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규약 개선책 마련 시급 … 파트너 인정해야 상생 가능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선수협의회는 야구선수들의 대표기구로 자리잡았다.사진은 선수협의회 기자회견.2000년 1월22일 새벽 1시20분. 한국프로야구 출범 18년만에 선수협의회(선수협)가 탄생했다. 그러나 불과 6시간 뒤 KBO(한국야구위원회)이사회는 “선수협에 가입한 선수 전원을 방출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박용오 KBO총재는 “선수회가 생기는 날 우리는 프로야구를 그만둘 것”이라고 협박해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유신독재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한판의 ‘코미디’가 펼쳐진 지 21개월. 선수협은 프로야구선수들의 대표기구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초창기 선수협의 핵심 멤버들은 저마다 우여곡절을 겪었다. 두산 강병규는 은퇴한 뒤 연예계에 데뷔했고 해태 양준혁은 LG로 이적했다. 1기 선수협의 회장이었던 송진우는 1선에서 물러났으며 소신파로 통했던 두산 심정수와 롯데 마해영도 보복성 트레이드를 당해 각각 현대와 삼성으로 옮겼다.선수들의 도전과 KBO의 응징은 한국프로야구사에 아픈 상처를 남겼다. 아무리 중요한 선수라 해도 ‘항명’을 용서하지 않는 것이 한국프로야구 20년 역사의 불문율이었다. 지난 88년엔 롯데의 영웅 최동원이 선수회를 추진했다가 삼성으로 트레이드 됐고 97년엔 LG의 에이스 이상훈이 선수노조를 계획했다가 일본으로 떠나야 했다.그렇다면 왜 프로야구 선수들은 불이익을 무릅쓰고 끊임없이 KBO의 권위에 도전해온 것일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불합리한 프로야구 규약일 것이다. 올 2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시정명령한 ‘야구선수계약서 및 야구 규약상 불공정약관조항’을 중심으로 한국프로야구 선수들의 현주소에 접근해보자(KBO는 공정위의 결정에 반발해 이의신청을 냈지만 기각됐고, 현재 행정소송 여부를 검토중이다).먼저 트레이드 제도. 야구규약 제86조 및 제87조에 따르면 구단은 계약한 선수를 언제든지 타 구단에 양도할 수 있으며 선수는 이런 양도조건을 계약시 사전 합의하게 돼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구단이 선수의 의사와 관계없이 불리한 거래조건을 설정함으로써 선수들의 사업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선수 의사 관계없이 트레이드 ‘부당’참고로 미국은 메이저리그에서 10년 이상 활동하고 최근 5년간 한 구단에 소속된 선수의 경우 서면동의 없이 타 구단으로 양도할 수 없게 돼 있다. 또한 메이저리그에서 5년 이상 활동한 선수는 선수의 서면동의 없이 마이너리그 구단에 양도할 수 없다. 이것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규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반면 한국에서는 구단이 전권을 쥐고 있다. 지난 99년 삼성에서 타격왕을 세 번이나 차지한 양준혁은 해태 임창용과 맞트레이드를 거부한 일이 있다. 고향팀에서 뛰기 위해 프로입단까지 뒤로 미뤘던 그였기에 삼성에 대한 배신감은 컸다. 하지만 “해태로 가느니 차라리 해외진출을 모색하겠다”던 그도 결국 구단의 방침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양준혁의 경우처럼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구단이 마음대로 선수를 사고 파는 것이 관례다. 그래서 협상이 체결되기 직전까지 선수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92년 삼성에 입단해 다섯 번이나 팀을 옮긴 동봉철은 단 한번도 사전에 트레이드 사실을 전해듣지 못했다.다음으로 자유계약제도(FA제도). 야구규약 제164조에 의하면 선수는 자유계약선수가 되기 위해서 10회 이상의 정규시즌을 소화해야 한다. 