받는 것은 옳지 않다”는 설명이었다.세스코 홈페이지 게시판 …‘세스코 유머’ 대히트질문: 아는 사람이 오뎅국물에서 하얗게 탈색된 바퀴벌레를 봤다고 합니다. 바퀴벌레 삶은 물을 먹으면 멀쩡한지요? 그리고 전부터 해보고 싶었는 데 바퀴벌레를 삶으면 정말 표백이 되는 겁니까?답변: 안녕하십니까? 세스코입니다. 문의 메일이 많아 답변이 늦은 점 죄송합니다.고객님의 질문대로 바퀴벌레 삶은 물을 먹으면 어떨까요?바퀴에는 1백여가지의 균이 있습니다만 삶아 버리면 균의 대부분이 죽기 때문에 육체건강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단, 정신건강에 미치는 피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바퀴가 하얗게 탈색된 모습으로 눈에 띄는 경우는 두가지입니다.첫 번째 바퀴가 알에서 부화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두 번째 유충에서 성충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바퀴의 종에 따라 5~13회 정도의 탈피과정을 거치는 데 탈피 직후의 모습이 하얗게 보입니다. 아무래도 오뎅국물에서 나온 것은 바로 이 단계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그리고 삶는 방법에 의한 바퀴의 표백은 가능할까요? 바퀴의 껍질은 빨래와 달라서 삶는다고 표백이 되지는 않습니다. 꼭 표백이 필요하다면 화공약품에 의한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중략)인터뷰전찬혁 상무‘해충없는 곳’ 이미지 전환 성공세스코의 전신인 전우방제는 ‘쥐박사’로 유명한 전순표 회장이 창립한 회사다. 이중 창업자의 장남인 전찬민 전무가 제약부문을, 차남 전찬혁 상무가 방제 서비스 부문을 맡고 있다. 전상무는 평사원으로 입사, 직접 현장에서 그야말로 ‘쥐 잡고 바퀴벌레 잡는’ 일부터 시작해 영업 기획 연구소 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를 거쳤다.그는 현재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세스코의 이미지를 기획한 장본인이다. 회사 전략 수립과 그에 따른 마케팅 방향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데 시간당 수백만원씩 받고 기업체에서 강연을 하는 스타 강사들 못지 않게 논리가 정연하고 말솜씨가 뛰어났다. 알고 보니 세스코 직원 교육을 직접 맡고 있어 수년전부터 직원들과 수없는 대화를 나누고 강의도 많이 해 왔다고. 최근 대기업 삼성에서는 ‘고객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원칙을 전 직원에게 성공적으로 체화시킨 그를 강사로 ‘모셔가기도’ 했다. “전에는 사람들이 세스코라면 바퀴벌레를 떠올렸다. 그러나 지금은 ‘해충없이 깨끗한 곳’이라는 쪽으로 이미지가 바뀌어가는 것이 가장 성공적”이라는 전상무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면서 미국 시장 진출 계획을 밝히는 등 강한 의지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