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인센티브는 월급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억대연봉’. 이제는 화젯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로 흔해진 얘기지만 적어도 국내 시중은행에선 사정이 다르다. 지난해부터 성과급제가 도입되긴 했으나 사실상 월급에 가까운 형편이고 실제 인센티브는 극소수의 은행원들만이 대상이다. 기업 인수합병, 프로젝트 파이낸싱, 자산유동화 등 투자금융 분야와 외환 및 파생상품 등 첨단 상품 개발과 판매 쪽에 종사하는 행원들이 그 대상이다. 은행측에선 ‘다른 조직 구성원에게 위화감을주게 된다’며 드러내길 꺼려 하는 분위기다.그러나 대세는 기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합병 전 국민은행은 올해 8월께 ‘전문직급 성과급 제도’를 도입해 ‘억대 연봉 은행원’을 가능케 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내용은 일부 전문직무 담당 정규 행원은 현행 6백%인 상여금을 성과에 따라 최고 2천6백%까지 차등 지급하겠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연봉이 2천만원 선인 투자금융실 대리급 행원이 최고 성과급을 받는다면 내년 2월 기본급과 성과급을 모두 더해 5천여만원을 가져갈 수 있게 된 것. 국민은행 투자금융실 박천수 대리는 “투자금융실 내에 올해 최고 성과급에 해당하는 실적을 달성한 사람이 꽤 될 것”이라며 “팀장급에서는 1억원 이상의 연봉을받는 사람이 나오는 일도 곧 현실화될 것 같다”고 말했다.‘시장론자’를 자처하는 신임 김정태 합병 국민은행장은 이 문제에 대해 보다 급진적인 입장이다. 그는 내년부터는 직위 직급과 무관하게 담당 업무에 따라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잡 프라이싱(Job Pricing)’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김행장은 11월1일 합병은행장 취임식에서 “성과를 많이 내면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보상받는 직원이 생기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성과급의 핵심은 업적 평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성과가 확실히 드러나지 않을 수 없는 영업 분야에서 ‘버는 만큼 가져가는’ 문화가 먼저 뿌리내리는 것도 당연하다. 투자금융 등의 분야를 제외하고 은행에서 인센티브를 적용받는 대표적인 직무가 영업인들.직장 옮기는 과정서 몸값 ‘껑충’그러나 하나은행에서도 손꼽히는 수신 영업전문가라는 선릉지점 류남현 차장(PB, 프라이빗 뱅커)의 첫마디가 “저 돈 별로 많이 안 버는 데요”였다. 그의 말은 사실이다. 전체 연봉의 80%는 다른 은행원들과 마찬가지로 ‘차장 직급대로’ 받고 있다. 나머지 20%만이 실적에 따른 성과급 개념이다. 비중이 이렇게 작으니 그와 같은 경력, 같은 직급의 은행원의 연봉과 비교해도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하지만 그가 만일 직장을 옮긴다면 보통 은행원과 베테랑 PB의 차이점은 분명해진다. 요즘 시중은행들과 외국계 증권사인 메릴린치 등이 공격적으로 PB 영업에 진출하면서 최근 노련한 PB를 구하는 수요가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헤드헌팅 업체로부터 꾸준히 ‘러브콜’이 이어지는 데 이때 거론되는 이적 보너스만 1억원에서 5천만원, 연봉은 1억원 선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고액연봉자 변신도 가능한 것이다.최근 조흥은행이 사내 전 직원을 대상으로 외환업무와 자산운용을 담당할 직원 5명을 행내에서 공모했을 때 13대 1의 경쟁률을 보인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국내 은행에서 외환딜러 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은 조흥은행 25명을 비롯해 약 2백50여 명. 순수하게 성과급제도를 실시하는 외국계 은행과 달리 국내 은행의 딜러는 성과에 대한 최고 보상금액이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 ‘업무 스트레스’와 ‘위험부담’을 고려하면 성과급만으로는 큰 이점은 없다. 그럼에도 앞으로는 각 은행이 연봉제로 가는 추세여서 ‘전문가’가 되고 싶은 젊은 행원들이 몰리고 있다. 또 몸값을 올려 전문가가 돼야만 자유롭게 회사를 옮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전통적으로 영업에 중심을 두고 있는 보험업종은 은행에 비하면 보수 체계가 훨씬 유연하고도 복잡하게 조직돼 있는 편이다. 보험사의 직원은 크게 본점 내근 직원들과 영업을 맡는 설계사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해마다 보험사들이 선발하는 ‘여왕’이나 ‘스타 남성설계사’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높은 소득을 올려 왔다. 