부상이나 군복무 기간 등을 감안할 때 최소 13년을 뛰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대학을 졸업한 선수의 경우 서른 여섯 살이 돼야만 FA 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이에 대해 공정위는 자유계약선수 요건이 너무 엄격해 선수들의 구단선택권 및 사업활동을 부당하게 억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FA 자격요건이 미국 6년, 일본 9년인 데 비해, 한국의 10년은 너무 길다고 판단한 셈이다(KBO이사회는 2001년 9월 FA요건을 9년으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FA제도 시행 첫해인 지난 99년, FA시장에서는 돈 공세를 편 삼성만이 혜택을 누렸다. 부자구단 삼성은 해태의 이강철과 LG의 김동수를 끌어들였지만 가난한 구단들은 군침만 흘려야 했다. 이것은 소속 구단에서 받았던 연봉에 50%를 더한 금액의 2백%를 주고 ‘보류선수’ 이외의 선수 1명을 추가로 양도해야만 FA선수를 데려올 수 있는 ‘독소조항’ 때문이었다.대면계약제도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야구규약 제30조는 구단임원 또는 KBO 사무처에 등록된 구단직원과 선수가 직접 계약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데 이때 선수가 대리인을 내세우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구단측의 대리인을 인정하면서 선수의 대리인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불리한 조건이라고 못박았다.미국, 구단과 선수간 중개 에이전트 발달미국에서는 구단과 선수간의 중개기능을 맡는 에이전트 제도가 발달돼 있고 일본프로야구도 최근 ‘대리인을 변호사로 제한하고 대리인이 2명 이상의 선수를 대리할 수 없다’는 조건하에 대리인 교섭권을 잠정 승인한 상태다. ‘코리아특급’ 박찬호(LA 다저스)가 연봉계약 등을 에이전트에게 맡겨놓고 야구에만 매달리는 것과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이 구단 관계자와 마주 앉아 신경전을 펼치는 것은 분명 야구 수준의 차이를 보여주는실례일 것이다.이밖에도 한국프로야구에는 선수들의 원성을 사는 조항들이 많다. 구단의 일방적인 선수 지명권도 그중 하나. 구단은 매년 연고지역 출신 선수를 1명씩 우선 지명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여기서 ‘선택된’ 선수는 해당 구단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사실상 노비문서나 다를 바가 없었던 셈이다. 지난 95년 프로야구판을 뒤흔든 ‘임선동 사건’은 그 극명한 사례다.임선동은 고교 시절부터 촉망받던 스타였다. 고교 성적표만 놓고 따지면 동기생인 박찬호와 조성민(요미우리 자이언츠)보다도 우세했다. 임선동은 휘문고 시절 LG의 지명을 받았지만 프로 입단을 포기하고 연세대에 진학했다. 4년 뒤 LG는 지명권을 행사했고 일본진출을 노린 임선동은 “구단이 일방적으로 지명하고 해외진출을 막는 것은 불법”이라며 1년 동안 법정투쟁을 벌였다. 결국 임선동은 ‘LG입단, 2년 뒤 이적’에 합의한 뒤 LG 유니폼을 입었고 2년이 지나자 현대로 옮겼다.임선동 파문 이후 우선지명 선수의 교섭권 보유기간이 2년으로 단축되는 소기의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한창 물이 오른 선수에게 2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직까지도 개선의 여지가 남아 있는 셈이다.스포츠를 경제학적으로 풀어보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온다. 구단은 경기장과 장비를 투입하고 선수들은 노동을 제공한다. 노동을 통해 생산된 상품(경기)은 팬들에게 돈을 받고 팔린다. 이때 팔리는 것은 입장권뿐만이 아니다. 스타가 만들어내는 부가가치 전체가 포함된다.전통적인 개념에서 구단은 선수들을 고용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한 것이 된다. 하지만 요즘의 기업활동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구단과 선수, 선수와 팬이 동업자 의식을 갖고 뛰어야만 상품가치가 높아진다는 게 선진 마케팅 개념이다. 결국 구단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선수를 정당한 파트너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하지만 한국프로야구의 현실은 어떠한가. ‘갑’은 시장경제의 기본적 원칙마저 무시하고, ‘을’은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마저 누리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