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원대 스타 되면 갑을 관계 역전 … 방송사 “사명감 가진 PD 많다” 강조
지난 7월 한국연예제작협회 소속 연예인들이 모 방송사가 "연예인은 노예"라고 표현한 프로그램을 방영한 것과 관련. 기자 회견을 갖고 출연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연예인 캐스팅 과정에서 발생되는 금품수수 등의 병폐는 이젠 공공연한 비밀이다.”99년 있었던 연예인들의 집단 출연거부 파문 때 한국방송연예인노동조합의 한 관계자가 한 말이다.전직 방송 PD 출신인 김모씨는 “인기 드라마에서 극중 이야기 구성과 무관하게 갑자기 조연급 탤런트의 대사가 많아지거나 반대로 사망한 것으로 나오는 경우라면 한 번쯤 제작진과의 ‘개인적 관계’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귀띔한다. 또 1~2회 정도의 단발로 끝나는 특집드라마의 경우 별로 알려지지 않은 배우가 주연을 맡는 파격적인 캐스팅도 다는 아니겠지만 커넥션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그의 얘기다.물론 이런 커넥션은 연예인 개인이 ‘스타’가 되려는 욕망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이들을 관리하는 매니지먼트사들의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노력이 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김씨는 설명한다.캐스팅 위한 커넥션 가능성도방송사는 공공재산인 전파의 송출과 편성에 그쳐야 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생산 유통 분배까지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때문에 연예인들과 매니지먼트사들은 어디까지나 ‘저자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한국방송연예인노동조합측이 “‘방송사나 연출자는 상전, 연예인은 노예’라는 잘못된 관행과 인식이 굳어져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가수들의 경우도 탤런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기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공연하는 기회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한 10대 가수 전문 기획사의 관계자는 “순위권 안에 드는 몇몇 인기곡을 제외하곤 대부분 사전에 제작진과 조율을 해 놓아야 한다”고 말한다.방송을 타기 전 라디오 가요프로그램에 신곡을 발표할 때도 마찬가지다. 새로 음반이 나왔다 하면 해당 기획사의 마케팅 담당자들이 라디오 가요프로그램 PD들을 만나기 위해 앨범을 들고 방송국에서 살다시피 하는 건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모 라디오 방송국에서 만난 음반기획사 직원은 “곡이 아무리 좋아도 공짜로 틀어주기를 기대하긴 거의 불가능해요. 우리끼리 얘기지만 한 번 틀어줄 때마다 적게는 수만원에서 많게는 수십만원 정도의 ‘신청료’를 꽂아 주는 게 관행이죠.”여기서 만난 한 구성작가는 “신곡을 선정하는 건 어디까지나 나름대로의 심사를 거치는 것이지 금품수수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설령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마케팅 차원에서 직원들이 자청해서 하는 것을 마치 방송사측에서 횡포를 부리는 것으로 확대 해석할 순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어쨌든 음반기획사 입장에선 라디오 전파를 타지 않고는 곡을 띄울 다른 방법이 없는 까닭에 경쟁적으로 매달리는 입장인 것만은 사실이다.문제는 가수 1명당 이런 커미션으로 나가는 돈의 액수가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이는 결국 가수 본인이 그 부담을 떠 안을 수밖에 없다. 한 인기가수는 “방송 출연보다 훨씬 더 많은 횟수의 업소 공연(밤무대)을 치러야 한다”며 “여기서 얻은 출연료의 상당 부분이 로비 활동에 쓰이는 것으로 안다”고 하소연했다.결국 방송사 기획사 가수로 이어지는 ‘갑과 을의 관계’가 원만하게 유지돼야만 그나마 음반이 빛을 볼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연예인노조 관계자는 “그동안 연예인들의 처우 문제는 직업적 특수성으로 인해 고려되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며 “몇몇 스타를 제외한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방송사 관계자는 “PD들 전체가 매도당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 연출자들도 많다”며 “성실하고 방송에 대한 사명감을 가진 훌륭한 PD들이 절대 다수”라고 강조했다.이 관계자는 또 “정작 연예인이 스타가 되면 갑과 을이 바뀌는 것 아니냐”며 “일방적으로 방송사측이 우월적 지위를 가졌다고는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공중파 방송뿐만 아니라 케이블 방송의 경우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역시 기획사가 불리하기는 마찬가지다. 모 음악채널의 경우 자사에서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것을 기획사측에 종용한다는 것이다.협찬금 가로채는 사례까지모 음반기획사 사장은 “뮤직비디오는 공중파보다는 오히려 케이블 채널이 전파력이 뛰어나다”며 “전문 뮤직비디오 기획사에서 제작한 작품이 있어도 추가로 해당 방송채널에서 제작해야만 틀어준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제작시 기업체로부터 받은 협찬금도 채널측에서 고스란히 가로채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고 덧붙였다.방송사들이 고압적(?) 자세를 취하는 대상은 비단 연예인이나 기획사뿐이 아니다. 수년전부터 그 비중이 계속 늘고 있는 프로그램 외주 제작업체들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권력을 휘두른다.독립프로덕션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방송사쪽에서 제작을 의뢰해오는 것보다 거꾸로 프로덕션에서 작품을 만들어 평가를 받는 경우가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송사 입장에선 올라오는 작품들 중 좋은 것을 골라 송출만 하면 되는 식이다.방송사 PD출신으로 독립프로덕션을 운영하는 박모 사장은 “방송사측에서 1개의 프로그램 제작을 의뢰해 올 경우에도 보통 3~4개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오라고 주문한다”면서 “2~3개는 그대로 사장될 게 뻔한 데도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해야 하고 그나마 그 가운데 1개라도 채택이 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보상도 못 받고 회사 문을 닫아야 한다”고 푸념했다. 더구나 비용이 많이 들고 촬영에 위험요소가 많은 프로그램일수록 외주제작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는 게 그의 얘기다. 그러나 당장 손실이 있을 걸 알면서도 거래선을 유지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게 이들 독립프로덕션들의 비애다.방송사에서 임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스태프, 작가들도 할 말이 많다. 한 방송사 프리랜서 FD로 일하는 오씨는 “박봉과 넘쳐나는 잔업무에 시달리면서도 개편 때마다 ‘퇴출’당할까 가슴 졸이는 것도 이젠 만성이 됐다”고 털어놨다.다큐멘터리 제작사, 프로덕션 연합 결성영세성 벗고 ‘독립’ 프로덕션 탈바꿈방송사의 외주 비율이 커짐에 따라 독립프로덕션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엔 위성방송 출범, 케이블 채널 확대 등 방송 환경의 변화도 프로덕션의 증가를 부추기고 있다.앞으로 방송사는 송출과 보도 편성 기능만 담당하고 제작부서는 모두 외주시스템으로 가는 큰 흐름엔 변함이 없다는 게 방송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전망이다.그러나 방송 결정권이 여전히 방송사에 있어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야 하고 장비나 작업공간 등 물리적인 환경이 열악해 프로덕션은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영세성과 방송사의 하청 업체 처지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이에 대해 앞으로 진정한 ‘독립’ 프로덕션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프로덕션이 영세성을 극복하고 경영에서나 프로그램에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들이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구성 다큐멘터리 제작사 40여개가 뭉쳐 프로덕션 연합을 결성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은 방송사의 불공정한 계약관행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고 독자적으로 위성방송 채널사업에 진출할 의지도 보이고 있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