하지만 영업과 관련이 없는 내근 직원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양자 사이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영업조직 구축 프로젝트 전문가’들이 보험업에서 인센티브로 성공하는 사람들이다.98부터 보험업계에는 남성 설계사 바람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외국 보험사인 푸르덴셜 생명이 시작이었다. 이후로 남성설계사 조직을 통한 종신보험 판매가 시장성을 인정받자 거의 모든 보험사들도 이같은 조직 만들기에 나섰다. 그러면서 몸값이 뛴 것이 남성 영업조직 전문가다. 이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10여명도 되지 않는다. 대개 계약직으로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나면 다른 회사로 떠나거나 더 경력이 많은 경우에는 승진해 임원이 되기도 한다.남성 영업조직 전문가도 ‘귀하신 몸’이같은 전문가의 1세대라 할 수 있는 인물이 오늘날 푸르덴셜의 조직을 만든 황우진 전무. 이밖에 최우형 본부장(메트라이프) 이승호 전무(교보생명) 김승억 상무(삼성생명) 오충섭 상무(흥국생명) 백정선 지점장(알리안츠 제일생명) 등이 있다. 이런 전문가들은 개인에 따라 편차가 있으나 두세 군데의 회사를 옮겨 다니면서 2억∼10억원 가량의 소득을 올렸을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인터뷰류남현 하나은행 선릉지점 차장“고객확보 성취감이 더 짜릿”하나은행 선릉지점 VIP센터 류남현(36) PB(프라이빗 뱅커)는 정말 바빴다. 쉴새 없이 걸려오는 고객들의 전화에 한결같은 목소리로 응대하고 있었다.류남현 PB는 하나은행에서 손꼽히는 실적을 자랑하는 ‘귀한 몸’이다. 90년 금성투자금융에 입사해(이 회사가 후에 보람은행으로 전환되고 보람은행이 다시 하나은행과 합병하면서 오늘의 하나은행이 된다) 여신 등을 담당하다 95년부터 PB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대출 영업보다는 업무가 깔끔하게 진행되는 게 마음에 들어서’ 열심히 했더니 인정받게 됐다고 한다. 그가 관리하는 고객은 2백81명, 액수로는 2천억원 가량의 자산이다. 인센티브의 핵심이라면 역시 업적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할 것이다. 하나은행은 6개월마다 각종 실적을 계량화하는 자체 평가기준을 갖고 있다. 류PB는 이같은 평가 기준에서 최근 가장 실적이 좋았다.고객의 자산관리를 해 주면서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그의 업무다. 하지만 재산을 맡겨 놓고 그에게 세금문제, 법률문제나 심지어 집안일까지 믿고 상담해오는 고객이 한둘이 아니다. 그는 ‘돈도 돈이지만’ 성취감과 자신감을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의 장점으로 꼽는다. “은행원이라는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은 안정성이었는 데, IMF 이후로 그게 사라졌잖아요. 은행원들이 안정감과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된 거죠. 그런데 간혹 헤드헌터들에게 전화가 오면 꼭 직장을 옮길 생각이 없다고 해도 기분 좋고 자신감도 생기죠.” 냉대를 하던 고객에 대해 ‘어떻게 공략할까’ 이런 저런 궁리와 연구 끝에 뭉칫돈을 유치하면 ‘내 전략이 성공했다’는 성취감도 크다.인터뷰백정선 알리안츠 제일생명 여의도 지점장“남성 영업조직 구축, 월 1천만원 소득”백정선(39) 알리안츠 제일생명 여의도 지점장은 국내에 채 10명도 되지 않는다는 남성 영업조직 구축 전문가 중 한명이다. 동양생명 현대생명 등을 거쳐 지금은 계약직으로 알리안츠 생명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 6월부터 이 회사에 합류했다.그가 이번에 받은 스카우트비는 2천5백만원. 예전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라고 한다. 전 직장인 현대생명에서 여러명의 팀원과 한꺼번에 움직이면서 그들과 나눈 금액이라 몫이 줄었다. 이전에 옮길 때는 보너스만 5천만∼1억원 가량 됐다.이같은 액수를 받고 프로젝트에 착수하면 먼저 중간관리자에 해당하는 세일즈 매니저를 구한다. 그리고 FC(파이낸셜 컨설턴트) LP(라이프 플래너) 등으로 불리는 남성 영업인들을 구하고 교육을 시켜 실제 영업에 내보내 하나의 지점을 자리잡게 만드는 것이 그의 일이다. 지점 하나의 규모가 30여명 내외가 되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보게 되는 데 여기까지 1년 반 이상이 소요된다.지점장의 경우는 처음 2년간 월 5백만원 가량의 보수를 받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이후에 지점이 30명 규모의 영업인을 갖추고 본궤도에 오르게 되면 기본급은 전혀 없이 업적에 따라 보수를 받는다. 대개 월 7백만원에서 1천만원 사이의 소득을 올리게 된다고 했다.“국내 보험사들이 남자 설계사 조직 구축을 모두 끝내 더 이상 프로젝트가 사라진다면 그때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글로벌 네트워크가 있는 회사들을 통해 해외로 나가 그간의 경험을 썩히지 말아야지요”라고 대답했다.